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영어 연애담

Engstory

by 영어 참견러

누구에게나 추억으로 남아있는 연애담이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영어와의 연애 이야기가 있다. 영어를 좋아하셨던 아빠는 가끔 누군가와 영어로 전화통화를 하셨다. 청소기를 돌리실 때는 “Yesterday~ why does the sun go on shining?” 하며 팝송을 부르곤 하셨는데, 그때 들려온 영어 소리는 사춘기 소녀의 마음에 알 수 없는 여유와 기쁨을 주곤 했다. 그때부터 영어와의 로맨스가 시작된 것이다. 영어와의 본격적인 만남은 ‘I am Tom.’으로 시작된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에서 시작되었다. 그때 처음 배운 알파벳 26자는 너무나 쉬웠고, 선생님이 읽어 주시는 영어 교과서 문장들이 내 귀엔 감미로운 음악처럼 들렸다.


언어에도 감정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영어를 좋아하게 된 것은 단순한 사랑의 감정처럼 이유 없이 시작되었다. 교내 영어 암송대회에서 친구와 함께 강단에 섰는데, 운동장 끝에서 왔다 갔다 하시는 선생님들 모습이 다 보였고, 실수를 하자 “I am sorry!”라는 말이 나왔다. 어느 날, 영어공부를 한다고 영어책을 펴고 앉아 눈으로 읽고 있는데, 평상시 말이 없으시던 아빠가,“영어는 입으로 하는 거야!” 라는,말을 하셨다. 그 이후, 아빠의 말씀대로 영어책을 소리 내어 읽었고, 3학년 교내 말하기 대회에서 1등 상을 받게 되면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높아졌다.


고1 때 잠시 다닌 고등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웠는데, 발음도 듣기 거북했고, 여성, 남성을 따로 사용하는 것이 어색했다. 전학 간 학교에선 이미 일본어를 배웠기에 몇 달 혼자서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대학 입시에서 일본어 과목이 없어졌다. 그때부터 영어공부를 하려니, 수업은 완전 100% 강의식이었다. 선생님은 칠판에 빼곡히 적어놓은 영어 문장을 분석하면서 늘 설명만 하셨다. 모의고사 성적이 좋지 않은 날엔 치마를 입은 여학생들의 엉덩이를 몇 대씩 때리곤 했다. 그즈음 해서 나의 영어에 대한 자신감과 흥미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작은 영문법 책을 발견했고, 두세 번 읽은 후에야 장문 독해가 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영어와의 힘겨운 싸움은 계속되었다. 대입 시험 후, 성적표와 원서를 가지고, 집 바로 옆에 있던 대학교를 방문했다. 운명적으로 누군가 ‘영어교육과’를 쓴 원서를 슬쩍 보게 되었다.


순간, 영어에 대한 첫사랑의 기억이 떠올랐다. 마침, 옆에 계신 교수님과 상담 후 ‘영어교육과’를 지원했다. 10대에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었다. 대학 입학 후, 4년 동안 오직 영어와의 사랑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의미론, 영문학 등의 과목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흥미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다행히 영어학과 교수법, 음성학, 영작문 그리고 영어 회화 수업은 재미있었다. 영어교육과 주최로 한 연극에서는 배우는 아니었지만, 스태프로 참여해 미국 원어민과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몇 년 전, 호주에 사는 대학원 선배가 논문 발표차 학교에 왔다. 영어 학습법과 관련한 논문을 썼는데, 나에게 어떻게 영어공부를 했는지를 물었다. 온라인 chat class(수다방)에서 몇 번 대화를 나눠 본 경험이 있어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따로 학습법도 전략도 없었기 때문이다.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대학 시절로 가보았다.


「수업 전에 영작문 과제를 하면서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고 있다. 공강(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어학실(lab실)에서 영어회화 CD를 들으면서 따라 읽고 있다. 수업 후에는 도서관에서 웹스터 영영사전을 펴놓고 영자신문인 코리아 헤럴드(Korea Herald)를 읽고, 어떤 날엔 영어 말하기 스터디에 참여한다. 밤에는 의상실을 하시는 엄마를 도와 단추를 달거나 치마 밑단을 꿰매면서 CNN 뉴스를 듣거나 외국영화를 보기도 한다.」


대학 졸업한 지 딱 30년이 지났다. 결혼 후 지금까지 가계부를 영어로 기록하고 있다. 요즘에도 코리아 헤럴드 신문을 읽고, 영어 뉴스나 드라마를 시청하기도 한다. 운동이나 산책을 할 때면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강의나 TED 강연을 듣는다.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영어 성경을 읽고 녹음하는 카톡방을 운영하고 있고, 개인지도를 하고 있다.


영어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14살 사춘기 시절부터 54세가 된 지금까지 영어와 함께한 40년의 인생이 나름 괜찮았다고 나 자신에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있다. 영어와 백년해로(百年偕老 부부의 인연을 맺어 평생을 같이 즐겁게 지낸다) 하기 위해 테스 형에게 질문을 해 본다. 형! "메타버스 시대, 영어와의 연애를 계속해야 할까요?" 테스 형이 반문한다. "영어는 누구이며 왜 사귀려 하는가?" 나 스스로 지혜를 낳게 하려는 의도다. 나는 아포리아(aporia 그리스어:난관)에 빠지고 만다. 문득, 나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해본 기억이 나서 그 방법을 사용해 본다. "영어, 너는 누구니?" 연애를 잘하려면, 먼저 상대를 잘 알아야만 한다. 지피지기 백전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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