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수경 Nov 15. 2024

다정한 마음보다 매력적인 것은 없어

군대 간 큰 아들에게


형이랑 누나는 어디로 갔지?

물어보니 하늘로 슝~올라갔대요

그럼 호랑이는 어디로 갔지?

물어보니 땅으로 쿵 떨어졌대요.

 

36개월,

엄마품에서 햇님 달님 공연 보면서

두 눈 동그랗게 뜨며

"호랑이가 엄마 잡아먹었지 무서웠지."

하며 눈이 똥그래져가지고는 겁먹은 표정을 하던

네가 벌써 성인이 되었구나,

지나간 일을 기억하며 잠시 너를 애틋하게

생각해 본다. 너와 스물한 해를 살면서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고 기쁜 일들이 오히려

더 많고 평범한 날들이 지나 어엿하게 스무 살이 되었지만, 어쩌면 너에 기억 한편에는 힘들고

마음 아팠던 일들이 살면서 불현듯 떠오를지도 모르겠지 그때 엄마가 아는 시 한 편을 소개해 주고 싶어


나쁜 일이 일어나길 바라고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열심히 살았는데

병을 얻기도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하는 일,

나쁜 일까지도 생의 노력의 의한 결과로 자신을 다독일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나쁜 일까지도 너의 삶의 단면이고 생의 노력이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다시 태어나는 당신에게 라는 책을 읽으며 너에게 시 한 편을 소개해본다.


추회(追悔) / 김소월


나쁜 일 까지라도 생의 노력

그 사람은 선사(善事)도 하였어라

그러나 그것도 허사라고!

나 역시 알지마는 우리들은

끝끝내 고개를 넘고 넘어

짐 싣고 닫던 말도 순막 집의

허정가, 석양 손에

고요히 조으는 한때는 다 있나니,

고요히 조으는 한때는 다 있나니.


스물한 살, 어느덧 군대를 다 갔구나

엄마도 너와 함께 자랐단다. 스물네 살에 낳은 너

엄마도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안돼서 널 낳았어

네가 울면 나도 따라 울던 시절이었지 가만히 보면

엄마는 자격을 주지 않아도 네가 태어나면서 너의 존재로 인해 엄마가 되더구나, 성인이 될 때까지

엄마를 크게 걱정시키지도 사춘기 때도 엄마 곁에서

엄마를 많이 사랑해 주고 동생들을 잘 돌봐 주고

성품이 선하고 온유한 네가 있어줘서 엄마가

동생. 다섯을 낳게 된 거 같아

동생들 돌보느라 애썼고 수고했고 많이 고맙다.

고등학교 졸업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군대를 갔구나, 네가 자라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가 기억하고 스스로 다짐한 것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볼래,


사랑법 첫째


                       -고정희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내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이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

고정희

엄마가 좋아하는 작가 은유의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는 책에서 청년들과 고정희 시를 읊었다더라

엄마가 바라는 "기대."라는 폭넓은 의미를 떠올려봤어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사랑에서 비롯된 것일 때도 많지만 때로는 자기 기준에서 기대가 높아져 강요하게 되기도 하고 서운해지기도 하게 되니 상냥한 폭력이 될 때도 있는 것 같아


아들, 관계를 맺어가는 모든 일은 기대의 싹이 자라지만 돌덩이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고 살자꾸나.

자유로이 풀어놓아 주고 마음껏 나아가도록

조용히 응원하기로 하자!


엄마가 문학을 좋아해서 시를 짓는 마음으로 너희들을 키우려고 애썼는데 혹여 바른길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야단치고 다그치는 횟수가 많았던 건 아닐까 싶다

예의 바르고  훌륭하게 자라줘 고맙다.


엄마가 너를 낳고 이름을 지을 때 네가 다른 이들을

돕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서 도울 우 자를 네 이름에 넣었는데 네 곁에 언제나 네가 돕고 사랑해야 할

친구들이 넘쳐났어 중학교 때 반 전체 아이들을 데려와 좁은 거실이 넘쳐날 때는 중학교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순수함 속에 엄마는 행복했단다.

네가 군대 가고 여섯째가 태어나서 막내 동생을 휴가 나오고 몇 번 보지도 못했구나, 그래도 다섯째 동생이

군대 간 오빠에게 보낸 위문편지를 받고 군에 선임들과 동기들이 그 편지를 보고 귀엽다고 하고

한바탕 즐거웠다니 감사했어

사랑하는 아들아

세상은 너에게 계속 다그칠 거야 그럴 때 너는 너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길 바란다. 네가 군대 가서도 다시 새롭게 도전하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듯이

웹툰을 보며 하루의 피로를 잊듯이 선임이 되어 이제 군대에 들어온 후임을 챙겨주듯 네가 지금껏 해오던 대로 사랑하기를 바라


곧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때 휴가 맞추어 나와

2024년도를 아름답게 장식하기로 하자. 너에게 마지막으로 바라는 마음을 담은 제인오스틴의 말들 중

한 문장을 적을게

다정한 마음보다

                              매력적인 것은 없어.

제인오스틴의 말들


네 안의 고요한 성품이 잔잔히 흘러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고 다정하게 건네서 너 자신도 네가 한 그 말 때문에 고와지고 주변 사람들도 힘을 얻길 바라.


언젠가 한 작가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보고 이름을 붙이셨대 산, 바다, 강, 들, 꽃이라고 그때는 여섯째가 태어나기 전이었지 그분이 쓰신 글을 잠시 적어볼게


"산, 바다, 강, 들, 꽃."이라는 이름을 마음대로 붙였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타고난 대로, 저답게 되기를 마음으로 빈다. 저마다의 특질대로 억압당하지 않고 무너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강하고 아름답게 커가기만을 바란다고


우리 집의 든든한 산!

엄마도 그리되기를 두 손 모아 본다. 또한

너에 주변의 모든 청년들도 그리 되기를 바라

강하고 아름답게 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에 품고 젊음을

사랑하고 누리길 바래


제대할 때까지 건강하자. 스물두 살 너에 여름은

지금보다 더 찬란할 거야.


가을이 깊어가는 11월이야 낙엽이 뒹구는 날,

군대 간 너를 기억하고 추억하며 글을 쓴다.












이전 02화 여섯 자녀를 낳아 키우는 일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