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것보다 준 것을 먼저 떠올리는 얄팍한 내 마음을 돌아보며.
어제저녁, 친한 친구로부터 케이크 쿠폰과 함께 메시지 한통이 왔다.
"생일 축하해!
근데.. 이번 연도 생일은 며칠이었어? 나 너무 늦게 연락한 거는 아니지..?"
나와 손꼽히게 친한 이 친구는 매년 이맘때쯤 이런 식으로 내 생일을 축하해준다. 누군가는 서운할 일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해한다. 왜냐면 나는 생일을 '음력'으로 챙기기 때문이다. 우리 또래만 해도 10명 중 9명은 양력 생일로 챙기는지라 생일을 음력으로 챙기는 그 개념 자체를 생소해한다. 설명을 할 때마다 음력 생일을 헷갈려하는 친구들 때문에 어렸을 때는 챙기지도 않는 양력 생일을 말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1년, 2년 시간이 점차 흘러 친구들은 각자 가정을 갖거나 사회로 나가 뿔뿔이 헤어져 지내느라 더 이상 서로의 생일은 특별하지 않은 날이 되었다. 그저 멀리서나마 메시지로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생일 당사자가 좋아할 만한 쿠폰을 사서 보내는 정도로 생일을 챙기게 되었다. 하지만 내 생일은 예외였다. 바쁜 일상 속에서 양력 생일도 깜빡하는 마당에 음력인 내 생일을 챙긴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섭섭하지 않았던 적이 없진 않았다. '나는 얘 생일을 잊어버릴까 봐 달력에 적어두고 메시지에, 쿠폰까지 보냈는데.. 얘는 내 생일에 축하한다는 한 줄 문자는커녕 아예 기억조차 못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한두 번 든 건 아니다.
요즘은 카카오톡이 알아서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 생일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나는 내 생일 알림을 꺼놨다. 그 알림을 받는 입장에서 애매한 기분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 이 친구 생일이었네.. 뭐라도 보내줘야 하나.. 아 연락한지도 좀 됐는데..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든 상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게 본의 아니게 부담 아닌 부담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대상이 되기 싫었다. 그리고 더 깊게 들어가면 내 생일인 거 뻔히 알림이 뜨는데도 기다리던 가까운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그건 더 서러운 일 아닌가. 그저 내 생일을 기억하는 가까운 사이의 사람들만 축하해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현실은 그들조차 대부분 기억을 못 하고 넘어간다.
그래도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할 때는 생일에 외롭게 보낸 적은 없었다. 가까운 사람들이 잊어버렸을지라도 그때는 남자 친구가 있거나 아니면 함께 살았던 언니들이 꼭 미역국에 케이크는 챙겨줬으니까. 내게 정말 서러웠던 생일은 2년 전 호주에서였다. 그때 나는 시골의 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매일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집에 오후 7~8시에 퇴근을 하는 '집-공장'의 생활이었다. 그래서 오늘이 며칠인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일요일'만 애타게 기다릴 뿐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냉장창고에서 새벽부터 야채를 씻고 포장하는 일을 했고, 잠시 쉬는 시간이었다. 중간 쉬는 시간은 무척 짧기 때문에 화장실에서 볼일과 동시에 잠시 휴대폰을 확인하곤 했다. 늘 고요한 내 휴대폰이었지만 그날은 카카오톡 메시지 한 통이 와있었다. 보낸 사람은 아빠였는데 메시지 내용이 온통 영어로 되어있었다. 나는 메시지를 집중해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메시지의 첫 줄은 'Happy birthday, daughter.'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오늘 미역국을 못 먹었겠구나.. 항상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 왜냐하면 우리 딸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우리 다음에 만나면 맛있는 거 많이 먹자.'
냉장창고에서 이미 차가워질 때로 차가워져 시뻘겋게 변한 내 피부 위에 따뜻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렇게 '생일'이라고 의미 두는 것도 싫고, 청승 떠는 건 더더욱 싫어하는 나이지만 그냥 그 순간 두꺼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메시지 상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아빠한테는 "이 영어는 누가 해준 거야?"라고 물어봤다. 내가 호주에 있다고 일부러 구글 번역기를 돌려서 영어로 메시지를 보내봤다고 한다. 당시 그 짧은 시간 동안 화장실 좁은 칸에 앉아 수많은 감정들과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에는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이었고 그다음은 너무도 조용한 내 메시지함에 대한 서러움이었다.
당시 호주에서 공장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물론 일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힘들었고, 무엇보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나를 지치게 했었다. 90%는 나보다 어린 동생들(한국인)이었지만 대부분 인간관계나 일을 대하는 자세가 나와는 많이 달랐다. 호주에서 만나면 어차피 헤어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몇몇 동생들은 정말 바로 연을 끊고 싶을 정도로 무례하고 무책임하게 행동하기도 했다. 물론 그중에도 좋은 사람은 만났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공장에 들어간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라 그런 분위기 자체가 너무 생소했고, 적응하기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유독 외롭다고 느끼던 찰나였다. 그런데 외국에 떠난 지 2년 차에 접어들자 나의 가까운 사람들마저 내 생일을 잊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그 사실 자체로 다가온 다기보다 의미가 부여되면서 스스로가 참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생일이 되면 일부러 더욱 기대를 하지 않게 되는 것, 여전히 가까운 사람들은 내 생일을 기억해주기를 바라지만 그들이 기억해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으려고 온갖 마음의 준비를 해오는 것.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란 사람은 겉으로는 괜찮은 척을 꽤 잘하지만 괜찮지 않은 순간이 참 많은 사람이란 걸. 가끔은 너무 솔직하지 않은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감정을 습관처럼 숨긴다는 것도. 솔직히 이번 생일도 축하받기를 기다렸던 몇몇 친구들에게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고, 나는 남몰래 서운했다. 그런데 그 순간 몇 년 전 호주 공장 화장실에서 쭈그려 앉아 아빠의 메시지를 보던 내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번 연도 생일을 돌아보니 그에 비해 나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았고, 게다가 생일 아침에는 엄마가 직접 차려준 푸짐하고 맛있는 생일상을 받지 않았던가. 그리고 나는 곧바로 다르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기다렸지만 결국 내게 오지 않는 어떤 것만 바라보며 슬퍼하기보다는 기다리지 않아도 이미 내 곁에 있어준 것들을 더 오랫동안 바라보며 고마워하기로.
생일은 1년에 딱 한번 있는 날일 뿐이지만, 내 곁에 오랫동안 머물러 준 사람들은 그보다 셀 수 없는 길고 많은 날 동안 나를 챙겨주고 또 잊지 않았다. 그러니 중요하지 않은 것에 중요함을 입혀 소중함을 잃는 실수를 하지 않기로, 그렇게 다짐했다.
매년 이맘때쯤 자꾸만 얄팍해지는 내 마음이 때로는 이해가 가기도, 또 밉기도 하지만 그래도 확실한 것은 이전보다는 많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아직은 생일마다 기다리지 않는다면서 관심과 축하를 바라는 한 사람이지만 이제는 관심과 축하보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만들어주고 또 내 옆을 지켜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더 자주, 깊게 느낄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내가 준 마음보다 받은 마음을 늘 먼저 떠올리고 또 오랫동안 그 마음을 음미하며 기억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로 했다.
지금까지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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