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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버튼

by 쉼표구름

'휴대폰 배터리 없는 게 내 탓이냐고?

왜 나한테 짜증을 부리고 가는지 모르겠네...'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청소기를 신경질적으로 밀게 된다.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청소기로 빨아들이다

아들 방에 들어갔다.

역시나 엉망인 책상 위,

이부자리는 정리를 한 건지, 만 건지

대충 말아 올려놓은 이불이 보인다.

이불을 털어 가지런히 개어 놓아 주었다.



베개의 먼지를 손으로 털어내다

새삼스레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이제 막 출발하는 노란 버스 안에서

엄마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작은 손을 흔들던 아이의 모습이었다.



버스를 태워 유치원에 보내는 것조차

조마조마하고 걱정되었던 엄마는

뒤돌아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다.

또래보다 늦된 아이,

표현이 서툴러서 놀이터에서도 매번 울던 아이가

스무 명 남짓 아이들이 모여 있는 반에서

잘 지낼 수 있을는지...



참관 수업을 위해 유치원을 찾은 그날도

잔뜩 미간에 힘을 준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이와 샌드위치 만드는 활동을 함께한 뒤

아이들은 앞에 앉고

참관 수업에 참여했던 부모님들은

뒤편에 자리했다.



잠시 후 피아노 소리와 함께

선물로 준비했다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세상에 좋은 건 모두 주고 싶어

나에게 커다란 행복을 준 너에게

때론 마음 아프고 때론 눈물도 흘렸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싱그러운 나무처럼 쑥쑥 자라서

너의 꿈이 이뤄지는 날 환하게 웃을 테야

해님보다 달님보다 더 소중한 너

이 세상에 좋은 건 모두 주고 싶어

이 세상에 좋은 건 모두 드릴게요

날 가장 사랑하신 예쁜 우리 엄마

때론 마음도 아프고 눈물 흐리게 했지만

엄마 정말 사랑해 정말 사랑해요



싱그러운 나무처럼 쑥쑥 자라서

나의 꿈이 이뤄지는 날 환하게 웃으세요

엄마를 생각하면 왜 눈물이 나지

이 세상에 좋은 건 모두 드릴게요

엄마 사랑해요'



사실 첫 소절을 들을 때부터

눈물은 이미 차올랐지만 꾹꾹 참았다.

하지만 곧 눈물 버튼은 켜졌고,

참관 수업에 참석한 부모님들과 함께

꺼이꺼이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유치원 안에 있던 갑 티슈 한 통을 돌려 가며

우리는 연신 눈물을 닦았다.

서로 마주 보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는데

그 웃음 뒤에는 모두들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어이구 정말 언제 저렇게 큰 거야 기특한 내 새끼...'



부모님들이 왜 이렇게 우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아이들은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기 바빴다.

우리 아이도 다르지 않았다.

똘망하게 빛나는 눈빛으로

엄마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조급해질 때가 많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한 마디도 틀린 말이 없다는 옛말을 떠올리며

작은 실수에도 지나치게 훈육을 하게 된다거나



뉘 집 애는 벌써 한글을 쓴다는데

구구단은 다 떼고 학교에 간다는데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남의 집 아이와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되돌아가 생각해 보면,

아이가 동요 한 곡을 불러줘도

행복하고 기특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다.



유치원 졸업할 때까지도 무섭다며

그네를 잘 못 탔던 아이지만,

자전거는 한 시간 만에 뚝딱 배워 탔다.

그런 걸 보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하게 될 테고,

못하게 되더라도

그거 말고 다른 걸 하면 되는 것인데

엄마는 기다림에 서툴렀다.



양육의 절반은 기다림 일지도 모르겠다.

점점 나아지길,

제 몫을 해 내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우리 아이가 나에게 사랑 노래를

목청 높여 불러준 그날처럼

'어이구 언제 이렇게 컸을까...' 싶을 정도로

기특하고 감사할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을

믿으면서 말이다.



몸은 컸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은

행동을 할 때면,

자주 화가 나고 답답한 감정을 느낀다.

어릴 땐 그나마 엄마가 말하면 인정하고

곧 사과할 줄 알았는데

이젠 그러지도 않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가장 답답하고 속상한 건

어쩌면 아이 자신일 지도 모르겠다.



잘하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건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니까

우리 아이도 그렇겠지...



아침 등굣길만큼은 기분 좋게 보내주고 싶은데

오늘 아침을 떠올리면 미안해진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아이가 실수한 게 맞지만

본인도 그 실수를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조금만 더 너그럽게 이해하고,

기다려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지

이 세상에 모든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을

잔소리로 대신하지 말아야지.

오늘의 노래가 나에게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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