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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구름 Jan 31. 2024

집안일이 해도 해도 끝이 없다고 느끼는 진짜 이유

주부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집안일만큼 매일매일 반복되는데 끝이 없는 일이 또 있을까요? 오전에 빨래통을 분명 비웠는데, 오후가 되면 이미 그득하고, 설거지는 깨끗한 그릇으로 있는 시간보다 싱크대에 담겨 있는 시간이 더 많은듯한 느낌, 어떨 땐 그릇을 싱크대 안에 넣어 정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장을 잔뜩 봐 와서 이래저래 소분해 둔 것도 엊그제 같은데 비워만 갈 뿐 그걸 채워 놓는 것도 주부의 몫이죠.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타 본 놀이 기구가 딱 2개인데요. 하나는 회전목마 하나는 다람쥐통이에요. 다람쥐통을 탔던 날 생리 중이었거든요. 진짜 미치는 줄 알았죠. 처음 타 보는 거라 그렇게 쉴 새 없이 빙글빙글 돌 줄은 상상도 못 했고, 게다가 왜 거꾸로 멈춰 있는 건가요? 정말 끝도 없이 돌아가더라고요. '다람쥐 쳇바퀴 돈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그때 온몸으로 경험했었답니다.




주부의 일, 집안일이 바로 그 다람쥐 통 안이더라고요. 제가 탔던 놀이기구는 그나마도 '끝'이 있었지만, 집안일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가 않더라고요. 내가 잠을 자는 시간 빼고는 계속해서 내 옆에 맴돌아요. 



예전에 제가 했던 일은 휴대폰을 고치는 일이었어요. 고장 난 휴대폰이 접수되어 오면 고객과 만나서 증상을 자세히 듣고 수리 과정을 선택합니다. 그 뒤에 고객에게 소요 시간과 비용을 설명하고 수리를 진행하죠. 수리를 마치고 나서 고객에게 수리된 휴대폰을 전달하면 끝.



세상에 '일'이라고 불리는 많은 것들에는 이렇듯 '마감시간'이 존재하고, '뚜렷한 결과'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집안일은 어떤가요? 오늘 청소했다고 해서 청소가 완전히 마감되는 건 아니죠. 청소 후에는 '깨끗함'이라는 결과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건 주관적인 느낌에 불과하니까요. 



마감시간과 뚜렷한 결과가 주어지지 않아서가 주된 이유로 보이는 데, 이게 전부일까요?



집안일이 해도 해도 끝이 없다고 느끼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 내려고 했던 마음 때문이었어요. 전업주부이기 때문에 일하는 엄마들에 비해서 집안일을 좀 더 많이 해야 하고, 그리고 더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일하는 엄마가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한다면, 나는 매일매일 쓸고 닦아야 한다 생각했고, 일하는 엄마는 평일에도 외식할 수도 있지만, 전업주부인 나는 평일에 남편 없이 외식이라도 하면 왠지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럴수록 더더 완벽하고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점점 더 집안일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늘려 갔던 거랍니다. 



오랜만에 친정에 다녀왔는데 친정 아빠가 그러시더라고요. "수경이는 백수잖아~ 백수니까 얼마나 좋아~" 하시는 거예요. 우리 친정 아빠뿐일까요? 저희 아이들도 학교에 가기 싫은 날에는 "엄마는 좋겠다. 집에서 놀아서"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매일매일 오랜 시간을 들여 집안일을 해도 막상 아이들이 집에 있을 때는 집안일보다는 아이 챙기기에 바쁘니 아이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죠. 이런 생각을 과연 저희 아이들만 하고 있는 걸까요? 저희 아빠만 전업주부인 저를 백수라고 생각할까요? 



돈을 버는 것만이 '일'이고, 돈을 창출해 내지 않는 일, 그러니까 주부가 하는 집안일 같은 건 일이 아닌 거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안에서 제가 몸부림칠 수 있는 방법은 더 바쁘게, 더 힘들게 보이는 거였던 것 같아요. 



이처럼 사회적으로 전업주부의 일을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더욱더 내 시간도 없이 집안일을 하게 되었고, 집안일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는 인식을 갖게 만든 두 번째 이유입니다.  



물론 그런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좋아해서 기꺼이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붓는 주부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주부들조차도 '인정'과 '칭찬'을 바라지 않을까요? 친정 아빠가 저에게 백수라고 말했던 그 순간, 제 막냇동생이 나서더라고요. "아빠 주부가 얼마나 바쁜데 그렇게 말해? 언니가 애 키우고 집안일하는 게 왜 백수야?" 참고로 제 막냇동생은 저보다 9살이나 어리고 결혼도 하지 않았어요. 



동생의 말을 듣고 깨달았죠. '아 내가 바라던 게 저런 거구나, 나의 노력을 조금이라도 인정해 주고, '정말 수고했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깨끗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다' 그런 작은 칭찬들이요. 주부의 일에 대한 인정과 칭찬들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더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직장인들이 직장에서 자신의 업무처리를 하는 시간, 주부의 시간도 주부의 일을 하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죠. 



사회적인 인식이 바뀌기를 원하면서, 다른 사람의 인정과 칭찬만을 바라며 나의 마음과 몸을 혹사시키던 것들을 이젠 그만두기로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고, 나다운 주부의 모습으로 살아가자.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제가 선택한 방법은 주부의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한 것입니다. 



주부의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는 것은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완벽하려는 생각을 비우고, 좀 더 나답게 살림을 이끌어 가고, 마감 시간을 정해 하루종일 집안일만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를 돌보겠다는 의미랍니다. 그게 제 나름대로 찾은 주부의 일을 스스로 인정해 주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제가 했던 방법들을 아래에 소개 해 볼게요! 








1. 완벽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선택과 집중을 한다. 

집안일에는 완벽이라는 말이 애초에 어울리지 않아요. 나 혼자 쓰는 살림도 아니고, 여러 가족이 함께 쓰는 데 항상 완벽하게 유지될 수가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사람마다 '이것만은 절대 포기 못해'라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그런 부분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어요.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은 평균 정도만 유지하고, 꼭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집중하는 것이죠. 저는 요리를 좋아하지도 않고, 잘 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요리 목록을 쭉 적어 냉장고에 붙여 두고 그 요리만 돌려서 해 먹어요. 잘 못하거나 손질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요리는 밀키트나 반찬을 주문해서 보충하고요. 평일에도 가끔 외식을 하더라도 정해 놓은 예산안에서라면, 제 컨디션에 따라 기꺼이 선택합니다. 



반면 집안에 물건들이 제자리에 없는 건 참을 수가 없어요. 실제로 정리정돈을 좋아하고 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리정돈을 잘할 수 있는 나의 강점을 살리는 살림을 합니다. 완벽하게 모든 걸 잘 하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강점과 접목해 좀 더 나다운 살림으로 이끌어 가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2. 남들만큼은 해야지~라는 생각을 비운다. 

회사에서 같을 일을 해도 각자마다 가지고 있는 능력은 달라요. 주부도 마찬가지죠. 모두가 다 살림 고수가 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주부지만, 나라는 사람은 고유하니까요. 나다운 기준을 스스로 정하는 겁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나만의 기준이요. 그게 집안일에 마감시간을 결정하게 도와줍니다. 



3. 감당 수준 이상을 가졌는지를 살펴본다. 

물건을 극도로 줄이는 미니멀라이프도 해 본 적이 있죠. 하지만 그건 저와는 맞지 않더라고요. 저는 감당 가능한 수준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넘쳐 나는 물건들 때문에 집안일하는 게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물건을 비우는 게 맞지 않을까요? 내가 관리할 수 없을 정도의 소유를 발견했다면, 정리를 시작해 보세요. 



4. 시스템을 만들어 가자. 

집안일에 무슨 시스템? 할 수도 있어요. 집안일에도 일정한 루틴이 필요하고, 이 루틴이 반복되면 시스템이 되는 거랍니다. 나의 강점을 살려 효율적으로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집안일을 기본 살림 항목으로 정하고, 약점인 살림을 이만해도 괜찮다는 마감 기준을 정하고, 이것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도록 나만의 루틴을 만드는 겁니다. 요리 못하는 제가 할 수 있는 요리 목록을 메뉴판처럼 적어 냉장고에 붙인 것처럼 말이죠. 



5. 가족들에게도 역할을 부여한다. 

집안일은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거예요. 주부가 좀 더 많은 영역을 담당하는 것이지만요. 나이나 능력치에 따라 할 수 있는 집안일을 할당해 같이 하기로 합니다. 밥을 먹고나면 각자의 그릇을 개수대에 담가 두는 것,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고 나면 정리를 하는 것, 자신이 자고 일어난 이부자리는 스스로 정리하는 것 등 어린아이들이라도 할 수 있는 집안일이 있어요. 남편은 분리수거를 담당해 주고 있답니다. 



가족과 집안일을 함께 한다는 게 주부의 일을 줄이는 데 엄청난(?)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가 집에서 논다는 생각, 집안일을 다른 일보다 중요하지 않고 쉽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몸소 체험함으로써 느낄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을 잘 만들어 간다면, 하루종일 집안일만 하다 끝이 났구나 하는 허무함에서도 벗어나고, 좀 더 만족스러운 하루하루를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나머지 시간이 주부 자신의 성장을 위한 시간으로 쓰이길 바랍니다. 




아이들이 모두 성장했을 때, 집안일에만 매진한 나보다 집안일을 나답게 즐겁게 해 내면서, 나의 성장을 위해서도 공부하고 도전했던 것 중에서 어떤 모습이 더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울까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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