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영어 중매담

Matchmaker vs. AI Assistant

by 영어 참견러


엄마 손에 이끌려 학원에 온 학생 중에 이러한 질문을 하는 학생이 있었다. “영어를 왜 배워야 하나요? 전 외국에 나갈 생각이 없는데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실 현실을 잘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영어를 잘하게 되면 자신감이 생기면서 다른 과목도 잘하게 되고 자존감(자신을 존중하는 마음 또는 사고의 척도)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내 나이 오십이 되면서 인생 후반전에는 학생들이 아닌 성인들에게 영어를 어떻게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려 주고 싶었다. 유치원생부터 고3 학생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을 혼자서 가르치는 일은 정신적, 심리적,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학생들이 수능까지 치르고 나면 내 몸과 영혼이 완전히 고갈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인생 후반전에는 테솔 박사 과정을 끝내고 책을 쓰고자 했다. 무엇인가 학교에서 더 배울 것이 있어서가 아니고 단지 책을 쓰고 싶은 내 꿈을 위해 스펙을 올리고자 했다.


드디어 운영하던 학원을 정리하고 위례로 이사를 왔지만, 계획과는 달리 박사 공부를 접어야 했다. 그리곤 일 년 동안 5명(A, B, C, D, E)의 아이를 순차적으로 만나 영어를 다시 가르치게 되었다. 첫 A 학생은 강아지 산책 중에 만난 도민(초5)이었다. 대화 중 영어 이야기가 나왔고, 자신은 여태 파닉스를 배운다면서 친구들과 수준이 맞지 않아 같이 다닐 수 있는 학원이 없다는 것이었다. 연락처를 주었더니 어머니께서 전화를 주셨고, 그렇게 면담 자리에서 첫 수업이 바로 시작되었다.


나의 넓은 오지랖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영어를 가르칠 생각을 하니, 마치 데이트를 하러 가는 기분처럼 가슴이 설레고 행복했다. 수업 후 한 달 정도 지나 학생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선생님, 이제 영어 간판이 눈에 들어오고 읽을 수 있어요!” “드디어 장님이 눈을 떴구나!”라는 농담을 하며 같이 기뻐해 주었다. 사실 이런 맛에 20년 동안 영어를 가르쳐 왔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하지 못해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이었다. 물론 잘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자존감이 너무 높아 무례한 학생들도 있었지만, 영어로 인해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이 많았다. 덩달아 부모님들의 자존감까지도 말이다. 그렇다고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불행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과 사회 환경에서는 영어를 잘하게 되면 자신감이 생기고, 삶에서 이르고자 하는 꿈이 커지고 기회가 자주 찾아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자존감 수업>의 저자 윤홍균은 본인의 인생 고민을 정리하면서, 행복해지는 과정은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이었고, 가장 불행했을 때는 자존감이 가장 저하되어 있었을 때라고 말한다. 난 개인적으로 영어 중매쟁이(matchmaker) 역할을 하면서 자존감이 회복되었고 행복했다.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면서 성장을 하고 자신감을 갖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내 삶의 보람이자 존재의 정체성이었다.


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학교 교생 실습기간에 반드시 해야 하는 과정이 있다면 바로 수업 안(lesson plan)을 짜는 것이다. 각 수업의 목표와 시간, 그리고 활동 등의 자세한 내용을 수업 전에 미리 기록하고 그 교안대로 수업을 진행해야만 한다. 대학교와 대학원 과정에서 레슨 플랜을 짰었고, 그대로 수업을 재연하기도 하였다. 실제 학원에서 학생들의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대략의 계획을 짜 놓고 수업을 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효율적인 수업을 위해서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플랜을 짜면서 반드시 주의를 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교사가 학생들의 성향이나 흥미, 그리고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자신이 준비한 교재를 가지고 계획대로 가르치려는 태도다.


테솔 대학원 교수법 수업에는 각자의 수업 동영상을 찍어 서로 피드백을 주는 과정이 있다. 내가 피드백을 주어야 하는 차례가 되었다. 어느 학원 교사의 수업 안 계획에는 창의적인 수업을 진행한다고 쓰여 있었다. 기대를 했는데, 영어의 연결 어구(예, in other word, by the way 등)를 읽고는 반복해서 무조건 따라 읽게 하는 수업을 하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웠고, 어떻게 피드백을 주어야 할지 난감했다. 이런 식으로는 인공지능 로봇과 경쟁하기는커녕 학생들의 마음도 영어에서 점점 멀어질 것이다. 사실 영어 가르치기는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언어의 속성상 듣고 따라 읽고 말하고 쓰는 연습을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반복적인 따라 읽기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속도를 조절하면서 반복 듣기를 할 수 있다. 심지어 쳇봇(chatbot)이 등장하여 간단한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교사가 인공지능과 협업을 잘한다면 교사의 수명은 늘어날 것이다.


반면에 영어 교사에겐 로봇을 능가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 있다. 본인의 영어 능숙도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식을 연결하여 문제 해결하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한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인성과 사회성을 키워나가야 한다. 인간지능 로봇은 인간과 비슷한 모습으로 프로그램대로 움직이고 말하고 지식인처럼 행동할 수는 있지만, 인간과 같은 영혼이 없는 존재다. 다시 말해 인성도 사회성도 없다. 상대방과 의사소통하는 듯하지만, 타인의 표정이나 감정을 읽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따라서 교사들은 이 부분을 공략해야 한다. 날마다 노력하지 않는다면 영어 교사는 아마도 이 땅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되거나, 아니면 그저 인공지능의 보조교사(AI assistant) 정도의 역할만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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