구, 구겨지지 말라

Losing Faces

by 영어 참견러

영어 앞에서만 서면 자존심이 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어민 앞에서 당당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영어 능숙도의 문제만은 아니다. [문화와 의사소통]이라는 과목 수업 중에 미국인 교수가 비디오 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왜 그러한 상황이 발생했는가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물었다.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2010년 9월 G20 서울 정상회의 폐막식에서 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는데, 한국인 기자 중 아무도 질문하지 않자, 중국인 기자가 손을 들어 질문하고자 한 상황이었다. 오바마는 다시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놀라운 장면이었다. 어찌 질문할 거리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온라인 수업 자리엔 20여 명이 모여 있었는데, 나외에 한 학생 외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수업에 참석한 학생들 대부분은 공교육과 사교육 영어교사였고, 교수가 보여준 장면과 거의 똑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리와 영어교육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번째는 위계적이고 경쟁적인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완벽주의적인 마인드 셋이다. 점수로 평가받는 교육 시스템 속에서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완벽을 추구하는 잘못된 교육에서 비롯되었다. 게다가 외국어인 영어를 말이 아닌 하나의 과목으로 공부만 하고 있으니,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못하는 게 아니고 할 수 있도록 배우지도 않았고, 할 수 있도록 가르치지도 않은 것이다. EF(Education First)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영어 능숙도가 영어를 제2 외국어로 배우는 100개국에서 30-33위 정도에만 머물러 있는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생활과 직업의 현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영어를 배우고 가르치겠다는 실용주의적인 마인드셋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다.


번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바닥인 셈이다. 동남아권에서 온 외국인들은 대부분 한국어도 하지 못하고, 영어도 하지 못해 통역기나 번역기를 사용하여 어렵게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중에 영어를 할 줄 안다고 말하는 중국이나 인도, 파키스탄 사람들은 당당히 영어로 말을 한다. 엉터리 또는 서투른 영어(Broken English)를 쓰면서도 전혀 주눅이 드는 기색이 없이 당당하다. 영어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는다면 뻔뻔함(losing faces)이다. '뻔뻔함'이라는 것은, 영어로 대화할 때 전혀 긴장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아주 조금 하는 상태(zero or low anxiety)를 말한다. 영어를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긴장은 말하기 실력 향상에 가장 큰 방해물이 된다.


미국에 거주한 지 한 달 만에 아들이 여름 캠프에서 고관절 골절의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수술 후의 입원과 치료 과정, 그리고 로펌(law firm)의 변호사들과 소통하고 증인을 서는 등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재판에 앞서 보험사와 합의를 보는 결과를 얻었다. 잠시 미국 땅에 머문 이주민이었지만,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서부터 실수를 하거나 성적이 좋지 않아도 부모님께 야단을 맞은 적이 없어서 형성된 태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남들과 비교하거나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완벽주의적인 마인드 셋을 벗어 버릴 필요가 있다. 실수나 실패를 하더라도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과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다면 이러한 문제도 쉽게 해결되리라 본다.


세 번째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의식하거나 비교하면서 가능한 남보다 멋지게 보이려 하는 '체면 문화'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멋지게 보이려고 할수록 심리적인 갈등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한 번은 국내 음성학 학회 회장의 초대를 받아 음성학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한 교수님이 영어로 논문을 발표하였고 내용도 좋았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영어 실력이 "poor"라고 말하면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그 후 젊은 발표자가 원어민과 같은 발음으로 발표를 하자, 그분은 잠시 앉아있다가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연구 내용의 깊이는 젊은 발표자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수했지만, 정작 본인은 영어 발음에 대한 자신감이 너무 낮았고, 그 원인은 체면이었던 것이다.


황상민 저자는 한 사람의 심리적 갈등이나 고민의 핵심이자 삶을 이끄는 것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를 아는 것, 바로 자신의 정체성이자, 자신이 가진 믿음의 실체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한국인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행동이나 생각을 <한국인의 심리코드>를 통해 사람들의 민낯을 보여준다. 우선, 한국인은 행복 불감증에 걸려있다고 한다. 한국인의 자살률이 OECD 중 최고이고 출산율은 최저이다. 인구 감소로 인해 '소멸 국가 1호'라고도 한다. 한국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돈'만을 믿고 살기 때문이다. 체면을 차리고 잘 사는 모습을 보이려면, 한 마디로 행복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인해 가난한 나라 사람들보다 행복하지 않게 느낀다. 이런 경우 아무리 돈이 많아도 행복해지기 힘들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체성(identity)을 탐색하고 확인해야 한다고 한다.


정체성이란 '나는 누구인가?'(Who am I?)를 나타내는 것으로 '남이 뭐라 하든, 자기 눈으로 자신을 일관되게 보는 특성'인데, 이러한 인식을 위해서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소크라테스을 위대한 철학자로 만든 주요한 이유는 깊은 성찰을 통해 자신의 무지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와 질문을 통해 자신을 더 알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를 우리나라 사람에게 적용해보면 이중적인 심리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보다 멋지게 보이려고 하는 마음으로 인해 오히려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이다.


인생 후반전을 위해 학원을 정리하고 나니 허전함을 느꼈다. 그때 '난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것과 영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되었다. 그 후에, NIV 영어 성경 읽기 모임을 하게 되었고, 이렇게 영어 연애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완벽한 영어실력을 갖추어야 이런 영어학습과 관련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절대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진정한 나를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나를 바로 알게 되면 절대로 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Though a righteous man falls seven times, he rises again! (Porverbs 24:16)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잠언서 24:16)



영어와의 연애 레시피 열 번째 비법: 구겨지길 두려워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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