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좋은 선생님이란

Who is a Good Teacher?

by 영어 참견러

누가 좋은 선생님일까?


한 유대인 지도자가 예수에게 '선한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A certain ruler asked him, "Good teacher, what must I do to inherit eternal life?"


그러자, 예수가 대답한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누가복음 18:18 현대인의 성경).


"Why do you call me good?" Jesus answered. "No one is good--except God alone.


그렇다면 좋은 교사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외에는 선한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선한 교사도 존재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미국 올해의 교사 상(the National Teacher of the Year) 수상자들이 말한 노하우에는 '무지의 축복'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교사란 자신의 무지를 아는 사람이고, 자기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좋은 교사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좋은 교사란 교사이기 전에, 먼저 세상을 배우는 좋은 학생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딸아이가 고 3이 되어 진로에 대해 같이 고민하면서 내가 가지 않은 길을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제안을 했다. 바로 공교육 영어교사가 되는 것이다. 임용고시 필기시험에서 두 번 합격하고도 운명적으로 가지 못했던 그 길에 대해 딸은 대번에 거절을 했다. 오히려 내가 하던 영어 학원을 물려 달라는 것이었다. 학원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고 배우러 오기에 학생지도에 그리 어려움이 없지만, 학교는 다르다면서, 본인도 학생이지만 학교 교사는 정말 힘들다고 한다.


사실, 나의 엄마조차도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선생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면서 외할아버지도 엄마가 교사가 되는 길을 막으셨다고 한다. 똥이 시커 먹게 변할 정도로 힘든 직업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누구나 서로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대중적인 호칭이 된 것이다. 누군가에게 배울 점이 하나 정도는 있을 테니까 그리 불러도 괜찮다. 하지만 '누가 좋은 선생님일까?'라는 질문에는 답하기가 힘들다.


<영어 참견 1>에서 나와 동행해준 테스 형도 나의 좋은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게 하였기에 교사(teacher)가 아니라 교육자(educator)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에게도 질문을 통해 나 스스로의 문제점과 무지를 알게 해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나의 교육자가 되어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분과 무슨 개인적인 추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학창 시절을 뒤돌아 보면 좋은 교사에 대한 추억은 별로 없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선생님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좋아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관심을 받기 위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저학년 때는 양가집 여인에서 고학년 때는 우수한 여인이 되었다고 농담을 하곤 하였는데, 성적표에 수우미양가로 표기되었던 옛날이야기이다. 하지만, 성적 우수상을 받을 즈음에 한 친구의 엄마가 선생님께 선물을 가져다 드린 후, 내가 받아야 할 상을 친구가 받게 되었다. 교사에 대한 배신감이랄까, 세상이 정의롭지 않다는 사실을 어린 나이에 인지하였다.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고, 그저 슬펐다. 졸업식 준비기간에 우연히 노인 흉내를 내며 인생 노래를 지어 불렀더니, 선생님이 졸업식 날에도 시키셨다. 그래서 강단에 올라가 마치 광대처럼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웃기면서도 정작 13세 소녀의 마음엔 슬픔이 가득 찬 졸업식이었다.


가족이 미국에서의 생활을 접고 한국에 들어와, 아들은 예전에 잠시 다녔던 중학교로 전학을 했다. 며칠이 지나서 담임선생이 전화를 하였다. 아들의 책상 자리를 반에서 1등 하는 여학생 옆에 앉게 했는데, 필통을 잘 안 가져와 친구 것을 빌린다는 말이었다. 이상했다. 그게 무슨 전화를 할 정도인가? 그리곤 며칠 후 또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반에서 제일 말썽인 아이 옆에 그것도 뒷자리에 앉게 하였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말을 하니 아무 다른 말 없이 통화를 끊었다. 그 후로 아들은 작은 일들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사춘기를 아주 심하게 보냈다.


교사를 위한 자존감 코칭에 대한 이야기인 <교실 속 자존감>을 쓴 조세핀 김 저자는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다. 한 마디로 학생의 미래는 자존감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8세에 미국 이민을 갔던 그녀는 4학년 때, 낙제생이 될 뻔한 본인에게 영한사전을 이용해 단어를 가르쳐 준 교사 이야기를 한다. 단어 퀴즈에서 10개를 맞히자, 100과 wonderful!이라고 써주고는 활짝 웃어준 교사의 미소가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하였다고 말한다. 중학교 시절에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손을 잡아주던 가정 과목 선생님이 기억난다. 수업 중에 집중하는 내 눈이 이쁘다는 엉뚱한 말을 하셨던 그분이 그나마 나에겐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된다.


또 한 분이 떠 오른다. 고등학교 3학년, 내신에 대한 압박감이 심한 시기에 화학시험인가 외울 것이 너무 많았다. 다 외운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고, 그리 의미도 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시험 전에 급하게 한 행동이 책받침에 화학기호와 용어를 빼곡히 적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험지 아래에 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눈에 띄는 모습인데, 초범인지라 어리숙했다. 때 마침, 아주 자비심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어 보이던 과학선생님이 시험 감독으로 교실에 들어오셨고, 시험지를 받자마자 들켰다. 퇴학을 당하겠구나!라는 생각에 얼굴이 달아올랐고 몸도 굳었다. 그녀는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내 책받침을 조용히 가지고 갔다.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용서를 받은 것이었다.


내가 잠시 가르친 D학생의 엄마가 말씀하셨다. 자신의 딸은 "좋은 어른의 이야기는 새겨듣는다"라고 말이다. 여기서 좋은 어른이란 나를 말한 것이기도 하다. 조세핀 김 저자도 진심으로 돌봐 주는 '단 한 명의 어른'만 있으면 아이는 변한다고 한다. 만약 내가 이름도 기억 못 하는 그 과학선생님이 내 잘못을 덮어 주지 않고 자존감을 다치게 했다면, 한 명의 좋은 어른이 되려고 노력한다거나 영어를 가르치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좋은'과 '선생님' 또는 '어른'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좋은 선생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청년 예수가 말한 '선한'의 기준은 너무 높아서 인간으로서는 다다를 수 없는 영역이다. 아니, 그럴 수 없는 존재로 타고났다. 어찌 보면 선한 것이라곤 손톱 때만큼도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저, 자르고 다듬고 칠하면서 이쁘게 보이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러니, 선생님이든 어른이든 호칭이 뭐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약한 바람에 흔들리는 상한 갈대를 꺽지 않고, 작은 빗방울에 맞아떨어진 도토리를 밟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시작점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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