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쉼표구름 Feb 07. 2024

주부가 돈관리 7단계를 거치면서 겪은 놀라운 변화

돈 걱정이 주부 일상을 갉아먹지 않도록

아이 둘 낳고 외벌이 네 식구가 되니 덜컥 겁이 났어요. 전세 유목민 생활도 끝내고 싶고, 아이들이 자라면 점점 더 돈 들어갈 때가 많을 텐데 하면서요. 이러다가 노후에 병원 갈 돈도 없어서 아이들에게 기대는 상황이 오면 어쩌나 싶어서 한숨이 절로 나왔어요.



물론 너무 먼 미래까지 걱정한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초등학생이 된 것 같아서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등록금을 내야 할 날이 금방 찾아올 것만 같은 느낌은 지울 수가 없더라고요.



더 아껴야 해!!

더 벌어야 해!!

그런데 난 전업주부인데 어쩌지?



이런 생각은 돈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들을 만들어 냈어요. 그런 감정들이 격해지는 날에는 어김없이 아이들에게 괜한 트집으로 짜증을 내거나 남편과 다투는 날이 늘어났지요. 나에 대한 실망은 날로 쌓여 갔네요. 돈에 대한 걱정 때문에요.





결혼 3년까지는 아이도 없고 둘이 함께 직장에 다니면서 돈을 벌어서 그런지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도 들었어요. 집 주변이 대학가라 먹을거리, 놀 거리가 풍부했고, 가격은 저렴하고 양은 푸짐했지요. 그런 덕분에 쇼핑도 자주 하고, 외식도 참 자주 했었어요.



그랬는데도 통장에는(남들 기준엔 결코 많지는 않았지만) 현금이 매달 조금씩 남아 있었죠. 그러니 부족하다는 생각 없이 지냈던 것 같아요. 물론 성격상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항상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에 비하면 그땐 영양가 없는 걱정들이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슬프게도 그때 돈을 모을 수 있는 적기였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나 알았답니다. 그렇게 외벌이가 되고, 아이가 하나 생기니 매달 허덕이기 일쑤, 모아둔 돈도 얼마 없으니 누가 결혼한다고 연락만 와도 가슴이 두근두근했던 것 같아요. 현금이 늘 부족했거든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내린 결정은 애한테 필요한 건 사고, 나에게 쓰는 돈은 극단적으로 아끼는 거였죠. 앞머리 자르는 돈 2,000원이 아까워서 뒤로 넘겨 핀으로 고정하고 다녔어요.(개인적으로 이마가 푹 꺼져서 앞머리가 있어야 외모 자신감이 살짝 올라가는 편인데, 그 당시 자존감이 바닥을 기었던 원인에 앞머리도 포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ㅎㅎ) 옷도 당연히 남편이 입다 작아진 걸 입었죠.(그게 맞았다는 것도 자존감 하락 원인)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회사 동아리 모임이 있다고 밤늦도록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급성장기 때문에 하루종일 품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던 아이를 겨우 재우고 나와 멍하니 앉아 있는데, 띠롱! 하고 문자 도착 알림음이 울리더라고요.


**호프 132.000원


몇 시간 뒤 집에 들어온 남편에게 저는 이런 행동을 했어요. 집에 있던 몇 안 되는(?) 통장을 모두 모아 집어던지면서 소리칩니다.

"왜 나만 아끼고 궁상떠는데? 오빠는 나가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 다 만나는데,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그냥 통장에 있는 돈 다 써버려!!!!"



기습 공격을 받은 남편도 참 황당했겠지만, 저는 비참했어요. 그런 말을 하면서 느꼈거든요. '나 정말 자존감이 바닥이구나' 하는걸요.



저를 가장 괴롭혔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남편 옷을 입으면서 궁상떠는 제 모습이요? 뜻대로 되지 않는 육아? 아이를 낳기 전과 후가 똑같아 보이는 남편의 모습? 물론 그런 것들도 맞지만, 저를 가장 괴롭혔던 건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었어요.



예나 지금이나 '쓸모'에는 경제적인 부분이 빠지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주부라는 위치가 바로 나라는 사실에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 건가?'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쓸모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던 거랍니다.



주부도 노는 거 아닌데, 하루종일 바쁜데,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어요. 남편은 직장에서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하면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고, 한 해 한 해 경력이 쌓이면 진급을 해요. 아이도 그렇죠. 누워서 어른의 손길을 필요로 하던 아이가 어느새 뛰어다니더니 혼자서 학교에 가고 심부름을 다녀옵니다. 그런데 저는 여전히 그냥 '주부'였던 거예요.



내가 보탬이 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저를 지배했고, 저는 자주 무기력해짐을 느꼈습니다.





저는 꿈이 있어야 사는 사람이에요. 어릴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자주 주눅 들고 걱정이 많은 아이였지만, 마음속엔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어서 친구들이랑 점심시간에 모여서 늘 노래를 부르곤 했어요. 고등학교 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했지만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야간 대학교에 진학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거든요. 현실에 눈을 뜨고 나서 선생님에 대한 꿈은 포기했지만, 좋은 생각과 같은 월간지에 원고를 보내면서 작가에 대한 꿈은 품고 살았더랬죠. 마음속에 품고 살았던 꿈은 고단했던 삶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어요.



그런데 아이 둘을 낳고 나서는 이런 꿈들을 모두 잊고 살았어요. 학교 숙제를 하던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엄마도 꿈이 있느냐고요. 저는 잠시 침묵하다가 엄마는 작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어요. 아직 마음속에 꿈이 살아 있었던 거예요. 이 일로 저는 다시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겠다 다짐하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쓸모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제 꿈마저 갉아먹으려 들더라고요. 글을 쓰려면 글과 관련된 책도 읽고 생각도 정리해야 하는데 수시로 들리는 소리에 좌절했거든요. "이럴 시간이 어디 있니? 돈을 더 벌어서 전세도 벗어나고, 아이들 교육 자금, 노후 자금까지 마련해야 하는 거 아니야?"



꿈을 품고 살아야 사는 사람인 동시에 현실의 문제도 잘 해결해 놓아야 마음 편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던 순간이었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돈 걱정이 내 꿈을 갉아먹지 않도록 우리 집안 재정부터 돌보자고요.



그때부터 돈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었어요. 하라는 대로 하면서 우리 집과 맞지 않는 방법은 걸러 내고, 또다시 실행하고, 또 걸러내고, 그렇게 제 나름대로 우리 집에 맞는 돈 관리 7단계를 만들어 냈어요. 그 결과로 쓰게 된 가계부는 우리 집에 맞는 돈 관리를 주부인 제가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우리 수준에 맞는 내 집도 마련했고, 우리 부부의 노후 자금으로 조금씩 돈을 모을 수 있게 되었어요.



당장 더 벌지 않아도 괜찮은 가계 상황으로 내가 직접 만들어났다는 생각은 자긍심으로 피어났으며, 그것은 다시 나에 대한 믿음으로 자라나더라고요. 돈을 더 벌지 못해 쓸모를 다하고 있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에서 서서히 벗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잠재우고, 무기력도 잘 다스리게 되었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나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일상을 살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게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어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주부들께서도 저와 비슷한 고민을 많이 하실 것 같아요. 지금 당장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집안 재정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요. 하지만 너무 서두르게 되면, 버는 돈에 비해 지출이 더 많아질 수도 있어요.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균형이 깨질 수도 있고요.



서둘러 더 버는 것보다 우선은 더 벌지 않아도 괜찮은 정도를 가족과 상의해서 정해두고, 그 정도를 지키기 위해서 불필요하게 새는 돈은 없는지, 우리의 소비 습관은 잘 잡혀있는지 가계부를 쓰면서 정리해 나가시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합니다. 주부로서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해 낸다면, 그게 결국은 나중에 대단한 걸 만들어 낼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거라 믿거든요.



당장 내 경제적인 능력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힘들어하지 마세요. 물론 저도 가끔은 빠른 성과를 보이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미워질 때도 있지만 그때 이런 생각을 합니다. 넉넉하진 않더라도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건강하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아주 조금이지만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위한 노력을 하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려고 노력합니다.



돈 걱정이 우리의 일상을 갉아먹고, 나의 멘털을 잡아먹지 않도록 주부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계부를 쓰자고 제안합니다. 그것부터 시작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는 더 버는 내가 되더라도 잃지 않고 지켜나갈 수 있을 거예요. 돈도, 내 꿈도요!




[쉼표구름이 제안하는 돈관리 7단계]


1. 부부가 서로 돈에 대한 대화를 나누자.

2. 부부 통장 모으기

3. 자산과 부채 적어 보기

4. 고정비, 연간비, 변동비를 적어 보기

고정비: 매달 숨만 쉬어도 나가는 비용

연간비: 1년 단위로 들어가는 목돈

변동비: 식비, 외식비, 생필품 비용 등

5. 가계부 쓰면서 새는 돈 잡기

핸드폰 요금제 바꾸기, 보험료 다이어트

편의점 자주 가는 습관 바꾸기 등

6. 생활비, 연간비, 저축 예산 정하기

수입-고정비-연간비=생활비+저축가능액

지출부터 정리 후 저축액 늘리기

7. 통장 쪼개기

입출금 통장(고정비 출금)

생활비 통장(체크카드 연결)

부부 용돈 통장

연간비 통장

적금 통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