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과 외로움이 당연한 나의 마음을 바라보며.
2년 전 그리 춥지 않던 겨울의 어느 날, 나는 세계 여행 중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 '네팔 포카라'였다. 고개를 들면 하늘 아래 흰색 지붕으로 덮인 설산이 보였고, 고개를 살짝 내리면 광활하며 고요한 페와 호수가 보였다. 내 두 눈에 보이는 세상은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내 두 손은 갓 나온 따뜻한 라테가 담긴 머그잔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맞은편에는 내가 포카라 아버지라고 따르던, 당시 내가 오랫동안 머물던 숙소의 사장님이 앉아 계셨다.
어떤 사람과 함께하든지 어색한 걸 못 참는 나는 항상 먼저 대화를 이끌어간다. 그 숙소에서 지낸 지 2달이 넘었고, 또 이미 나보다 먼저 세계여행을 했던 친오빠가 이곳에서 6개월을 지내며 사장님 사모님을 네팔 부모님이라고 여길 정도로 특별한 인연을 지니고 있었기에 나는 두 분과 꽤 편해졌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장님과 단둘이 이렇게 고요한 곳에 덩그러니 앉아있으니 괜스레 낯설게 느껴졌다. 습관처럼 나는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알맞은 질문을 머릿속을 휘저으며 찾고 있었다.
"슬기야. 너는 무슨 고민은 없어?"
그때 사장님의 진중한, 그렇지만 다정한 목소리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나의 머릿속을 일시 정지시켰다. 당시 나의 '걱정'이라고 하면, 8개월 간 자유로운 여행자로 살다가 곧장 호주로 떠나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갈 날이 두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그건 이미 정해진 계획에 대한 '걱정'일 뿐 '고민'이 아니었다.
"음......" 소리를 내며 호수 표면 위로 끊임없이 일렁이고 있는 잔잔한 물결을 잠시 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는 대답했다.
"사장님, 사실 저는 자주 우울해져요."
내가 스스로 누군가에게 장난기를 쏙 뺀 채로 진심을 눌러 담아 "나 우울하다."는 말을 꺼내본 건 처음이었다. 나를 아주 오랫동안 보아온 친구가 아닌 이상, 혹은 나의 글을 오랫동안 읽었던 분들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 대해 그 반대로 알고 있다. '밝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그러다가 그들 중 나와 오랜 시간 함께 하거나 소주잔을 여러 병 비우다 보면 그제야 조금씩 나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 처음에는 몰랐는데 너 다크 한 면이 있더라..? 의외야."
지금까지 2개월 넘는 시간 동안 이곳 포카라에서 생활했던 내 모습을 떠올려봤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라서, 그리고 정말 가족처럼 챙겨주시는 사장님 사모님과 함께라서 나는 진심으로 즐거웠고, 많이 웃었다. 하지만 간간히 새로운 여행자 혹은 나이가 지긋하신 여행자 분들이 계실 때면 먼저 다가갔고 또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자처해왔다. 이런 나의 모습을 2개월 내내 보아 온 사장님은 우울하다는 나의 고백을 듣고 조금은 놀라실 줄 알았다. 그런데 사장님께서는 그저 덤덤하게 다른 질문을 건네셨다.
"음.. 그러면 그 우울은 언제부터 느꼈었어?"
"글쎄요. 이유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중학생 때부터 자주 이런 느낌을 받았었던 것 같아요. 그 후에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 빈도가 잦아졌어요. 그리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습관처럼 매일 우울했던 것 같아요. 어느 날은 우울감이 잔잔한 파도 같았다면 또 어느 날은 태풍급 파도가 몰아치는 날도 있고요.. 예전에는 심하게 밀려오는 우울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많이 힘들었는데.. 이제는 저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컨트롤이 가능해진 것 같아요."
사실 나는 이 말을 하는 내내 불편했다. 정확히는 낯설었다. 조금 더 깊게 나의 이야기를 하려다가 나는 금세 정신을 차렸고 '그래도 괜찮다고.' 그렇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마쳤다. 사장님께서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 그래? 네가 그 이유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지만, 그래도 네가 생각했을 때 너의 우울함이 어디에서 오는 것 같아?"
이 질문을 듣자마자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물음표들로 가득 찼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찾아 헤매었지만 아직까지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말하지 못했다. 대신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던 우울에 대한 경험들과 그 역사에 대해 두서없이 털어놓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근래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나는 습관처럼 맞은편에 앉아계신 사장님을 걱정했다.
'혹시 내 이야기가 너무 길고, 지루한 건 아닐까.'
'나를 너무 어둡고 우울한 사람으로만 보시지는 않을까.'
사장님께서는 뒤죽박죽 정리되지 않은 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집중해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내가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을 때, 그제야 사장님께서는 자신이 겪었던 경험담과 살아오며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들을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단호한 말투로 전해주셨다.
2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나는 그 날이 가끔씩 떠오른다. 그날 사장님과 나눴던 대화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구체적으로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두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어떤 장면과 그 속에서 사장님과 나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보이고, 들린다. 그렇게 나는 여러 번 그 장면을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다시 듣고서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왜 그날 사장님께서는 내게 그런 질문을 계속해서 하셨는지,
그리고 왜 나는 그날의 대화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건지.'
나는 스스로 지금까지 말을 조리 있게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대부분 나는 '내 이야기'가 아닌 다른 어떤 이야기에 대해 말을 잘 해왔었다. 내 속에 있는 내 이야기를 하기가 겁이 났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늘 '기억'에 집착을 했기 때문이다. '나의 기억'이 아닌 '상대방이 기억할 내 모습'을 항상 먼저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바라 왔다.
'나를 밝은 사람, 씩씩한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어.'
'나랑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재미있어서 또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물론 밝고, 씩씩하고, 편안하고, 재미있는 모습도 수많은 나의 다양한 모습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모습과는 대조적인 나의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슬프게도 그 모습은 늘 거울을 통해 내 두 눈에만 보였다. 그러면서 점점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고, 결국 나는 '외로운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패턴은 우울감이 찾아올 때마다 더욱 나를 바닥으로 가라앉혔다.
2년 전 들었던 "너의 우울함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 같아?"라는 질문에 여전히 답은 찾지 못했지만 지금 다시 대답한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것 같다.
"저의 우울함의 그 시작과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우울함의 끝은 알 것 같아요. 저의 우울함의 끝에는 늘 '외로움'이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어쩌면 우울의 시작 또한 '외로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까지 외로움이 어쩔 수 없는 사람, 외로움이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우울함이 어쩔 수 없다고, 우울함이 쉽게 찾아오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온 것 또한 말이다.
2년 전 그날, 짧은 시간이었지만 처음으로 나의 우울을 제삼자가 되어 바라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처음으로 내뱉었다. 동시에 나의 그 이야기를 누군가는 귀 기울여 들어줬었다. 그때 우울에 대한 해결책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왜 그렇게 나는 늘 '외롭고, 우울했는지'에 대해 작은 힌트는 얻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항상 스스로에게 '타인에게 좋은 사람, 밝은 사람으로 기억되자'라고 말해왔다면, 이제는 이렇게도 말하고 싶다.
"가끔은 약한 사람, 우울한 사람, 외로운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그렇게 기억되는 것도 괜찮아.
그리고 가끔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어차피 나는 나로 기억될 거니까."
오늘도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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