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선택한 꿈,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가난

내가 선택한 꿈을 책임질 줄 아는 단단한 마음을 응원하며.

by 기록하는 슬기



며칠 전, 평소처럼 유튜브에 접속해 이런저런 영상들의 썸네일과 제목을 보며 기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그때 못 보던 영상 하나가 추천 영상으로 떠있었고, 그 영상의 제목은 내 눈과 마음을 한 순간에 사로잡았다.

김선영이 응팔 전까지 연극만 한 사연, "가난이 좋았어"


이 영상은 tvn에서 예전에 하던 '내 귀에 캔디'라는 프로그램에서 서장훈과 김선영이 전화로 대화를 나눈 장면을 편집한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서로의 존재를 숨기고 전화로만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내가 본 영상은 서장훈이 김선영의 존재를 알고 나서 그 직후의 대화 내용이었다.



(프로그램의 특성상 서로 반말을 하며 편하게 대화를 나눈다.)

장훈 : 응답하라 1988을 보기 전에는 사실 너를 몰랐었어. 그런데 그 드라마에서 너를 보고 연기를 너무 잘해서 누군지 찾아봤어.

선영 : (놀라며) 진짜??? (자신을 찾아봤다는 이야기에 눈물을 훔치며) 서장훈이라는 사람이 나를 알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하네..

장훈 : 아니, 나뿐만 아니라 너의 연기를 본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느꼈을 거야. 그러면 그 드라마 전에는 계속 연극만 한 거야?

선영 : 응. 그전까진 쭉 연극만 했어. 20년 동안. 한 번도 안 쉬고..





그리고 서장훈은 조심스레 김선영에게 물어봤다.

"내가 잘 모르지만, 연극을 하면 경제적으로 큰 이득을 얻고 이런 게 아니잖아.."

이에 김선영은 대답했다.

"그럼~ 근데 그게 가치가 조금 다른 건데, 나는 아기를 낳고 기르기 전까지 돈의 중요성을 몰랐어. 안 썼으니까. 없는 대로 거지로 사는 게 너무 좋았어."

그 이야기를 듣고, 놀란 서장훈이 한 번 더 물어봤다.

"그래도 갖고 싶은 거나 하고 싶은 거나 있지 않았어?"

그리고 김선영의 이어지는 답은 이 영상을 보고 난 직후부터 며칠이 흐른 지금까지 내 가슴에 깊게 새겨졌다.

"전혀. 연극만으로도 충분했어."

"배고픈 거 알고 내가 선택한 거였으니까.. 우리가 선택한 가난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한다.

"예술은 배고픈 거야.
몇몇의 잘 나가는 대중 예술가들이 아닌 이상 예술로 밥 먹고 살기는 힘들어."


이 말을 들은 그 누구도 당당하게 '아니라고, 예술로 충분히 잘 먹고살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우리 주변만 돌아보더라도 예술가의 길을 걸어가다가 도저히 풀리지 않는 경제난에 결국 10년, 20년 혹은 인생의 전부를 차지했던 그들의 그 시간들을 포기하고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 와중에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나를 걱정하며 주변 사람들은 자주 내게 묻는다.

"솔직히 글 써서 먹고살기 힘들잖아.. 그래도 넌 계속 그 일이 하고 싶은 거야?"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나는 겁이 나지 않는 척, 덤덤한 척 대답했다.

"그렇지. 많이 힘들겠지. 근데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한 번 해보고 싶어."






나는 2018년 12월 호주에서 1년 간의 워킹 홀리데이를 마치고 잠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2~3개월 후 바로 호주로 돌아갈 계획이었기에 한국 와서 해야 할 리스트들을 하나 둘 지워가며 부지런히 계좌의 숫자를 줄여가고 있었다. 나는 호주로 가기 직전 급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어쩔 수 없이 한국에 남게 되었고, 몇 개월의 긴 방황 끝에 '글'을 써보자고 결심했다. 물론 그전에도 나는 글을 놓지 않고 틈날 때마다 어떤 공간에서든 내 글을 써왔지만 그때 글은 늘 회사 업무나 공부나 다른 것들에 밀려 2순위, 3순위, N순위가 되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결심을 할 때 가장 걱정되고 두려웠던 것은 '돈'이다. 당장 브런치에, 블로그에, 공모전에 글을 열심히 쓴다고 바로 어떠한 수익이 생기는 것은 아니기에. 그래도 당장은 부모님 집에서 자고, 먹는 것이 해결되니 자신만만했다. 어차피 매일 도서관에 가서 글을 쓸 거고, 사람 만나는 약속도 거의 잡지 않을 거고, 그러면 다른 소비도 줄일 수 있으니까. 실제로 돈은 얼마 없지만, 이러한 계기로 더 글에만 몰두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지난 8월, 9월, 10월까지 나는 아픈 날,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만 제외하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도서관에 가 글을 썼다. 그런데 이 단조로운 생활을 100일 가까이 복사+붙여 넣기 하듯 똑같이 반복하다 보니 나는 본능적으로 새로운 것을 원했다.

'그간 바쁜 거 핑계 대고 보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나고 싶었고, 가끔 가슴 답답한 날이면 시원한 맥주 한 잔도 하고 싶었고, 가까운 곳에 바람이라도 쐬러 가고 싶었고, 외출할 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예쁜 옷 하나쯤 갖고 싶었고, 좋다는 화장품 하나는 써보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에서 뭐 하나를 사려고 할 때마다, 누구와의 약속을 잡으려고 할 때마다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1년간 마이너스 내역만 찍히고 있는 나의 호주 계좌가 아닌 '나의 가난해진 마음'이었다. 물론 현실적으로도 계좌에는 정말 적은 금액이 남아있지만 친구들과 맥주 한 잔 할 돈은 아직 남아있다. 그런데 일정한 수입이 없고, 그 수입이 언제 생길지 모른다는 막연한 미래에 내 마음은 이미 궁핍해져 있었다. 그래서 뭘 하든 '돈'걱정부터 하게 되었다.


내가 선택한 이 길에서 인정을 받고 나의 글로 돈을 버는 그 시기가 언제 올진 아무도 모른다. 아니, 더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올지 안 올지 그것마저 모른다. 이 사실을 모르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 한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책을 지금까지 두 권을 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수입이 없으셔서 다음 책을 집필하는 와중에도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 일을 하신다고 했다. 그 작가님의 이야기는 내게 그리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작가분들도 대부분 투잡을 뛰거나 다른 일로 생계를 꾸리면서 글을 써오시는 분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스스로 나가떨어질 때까지 부딪혀보고 싶었던 나였다.


그런데 글 쓴다고 마음먹고 꼬박 4개월이 지난 요즘, 점점 나는 현실이 팍팍하다 못해 딱딱하고 차갑다고 느끼고 있었다. 12월에 들어서면서 내년이면 빼도 박도 못하는 만 30세를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앞으로 다가올 나의 현실이 한층 더 깊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찰나, 우연히 보게 된 짧은 이 영상 속 김선영 배우의 모든 대사 하나하나 그리고 그녀가 흘린 눈물이 내게 말하려고 했던 것은 결국 이 한마디였다.



"우리가 선택한 가난이니까.."


맞다. 내가 선택한 가난, 그리고 내가 선택한 꿈이었다. 모르고 시작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최악의 미래를 걱정하며 시작했던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어떤 회사에 들어가게 해 준다고 해도, 지금의 나로서는 거절할 것 같다. 더 이상 내게 의미 없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쏟으며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직장에서 꾸준한 경제생활을 하며 가정을 꾸리며 얻는 안정감에서 오는 행복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또 그 일을 통해 얻는 성취감에서 오는 행복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영상 밑에 이런 댓글을 달았었다.

"나는 저렇게 꿈 있는 사람들 보면 불쌍하더라. 왜 스스로를 더 힘들게 만드는 걸까. 나는 저런 사람들 이해가 안 간다."

아마 예전의 나라면 그 댓글을 보고 '뭐? 꿈이 있는 사람이 불쌍하다고? 난 꿈 없는 사람이 더 불쌍한데?'라고 생각하며 화가 나서 소심한 나의 의견 표출 방법으로 '싫어요' 손가락을 눌렀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댓글을 읽는데 누군가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느꼈다.

솔직히 나도 꿈이 있어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예전에 나와 지금의 내가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 '글'을 1 순위로 생각하고 매일 글을 써오며 하루에도 몇십 번씩 의심 가득한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노트북에 두 손을 올려놓는 이 반복된 생활을 4개월 넘게 해오며 일종의 내 마음에 근육이 생긴 것 같다. 이전보다는 확실히 더 단단해졌고 더 면역력이 강해졌다.


영상 속 그녀의 말, "우리가 선택한 가난이니까.."라는 말은 곧 "우리가 선택한 꿈이니까.."와 같은 말이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선택한 가난을 원망하고 언제 나의 곁을 떠날 거냐고 질책한다면 그것은 결국 내가 선택한 그 꿈을 원망하고 후회하는 것과 같다. 어떤 선택이든 그 책임은 따른다. 여기서의 가난이란 결국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책임져야 하는 일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러니 지금 당장 돈을 벌지 못하고 있는 것을 슬퍼하지도, 또 답답해할 필요도 없던 것이었다. 그저 나는 묵묵히 내가 선택한 꿈을 즐기면 됐던 것이었다. 그렇게 1년, 2년 몇 년이 지나면 언젠가 나의 내공도 그녀의 내공처럼 어느 곳에 있든 빛이 날거라 그렇게 믿는다.



나는 무조건 견디기보다는 내가 선택한 그 길에서의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 여정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사람,
나는 꿈이 있어 행복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오늘도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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