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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구름 Feb 25. 2022

엄마는 그날 태어났단다.

'엄마'라는 말과 함께 터져 나온 눈물의 의미

아빠는 좋은 일이 생기면  좀처럼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란다. 엄마 생일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숨겨 놓고도 어설픈 얼굴 표정과 어색한 행동으로 티가 나고 말지. 그렇지만 엄마는 달라! 우리 큰아들이 세상에 왔다는 걸 1주일이나 전에 알았지만, 들키지 않고 아빠를 깜짝 놀라게 해 줬거든! 사실 너무 이르게 알아차린 탓에 아기집이 생긴 것도 못 보고 와서 일주일 만에 다시 병원에 가야 했던 엄마도 참 대단했지만, 그보다 아빠를 위한 서프라이즈 무대는 일주일 동안 무사히 비밀에 부쳐졌단다.




그때가 마침 선거 날이었어. 나란히 선거를 마치고 나와서는 갑자기 가야 할 곳이 있다고 아빠를 잡아끌어 차에 앉혔거든. 아리송한 얼굴로 따라나섰던 아빠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도착한 곳이 산부인과라 무슨 일인지 조금 짐작했으려나? 병원 앞에 주차할 곳을 바로 찾지 못해 예약 시간을 넘기는 바람에, 서둘러 엄마 먼저 들어갔어. 두 번째 초음파 검사도 엄마 혼자 하게 만들었지만, 뒤이어 허둥지둥 뛰어 들어와 네 초음파 사진을 보고서 감격스러워했을 아빠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니? 아빠는 좋은 기분을, 기쁨을 숨길 줄 모르는 사람이니까 말이야.



집에 돌아와 이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하기로 했어. 아빠는 외할머니께 엄마는 할머니께, 그러니까 서로의 엄마에게 연락하기로 한 거야. 순서는 어땠는지 잊어버렸지만, 아빠가 외할머니에게 너의 존재를 알린 뒤, "수경이 바꿔 드릴게요." 하고 말했던 것만은 생생히 떠오른단다.



 



'엄마'는 어떤 존재여야만 할까? 다정한 엄마도,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도 보지 못하고 자랐기에, 엄마 되기가 늘 두려웠어. 어떤 모습의 엄마가 되어야 할지 알 수가 없더라고. 엄마를 생각하면 한숨 가득한 근심을 안고 누워 있던 고단한 뒷모습만 떠올랐거든. 세상에 이런 엄마도 있구나 싶을 만큼 다정하고 상냥했던 친구의 엄마처럼 될 수 있을까? 보고 배운 만큼 하는 게 사람인데, 한두 번 본 친구 엄마의 모습처럼,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는 나 같은 엄마를 둬서 과연 행복한 삶을 살게 될까? 오랜 고민 끝에 아빠와 임신을 준비하면서도 실은 엄마의 자격이 주어질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어. 이런 생각을 좀처럼 멈출 수가 없었거든. 그런 내가 엄마라고 불리게 될 거라고?



아빠가 엄마의 엄마와 연결된 전화기를 건네주었을 때, '엄마'라고 부르기만 했을 뿐인데, 곧이어 터져 나온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어. 사실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긴 참 어렵더라. 누군가는 너무 기뻐서 그런 것이 아닐까? 아니면 키워주신 엄마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서? 그래 맞아 그런 이유도 있겠지. 그런데 엄마 생각에는 말이야, 이제부터 나에게도 엄마라고 부르는 존재가 생겼다는 게 그때 비로소 실감 났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해. 엄마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비로소 엄마가 될 자격이 있다는 허락을 받은 것만 같아서,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은 것만 같아서 말이야. 그게 너무 벅찼던 것 같아. 너희들은 벅차다는 것이 어떤 뜻인 줄 아니? 차고 넘치는, 그래서 감당하기 힘든 그런 감정을 말해. 그게 좋은 뜻이냐고? 글쎄 어떤 감정이든 딱 하나는 아니더라고. 감사하고 행복하면서도 너무나 큰 책임감이 느껴졌어. 이 엄마를 믿고, 이 세상에 와 준 아이에게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졌거든. 그래서 벅찼고, 그게 말로는 꺼내 놓을 수 없으니 눈물로 터져 나온 거야. 얘들아, 엄마는 그날 태어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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