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막막할 땐 쓸고 닦는 일부터 최선 다하기
주부의 일에 먼저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출산 예정일이 고만고만했던 임산부 셋이 참 사이좋게 지냈어요. 산모 교실에도 함께 가서 사은품도 타오고, 도시락을 싸서 근처 수목원으로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답니다. 수목원에서 유치원 소풍 나온 노란 병아리색 옷을 입은 꼬마들을 보면서 우리 뱃속에 있는 아이들은 언제 커서 저렇게 다닐까? 하면서 까르르 웃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때 사진 찍던 우리 곁으로 스쳐 지나갔던 따스한 가을바람, 높디높았던 푸른 하늘, 누가 누가 더 예쁘게 물들까 자랑하며 앞다투어 옷 색을 바꿔 입던 나무들, 그 사이로 재잘거리며 지나가던 아이들의 모습까지 바로 어제 일처럼 그날의 감촉이 모두 느껴지는 것 같아요.
뱃속에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임산부 신분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걸 묻지도 않고,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사를 가게 되어서 뿔뿔이 흩어졌지만 가끔 카톡으로 안부 정도는 주고받고 지냈어요.
서로 둘째를 낳을 때까지는 비슷했던 것 같은데, "요즘 뭐 하면서 지내?"라는 질문에 "애들 키우면서 지내지 뭐"라고 늘 같은 대답하는 건 나 하나뿐이라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한 명은 어릴 때부터 바둑이 취미였대요. 아이 갖기 전까지 직업은 다른 일이었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 바둑이 더 재밌어져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바둑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고 근황을 전해 오더라고요.
또 다른 한 명은 갑자기 임신을 하는 바람에 미뤄 두었던 보육교사 실습을 하는 중이래요. 원피스를 예쁘게 차려입고 출근해서 찍은 사진을 보내줬는데, 겉모습도 임신 전 날씬했던 모습으로 돌아가 있더라고요. 아이들은 둘 다 시댁에서 봐주신다고 하더라고요.
평소에는 아이들과 지내는 일상이 정신없으니 잘 모르고 지나갈 때도 많아요. 그냥 하루를 다 끝내고 침대에 누우면 바로 잠이 들곤 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또 비슷한 하루가 시작되는 거죠.
그러다 매번 같은 근황을 카톡에 적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거예요.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임신 전 모습으로 돌아간 듯한 친구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도 깨달았고요. '무너지다'라는 단어의 뜻을 온몸으로 알게 된 느낌이었어요.
무기력증이라고 아시나요? 내 머릿속으로는 해야 할 일이 있고, 이것을 내가 끝내야 하는 걸 아는데도 몸이 도저히 움직여지지 않는 거예요. 실제로 신체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는데도 말이죠. 그렇게 침대와 소파를 번갈아 가며 누워만 있던 나날이 계속되었답니다. 그런 무기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에게 밥만 겨우 차려 주고 하루종일 누워 있는 나를 인지하게 된 사건이 있었어요. 잠시 누워 있는데 그 뒷모습을 큰 아이와 둘째 아이가 번가라 가면서 지켜보다가 조용히 다시 나가는 거예요. 뭐라 말도 한마디 붙여 보지 못하고 돌아 서고를 반복.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굳게 닫힌 안방 문 사이로 간간이 들리던 엄마의 한숨 소리, 그리고 참다 참다 용건이 있어 노크를 하고 들어 서면 보이는 엄마의 웅크린 뒷모습. 그 등을 보고 자란 저는 걱정이 많고, 자주 불안해하는 어른으로 성장했지요. 그런 엄마의 모습이 정말 싫었어요. 돈이 없어 걱정이면 엄마가 돈을 벌면 될 테고, 돈이 없으면 저런 물건들을 안 사면 될 텐데 하면서...
같은 입장이 되어보니 엄마도 무기력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하지만 저도 어렸기 때문에 그때 엄마가 힘들다는 이유로 저에게 했던 행동들과 가시 돋친 말들을 모두 용서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우리 아이들이라고 다를까요? 무엇이 문제인지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지만, 그 느낌과 감정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텐데요. 저는 결코 미움받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정말 다정하고 좋은 엄마가 될 자신도 없었지만, 삶을 주어진 그대로 만족하지도 못하고 최선을 다해 살려는 의지도 없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몸에 스프링이라도 달린 것처럼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서 아이들부터 끌어안고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살아 보자.'
결심은 창대했지만 어린아이 둘 키우는 엄마가 하루아침에 내 마음대로 살아갈 수는 없을 거예요. 애들을 봐 줄 사람도 없고, 경력도 없고, 자신감도 떨어진 내가 갑자기 직장에 취업해서 돈을 벌 수도 없고, 10킬로 감량하고 몸짱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물론 해 내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건 거실 바닥에 깔려 있던 매트의 꼬질꼬질한 때였어요. 아들 둘을 키우니 거실 바닥에는 항상 매트가 깔려 있었는데, 아이들이 뭘 묻혀 놓았는지 지저분하더라고요.
그걸 보다가 유난히 눈 부셨던 여름날이 떠올랐어요. 그때 살던 집에서는 퍼즐 매트를 바닥에 깔아 두었는데, 자주 깨끗하게 닦아도 찌든 때 같은 게 항상 덕지덕지 붙어 있었어요.
큰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 놓고, 다섯 살 터울진 둘째 아이는 겨우 달래서 재워 눕혀 놓고는 퍼즐 매트를 모두 빼서 베란다로 들고나갔어요. 고무장갑과 주방 세제, 운동화 솔을 들고서.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해 물을 튼 다음 퍼즐 매트에 물을 끼얹고, 손에 고무장갑을 끼고서 솔에 세제를 묻혀 퍼즐 매트 위를 박박 벅벅 열심히 문질렀답니다. 허리가 곧 끊어지겠다 싶은 고통이 느껴질 때 즈음 마지막 퍼즐 매트를 문질러 닦았어요.
거품 가득한 매트 위에 깨끗한 물을 끼얹자 진회색빛 땟국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마침내 뽀얀 매트의 모습이 드러났지요. 매트 위에서 물이 떨어져 내리는 모습과 함께 퍼즐 매트 본연의 색이 드러나는 걸 동시에 목격하면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시원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내가 지금 시작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하는 일, 즉 쓸고 닦고, 정리하고, 아이들을 먹이고, 살림을 꾸리는 일, 주부의 일부터 최선을 다하는 것이겠구나 하고 깨달았던 순간이었어요.
주부의 일에
먼저 최선을 다해야겠구나!
주부의 일에 먼저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주부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는 주부인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었고, 주부의 일에 대해 내가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 주지 않으면 내 모든 시간마저도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집안일을 하는 주부라는 직업을 가진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게 되는 걸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습니다.
주부이자 육아맘으로 지내야 하는 현실을 하루아침에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리고 주부이자 육아맘으로 지내야 하는 시간 역시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고요.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죠.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아졌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주부로 지내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려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저에게 이로운 선택을 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정한 거랍니다.
지금의 시간을 가족들을 위한 희생의 시간이라 생각하며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던 태도를 바꿔, 나 자신을 위한 응축의 시간이라 부르기로 했답니다. 땅이 씨를 품고 있으면서 건강한 새싹이 되기위해 거쳐야 하는 응축 기간이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쓸고 닦는 일, 주부의 일부터 최선을 다해 보자고요.
저와 같은 전업맘들, 이 글을 읽고 계실까요? 그렇다면 아마도 아이가 모두 성장하고 난 뒤 나의 삶이 걱정되고, 지금 주부로 지내는 시간이 조금은 불안하게 느껴지는 분들이실 거예요. 그런 내 모습이 가엽고 안쓰럽게 느껴져 때로는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져서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게 버겁게 느껴지실 수도 있고요.
그런 분들께 저와 함께 시작해 보자고 말하고 싶어요. 시작은 언제나 막막하지만, 내가 하는 일에서부터 최선을 다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조금은 용기가 생겨요. 무언가를 내 삶에 더하거나 빼는 것보다 그저 0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주부가 직업인 우리들은 주부의 일부터 최선을 다해 보기로 하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