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바라보는 방법

마음속에 상처와 흉터가 가득한 나와 당신, 모두에게.

by 기록하는 슬기


2년 전 세계 여행 중 3개월 가까이 머물렀던 도시, 네팔 포카라를 떠나는 날이었다. 예정되어 있던 이별이었지만 내 예상보다는 더욱 아팠고 슬펐다. 그곳에서 함께하던 이들과 숙소 앞에서 한 번, 터미널에서 한 번. 두 번의 이별을 마치고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자리에 앉고 2분 정도 지났을까. 버스는 조금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시동을 걸더니 내 마음과는 정반대로 버스의 바퀴는 망설임 없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창문 밖에는 버스가 갈 때까지, 아니 내가 갈 때까지 인사를 하겠다며 기다리고 있는 S가 보였다. S는 애써 웃어 보이며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도 그런 S와 눈을 마주친 채로 창문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는 바쁘게 손을 흔들었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 인사였다. S는 버스가 출발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매일을 보던 익숙한 거리 또한 10분도 지나지 않아 모두 생경한 거리들로 그 풍경은 바뀌었다.




몇백 번의 준비를 하더라도 눈 앞에 찾아온 이별은 할 때마다 새롭고, 아프다. 사진은 2018. 01 포카라 떠나던 날.




익숙했던 모든 존재들이 내 눈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S가 헤어지기 직전 "버스에서 읽어!"라고 말하며 손에 꼭 쥐어주던 편지가 생각났다. S가 준 빳빳하면서도 두툼한 편지봉투를 열어봤다. 그 안에는 S가 세계 여행을 하며 직접 찍은 사진을 인화해 만든 엽서가 4장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장의 사진 속 주인공은 아주 낯익은 여자였다. 언제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함께 가던 카페에서 S가 몰래 찍은 내 옆모습이었다.


작고 반듯한 S의 글씨가 촘촘하게 적힌 편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편지를 읽으며 슬펐다가 또 어느 한 문장을 읽고는 킥킥대며 웃었다. 그리고 편지를 다 읽고 나서는 아련한 마음뿐이 없었다. 편지 속에는 S와 내가 포카라에서 우연히 만났던 날을 포함해서 함께 여행하는 동안의 여러 에피소드가 적혀있었다.


S의 편지 속에서 비치는 내 모습은 꽤 괜찮은 사람 같았다. S는 나를 그렇게 보았고, 또 기억해줬던 것 같다. 그래서 그 편지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은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편지를 읽고, 다시 읽어봐도 내 두 눈과 내 가슴에 내리 꽂히는 문장은 따로 있었다.


"너를 처음 봤을 때, 그때 나는 너한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상처가 있는 것 같았어. 왠지 모르겠지만 그런 상처가 느껴졌어. 웃기지만 그때부터 난 너의 그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었던 것 같아."


S와 나의 첫 만남은 위에 적힌 문장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심하게 유쾌했다. 우연히 같은 숙소에서 만나게 된 S와 나, 그리고 동생들. 그날 우리는 맥주 한 잔씩을 가볍게 하자고 했고, 결국에는 새벽 늦은 시간까지 결코 가볍지 않은 맥주를 나눠마셨다. 더불어 우리는 많은 이야기와 웃음을 나눴었다.


S와 나는 그 동생들이 먼저 네팔을 떠난 후에도 그날을 기억했고 추억했었다. 정말 그날 재밌지 않았었냐면서. 그런데 그날 S는 내게 '상처'를 느꼈었다니.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내 기분은 묘하게 싫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고마웠다.




나의 아픔과 상처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을 가진 타인들이 있던 곳. 사진은 2018. 01. 네팔 포카라.



객관적으로 보기에 지금까지 내 인생 속에서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어떠한 큰 사건을 겪은 적은 없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어디 상처 없는 사람이 있을까. 상처가 생긴 사연과 이유는 제각기 다를지라도 누구나 마음속에 크고 작은 상처는 있기 마련이다. 단지 과거에 생긴 상처에 대해 본인이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타인은 그 상처에 관심이 없다. 만약 자신의 상처를 누군가에게 먼저 보여줬을 때 상대방의 반응은 둘 중 하나다. 그 상처를 외면하던가 혹은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어 하던가.


나는 S와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했지만 나의 상처에 대해 보여준 적도 들려준 적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누군가의 상처에 대해 큰 관심이 없을 거라고,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S와 처음 만났던 날부터 함께 보냈던 날들을 차례차례 떠올려봤다. 내가 그랬듯 S도 내게 '상처'라고 불릴 만한 이야기들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나 또한 언제부터인가 S의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S의 상처가 무엇 때문인지,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S는 나와는 달리 마음속 어딘가에 깊고 큰 상처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보지도, 듣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상처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후에 함께 아파해 주는 게 아니었다. 상처란 느끼는 것이었다. 일부러 그 상처를 꺼내서 얼마나 그 상처가 깊고 큰지를 확인하지 않아도 그저 그 사람이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가슴이 먼저 느끼는 것이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가만히 두 눈을 감아보았다. S가 느꼈다던 내 마음의 상처를 떠올려봤다. 내 마음에는 깊고 큰 상처는 찾을 수 없었지만 유난히도 잔 상처들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이미 나는 잔 상처가 많이 나있는 나의 마음을 알고는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이런 작은 상처쯤은 큰 상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마음에게 미안해졌다. 정작 나의 마음에게는 항상 ‘이 정도 아픈 거는 괜찮은 거라고,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러니 참아야 한다고’만 말했던 내가 떠올랐다.


이렇게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느끼지도, 돌보지도 못하는 나에게 S가 해준 "왠지 모르겠지만 너한테 그런 상처가 느껴졌어."라는 이 한 마디는 내게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S가 바라던 대로 나의 상처를 아주 따뜻하게 보듬어주었다.


결국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하며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그 상처를 함께 느끼는 것이다. 당사자와 똑같은 아픔을 느낄 수는 없지만 진심 어린 공감 후에 갖는 관심은 적어도 상처 입은 마음에 또다시 화상을 입힌다거나 얼음물을 붓는다거나 하는 실수는 하지 않게 될 테니.




자신의 상처 혹은 누군가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다면

그 상처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기 이전에, 그 상처에 대해 어떤 말을 하기 이전에,

그저 두 눈을 감고 그 상처를 먼저 느껴보는 건 어떨까.

S가 내게 그랬듯이, 내가 S에게 그랬듯이.

그리고 내가 나에게 그랬듯이.







마지막 날 건네받은 사진 그리고 그의 눈에 비췄던 내 모습. 사진은 2018. 01. 네팔 포카라.












오늘도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공감과 댓글을 글 쓰는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