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거짓말 못 하는 거 알지?"라는 말의 또 다른 뜻

인간관계 속 '솔직함과 무례함의 사이'에서 상처 받은 내 마음 챙기기

by 기록하는 슬기


30대에 들어선 지 아직 몇 년 지나지 않았지만 20대 때와 비교해봤을 때 달라진 점들은 몇 가지 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것 하나는 '단조로워진 인간관계'이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인간관계에 대해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생각했었다. 상대방과 내가 잘 맞지 않는 가치관, 성향을 가지고 있거나 가끔은 내게 상처 주는 말, 스트레스를 주는 말을 했을 때도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내가 한 번 참으면 되지.'하고 넘겼었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몇 년 내내 혼자 받아주고 참아줄 수는 없었다. 그런 관계 속에서 받은 잔 상처들과 스트레스들은 쌓이고 쌓여 두껍고도 높은 벽을 만들었고, 결국 나는 그들을 외면했고 피했다. 그렇게 다시 세월은 흘러 그들과 나 사이에는 그 큰 벽 조차 의미 없어질 정도로 먼 곳에서 살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와 서서히 멀어진 사람들을 떠올려보니 그들의 공통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하던 말이 있었다.


"나 거짓말 못 하는 거 알지?"

"나 솔직한 거 알지?"

"내가 좀 객관적이고 직설적인 거 알지?"

"나 꼭 이런 건 말해야 하는 거 알지?"


처음에 나는 그들의 그런 솔직함을 매력이라고 생각했었다. 속을 알 수 없는 늘 가식적인 사람들보다는 표정만으로도 모든 게 다 티가 나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솔직한 사람들이 더욱 진실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과 관계가 더욱 가까워지고 깊어질수록 그들의 솔직함은 점점 날카로운 화살로 변해 타인을 향해 쏘고 있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내게도 수많은 화살들이 꽂혀있었고, 그걸 알아차렸을 때 이미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P20180708_164911529_282BBFB1-DDDD-4107-8200-913474932994.jpg 어느 날 돌아보니 생각보다 괜찮지 않았던 날들이, 내가 많았었구나. <사진 : 2018. 호주, 퍼스>




그들은 친하다는 이유로, 자신이 이 관계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이유로, 거짓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그들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가감 없이 말했다. 이를테면, 오랜만에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 보자마자 신랄하게 '외모 지적'을 한다거나, 혹은 근황을 이야기하다가도 대놓고 "어차피 돈도 못 버는데 그 일은 왜 아직도 붙잡고 있는 거야?", "내가 봤을 때, 이렇게 하면 걔는 잘 되기 힘들어."라는 말을 하거나, 자신과 연애 가치관이 다른 사람에게는 "너 그 남자랑 이제 헤어져! 너 나중에 100% 후회한다!", "내가 아는데 그 직업 가진 사람은 별로야."라는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했다. 그리고 꼭 대화 중간중간 상대방의 눈치를 아주 조금씩 봐가면서 이 대사를 덧붙였다.

"너도 알겠지만, 내가 거짓말은 못 하잖아."



나도 처음에는 '솔직함과 무례함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했었다. 그들이 매번 말했듯이, 그들은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솔직함이 도를 넘어 무례함으로 변했는데도 그걸 전혀 알아채지 않는 그들의 태도를 오랫동안 옆에서 보고 느끼며 나는 제대로 그 차이에 대해 학습할 수 있었다.


무례함과 솔직함은 같지 않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같을 수 없다. 상대를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상대의 표정과 반응을 느끼고도 "너 알잖아. 나 솔직한 거."라는 말은 절대 나올 수 없다. 내가 어쩔 수 없이 멀어져야 했던 몇몇의 솔직한 사람들은 거짓말을 못 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타인에게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배려'를 못 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P20180812_190027503_FFC75D1A-A814-4A39-B02E-FC71FD19085A.JPG 배려 없는 솔직함 때문에 그 진심은 오해받기 딱 좋다. <사진 : 2018. 호주, 퍼스 코테슬로>




하지만 내가 방금 언급했던 '거짓말 못 하는 사람들'과 단번에 관계를 끊어낼 수 없었던 이유는 나도 그들이 그렇게 표현하는 이유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고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참았던 것이고, 좋게 풀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심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귀로 들리지도 않는다. 아무리 마음속 생각으로는 '난 네가 정말 좋아. 잘 됐으면 좋겠어.'라고 하면서 반복적으로 "야! 그걸 왜 그렇게 했어! 너 정말 이해 안 간다."라는 식으로 표현한다면 그 누가 그런 표현 속에 있는 진심을 알아줄 수 있을까.


그 후, 내가 깨달은 점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굳이 선을 넘어가면서 까지 솔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매번 거짓말을 하면서 상대방이 듣기 좋은 말을 하자는 것은 더욱 아니다. 만약 솔직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상대에게 표현하기 이전에 내가 내 입으로 내뱉을 말과 그 태도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관계가 소중하다면 이 정도의 배려와 노력은 당연하다고 본다.)



결국 어떤 관계가 끝나고 나서 내게 남는 것은 '그 사람이 내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보다 '그 사람이 내게 어떻게 말과 행동으로 표현했는지'가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 사람의 그러한 태도로 인해 느꼈던 '그때 나의 감정'만이 더욱 선명히 간직될 뿐이다. 그래서 진심과 표현은 적절히 섞여야 하고, 그 진심과 표현을 서로가 알아줬을 때 그 관계의 생명력은 길게 연장된다.

(맞다. 이는 말처럼 쉽지 않기에 인간관계는 인간에게 평생 과제다.)







지금은 나와 많이 멀어졌지만 나는 그 사람들 자체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들과 나는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표현하고 노력했던 그 방식이 달랐다고 생각한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들과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행복하게 지내길 진심으로 바란다. 나 역시 서로에 대한 진심과 표현을 느껴주고 알아주는 사람들과 그 인연을 아껴가며 잘 살고 있으니.










오늘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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