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전리품에서 부드러움의 끝판왕 미식의 정점이 되기까지
아기 때부터 우량아였던 저는 늘 '먹는 것'에 대해 소심했습니다. 적게 먹었다기보다 먹을 때마다 눈치를 봤던 것 같아요. 단것은 먹지 말라는 말은 하도 들어서 세뇌가 되었을 수도 있겠네요. 지금도 사탕이나 젤리, 주스, 탄산음료들은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이니까요. 라면도 한 개를 다 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그렇게 살이 쪘던 것을 보면 아마도 먹는 것도 좋아하고 또 많이 먹긴 했나 봅니다.
독일에 살면서 어느 도시를 가던지 전통과 맛으로 무장한 초콜릿 브랜드들이 정말 많이 보입니다. 그저 "참 예쁘구나, 예쁜 데다가 비싸구나."라는 정도의 감흥만 생기더군요. 초콜릿의 진짜 맛을 잘 몰랐습니다. 친한 지인 중에 던킨 도너츠를 먹지 않는 이유가 냄새가 너무 별로라 식욕이 없어진대요. 아마도 본인이 어릴 때 접해보지 않은 맛이라 그런 것 같다고요.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도 그렇고요. 저도 어릴 때부터 즐겨 먹지 않아서인지 이렇게 '초콜릿'의 진짜 맛을 몰랐습니다.
지금은 어렴풋하게 알 것도 같습니다. 사르르 녹는다는 다소 상투적인 표현이 갖는 엄청난 기술력을요. 또한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쓴맛에 더해진 단맛까지의 변신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초콜릿은 단순한 디저트를 넘어 인간들의 욕망과 기술 혁신이 응축된 '검은 금'이라 불릴 만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약 3,000~4,000년 전 마야와 아즈텍 문명에서 카카오는 '신들의 음료(Theobroma cacao)'로 숭배되었다고 하죠. 그러던 카카오가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유럽으로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초콜릿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비하인드 스토리 중 하나는 이탈리아의 여행가가 스페인의 식민지를 여행한 후 쓴 책에서 카카오 음료를 처음 맛본 소감을, 인간이 마시는 음료라기보다는 돼지나 먹을 법한 오물 같았다는 기록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쓴맛만 나는 카카오에 매콤한 고추와 향신료를 넣어 음료로 마셨다고 하니, 지금의 기준으로는 감히 상상이 안되긴 합니다.
그렇게 고향을 떠난 카카오 콩은 설탕을 만나면서 대접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 귀족들이 독점하기 시작하면서 '왕실의 검은 금'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 그러다 네덜란드에서 카카오 버터를 분리하는 압착기를 발명하면서 기술의 혁신이 일어납니다. 지금 초콜릿의 질감은 아마도 스위스에서 초콜릿에 우유를 섞으면서 완성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스위스에서 루돌프 린트라는 사람에 의해 콘칭(Conching)이라는 기술이 더해지면서 사르르 녹는 질감이 완성되다고 합니다. 운 좋은 실수라고 불리는 콘칭(Conching) 기술은 초콜릿 반죽을 커다란 용기에 넣고 며칠 동안 열을 가하며 계속 휘젓는 과정인데,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 기계를 끄지 않고 퇴근한 것이 실수였으나 결과적으로 지금의 벨벳 같은 질감의 초콜릿을 만들 수 있는 실수였다고 하니, 꽤 드라마틱합니다.
혹시 린트? 알아채신 분들이 계시겠죠? 네. 맞습니다. 그 유명한 유럽 어느 나라에서나 보이는 그 초콜릿 브랜드 '린트' 맞습니다. 린도르라는 초콜릿은 린트의 초콜릿 중 하나입니다.
린트 초콜릿은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어요. 아마 맛보신 분들은 왜 맛있다고 하는지 아실 겁니다. 단지 단맛이 아니라 입안에서 살살 녹는 질감이 킥이지요. 겉은 단단한 쉘(shell)로 싸여 있고요, 내부는 입에서 흐르듯 녹아내리는 '필링'이 들어 있습니다. 이 맛이 유럽의 초콜릿이라고 막 단정하기에는 다른 또 훌륭한 초콜릿들이 많아요. 그래도 유럽의 자부심으로 대표할 만은 합니다. 단 하나의 단점을 꼽자면 좀 비싸다는 거? 낱개 포장 몇 개 담으면 금방 20유로가 넘어요.
스위스, 벨기에 같은 초콜릿으로 유명한 나라들 말고도 독일 베를린에도 '라우쉬' 초콜라덴하우스(Rausch Schokoladenhaus)가 있습니다. 라우쉬 초콜릿도 100년이 넘는 가게더라고요. 여느 박물관 못지않게 꽤 볼거리가 많습니다. 추운 겨울에 라우쉬 초콜라덴하우스에서 몸도 녹이고 다른 관광지보다 아주 오래 머물며 구경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 있는 초콜릿 농장 영상이 아주 볼만했습니다. 혹시 베를린 여행 계획하신다면 추천합니다.
스페인으로 건너오기 전 고추를 넣어 마셨다던 카카오음료가 지금은 고추를 넣은 초콜릿으로도 만들어지고 있으니. 고향을 떠나기 전 카카오의 모습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 것도 같습니다. 카카오의 고향에서도 '신' 대접을 받았고, 이제는 전 인류에게도 예쁨 받는 먹거리가 된 카카오. 부디 오래도록 예쁨 받으면 좋겠습니다. 초콜릿 한 조각 입에 물고 잠시나마 즐겁고 행복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