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속 엇갈리는 감정과 표현 사이에서 지친 내 마음에게
때는 이번 연도 겨울, 내 생일 즈음이었다. 그날은 서울에서 친구 S와 1년 만에 만나는 날이었다. S는 나와 예전에 알바 시절 함께 고생했던 친구로 서로 일을 그만둔 이후로도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1년에 한두 번은 만나는 친구이다. 현재 S와 나는 사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늘 적극적으로 나를 보러 서울까지 와주는 그녀 덕분에 우리의 관계는 생각보다 오래 유지되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 S는 며칠 뒤 내 음력 생일까지 잊지 않고 선물까지 챙겨 와 나의 마음을 사르르 녹여버렸다.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나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방금 받은 생일 선물 사진과 해맑게 웃는 우리 둘의 셀카를 내 sns에 업로드를 했다.
그렇게 S와 함께하는 시간은 무르익어갔고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한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마쳤고 S는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혼자 남겨진 나는 그 틈 타 잠시 휴대폰을 꺼내 보았다. 평소와는 달리 그때 내 카톡은 새로운 메시지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카톡 메시지의 주인공은 B였다. B도 S와 같은 알바를 다닐 때 알게 된 친구 중 한 명이다. B는 알바를 길게 하지 못했고 사정 상 곧장 본가로 내려가는 바람에 가끔 연락만 주고받는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 B는 일 년에 2~3번씩 내게 먼저 연락을 해줬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내가 너무 보고 싶다며 그녀가 지내는 곳으로 놀러 오라고 했었다. 하지만 B는 버스를 타고 4시간 30분을 가야 하는 먼 곳에 살고 있었고, 그 당시 나는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기에 B와 적극적으로 약속을 잡지 못했었다.
그런 B에게 10통 가까운 메시지가 와있길래 나는 순간, '아 방금 전에 내가 sns에 올린 생일 선물 사진을 보고 내 생일인걸 알았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아. 생일 축하 문자를 보냈구나.'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녀가 보낸 8개의 말풍선 속에는 '생일'이라는 두 글자는 없었다. 그녀의 메시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고, 결국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녀의 메시지 내용을 짧게 간추리면 이러하다.
'나는 예전에 너와 함께 했던 시간을 아직도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너를 정말 좋은 친구로 생각하고 좋아해. 하지만 앞으로는 널 귀찮게 하지 않을래. 이제는 멀리에서 널 응원할게. 지금 내 문자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어쩔 수 없어. 그동안 너무 고마웠고, 건강히 잘 살아. 하고 싶은 일로 꼭 성공하길 바랄게.'
B와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했을 때가 3개월 전이었고 그녀와 나는 서로의 안부를 너무도 평범하게 물었었다. 그때도 특별한 일이 없었는데 그녀는 왜 갑자기 나에게 이런 이별 문자를 보낸 건지 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냐며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S와 저녁 식사를 하는 도중 중간중간 카톡을 확인했지만 메시지 옆에 1은 지워지지 않았다. 몇 시간 후 답답한 마음에 B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는 건조한 통화 신호음뿐이 들리지 않았다. 결국 다음날이 될 때까지 카톡 메시지의 숫자 1은 지워지지 않았고 불길한 마음에 sns가 확인을 해보니 그녀는 이미 나를 차단해놓은 상태였다. 내겐 작지 않은 충격이었다.
사람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좋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30년 넘는 인생을 살면서 나도 누군가를 차단했었고, 또 거꾸로 차단을 당하기도 했었기에 '차단'이라는 그 자체가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다만 이런 식으로 대뜸 몇 통의 문자를 받고, 게다가 너무도 진심 어린 응원과 나를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었다는 그 내용을 마지막 문자로 받고 바로 차단을 당하는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B가 나를 차단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불쾌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궁금했다. 왜 갑자기 내가 S를 만난 날, 그녀는 나에게 따뜻한 메시지를 보내 놓고 매몰차게 나를 바로 차단했던 것인지.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따로 있던 건 아니었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B는 S보다 나와 먼저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S는 알바를 조금 늦게 시작했었지만 나와 업무적으로도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었고, 당시에 나와 사는 곳도 가까웠기에 사적으로도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아마도 B는 그때부터 S에게 말 못 할 질투와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모두 각자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데 내가 자신(B)은 만나지 않고, S만 만난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냥 차라리 대놓고 나에게 "나 서운해. 왜 나는 안 만나고 쟤는 만나?"라고 했다면 내가 어떤 이야기라도 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무렵, B가 왜 나를 차단했는지 그 본질적인 이유가 머릿속을 스쳤다.
모든 외부 상황을 다 제외하고 B와 나, 단 둘만 놓고 봤을 때도 이 관계를 더 좋아하고 소중히 생각하던 사람은 B였다. 만약 그녀가 퇴사 후 날 보러 서울로 왔다면 분명 나는 그녀를 기쁜 마음으로 만나러 갔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4시간 30분 떨어진 곳으로 그녀를 보러 가고 싶지는 않았다. 1년에 가끔씩 오는 그녀의 연락에 고마운 마음으로 답장을 했지만, 나는 그뿐이었다. 돌이켜보니 늘 먼저 연락하던 사람도 그녀였고, 보고 싶다고 말하던 사람도 그녀였다.
아마 그녀는 나와의 관계에서 마음이 더 큰 사람, 즉 약자였던 것 같다.
꼭 사랑하는 연인 관계에서만 마음이 크고 작은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남매나 자매(형제) 간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등 모든 관계에서 각자 그 사람을 생각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자로 잰 듯 50 : 50으로 유지될 수는 없다.
그러고 보니 B의 행동이 서서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힘이 들었던 것이다. 원래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이 마음을 쓸 수밖에 없고, 또 그에 비례해 기쁨과 슬픔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차분히 B와의 관계를 떠올려보니 잠시 품고 있던 그녀에 대한 의문점과 불쾌함이 녹아내렸다. 나를 그동안 많이 좋아해 줬던 B의 마음이 고마웠지만 그렇다고 먼저 B에게 다른 방법으로라도 연락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B와 나의 인연은 여기까지 이기 때문이다. B가 들으면 '너무 야속하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게 내 진심이다.
그런데 B도 그렇게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1년 전 나도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B의 역할을 오랜 시간 맡아 왔으니까. 아니, 그 이전에도 나는 자주 사람과의 관계에서 약자였다. 그만큼 그 관계들이 내겐 소중했고 내가 노력하면 지켜낼 수 있을 줄 알았기 때문에 모두가 다 떠나가고 나서 마지막에 홀로 남겨져야 했던 사람은 나였다.
사실 나는 그동안 여러 번 인간관계 속에서 혼자 더 좋아하고, 서운해했다가, 결국 상처 받는 경험을 반복하는 프로 짝사랑러 였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나 나름대로 인간관계에 대해 정의를 내렸고, 실제로 힘들 때마다 내가 정의 내린 대로 생각하니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곤함을 덜 느꼈다.
한 때 인간관계 속 프로 짝사랑러가 내린 '인간관계', '인연'이란 이러하다.
"한 사람의 삶에 끝이 있듯, 이 삶 안에서 만나는 모든 인연들 또한 모두 끝이 있기 마련이다. 우연히 생긴 이 모든 인연 또한 우연히 끝이 날 것이고, 그 끝을 뒤로 미루는 건 결국 서로에 대한 노력뿐이 없다. 하지만 그 노력도 때로는 우연을 이기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땐 그저 받아들이자. '우리의 우연과 인연은 여기까지 구나.'라고."
내가 내린 이 결론이 인간관계에 대한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내가 스스로 믿고 있고, 또 인간관계로 힘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다.
'이 세상에서 서로의 존재 조차 모르고 있던 타인과 타인이 만나 잠시 한 때라도 나와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나눴다면 이미 그걸로 된 거라고. 그러니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이 관계에서 너무 아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자고.'
+) 아주 만약에 B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동안 나와 나와의 기억을 좋은 감정으로 오랫동안 간직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너무 너의 진심을 늦게 알아서 미안해.
연락이 다시 닿을 수는 없겠지만 나도 멀리서 너의 삶과 일상, 그리고 행복을 진심으로 응원할게.
비록 너는 아팠지만 내게 좋은 인연이 되어줘서 고마워."
오늘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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