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에도 마음을 정착시키지 못한 마음 유목민의 고백.
몇 달 전, 친구 Y는 뜬금없이 내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야, 너 또 어디 멀리 여행 간 거야?"
그 메시지를 읽고 있던 나는 매일 같이 출근하는 경기도의 한 시립 도서관에, 그것도 매일 내가 앉는 온풍기 바람이 가장 약하게 부는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Y의 물음에 나는 바로 답장을 했다.
"응? 나 지금 도서관이야.. 갑자기 웬 여행이야??"
"아니, 너 sns 보니까 어디 여행 간 사진 올라왔길래.. 또 어디 갔나 해서 바로 연락 한 거지!"
Y는 며칠 전 내가 sns에 올린 '예전' 여행 사진을 보고 다시 여행을 갔다고 착각했던 것이었다. (Y는 사진을 보자마자 글을 제대로 안 읽어보고 바로 내게 연락을 했다고 한다.) 나는 Y에게 당분간은 외국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여건이 되지 않는다며 나의 상황을 이야기해줬다.
사실 내게 이런 에피소드는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것도 570일간의 세계 여행과 워킹 홀리데이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1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말이다. 내가 가끔 지난 여행 사진을 sns에 업로드하면 "나 너 또 떠났는 줄 알았어.."와 같은 댓글이 달리고 실제로도 만나는 친구들이 내게 자주 하는 질문 중 하나는 "너 이제 또 언제 나가?"라는 질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17년에 시작했던 세계여행 이전으로도 나는 또래에 비해 일찌감치 배낭여행을 시작했었다. 그 후로도 내 여행의 빈도수와 기간은 (친구들과 비교해) 평균 이상이었다. 그리고 세계 여행을 준비하면서 내내 "나 꼭 세계 여행할 거야!", "외국에 오래 살아보고 싶어!"라고 자주 말하고 다녔기에 그들의 머릿속에 나의 이미지는 '곧 떠날 사람' 혹은 '떠나 있는 사람'이라고 각인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떠날 사람'이라는 타이틀은 조금 슬프지만 내 주변 사람들의 눈은 정확했다. 20대 중반 이후로 한국에서 나의 삶은 낯선 곳으로 떠날 준비를 위한 과정이었고, 그 시간을 제외하면 정말 나는 낯선 곳에 떠나 있었으니. 지금이야 어쩔 수 없이 한국에 있지만 아마도 작년에 건강상의 문제가 없었다면 지금 나는 호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거나, 아니면 모은 돈으로 또 어딘가를 방랑하고 있었을 것이다. 더욱 최근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2개월 전 (코로나 바이러스가 생기기 전) 나는 짧게라도 다시 배낭여행을 가려고 했었다.
그리고 나는 한 번 생각해봤다. '왜 나는 자꾸 어딘가로 떠나려고 하는 건지.'
굳이 말하자면 외국으로, 그것도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으로.
나는 지난날의 나의 여행과 해외 생활을 떠올려봤다. 그 삶 속 나는 매일같이 행복하지도 않았고, 상상처럼 핑크빛 낭만으로 가득하지도 않았다. 자유로운 해외에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이방인이 책임져야 할 것들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어두웠고, 가끔은 서글프기도 했다. 그런 경험을 생살로 부딪히며 제대로 겪었는데, 나는 왜 또 그 고된 길로 향하려고 했던 걸까?
왜 나는 또 멀고 먼 곳으로 떠나려고 하는 걸까?
그 질문을 내게 던지자마자 내 머릿속에는 몇 개의 단어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꿈', '자유', '글', '영감', '감정', '감성', '경험', '사람'...
그런데 이 모든 단어들은 하나같이 희미하게 보였다. 뭔가 내겐 더욱 명쾌한 답이 될만한 어떤 것이 필요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면 도대체 어떤 게 더 좋은 걸까? 혹은 나은 걸까?
물음표 가득한 질문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몇 분 지나고 나서 한 단어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바로 '외로움'이었다.
역설적이지만 나는 나라는 존재를 아무도 모르는 먼 곳에서 덜 외로웠다. 그곳에서의 외로움은 당연했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외로움에 어떠한 다른 이유도,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나는 누구에게도 기대지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차피 곧 헤어진 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딱히 서운할 일도, 실망할 일도, 그런 감정을 견뎌낼 일도 없었다. 내겐 아무도 없는 사막과 같은 곳에서의 외로움이 견디기 쉬웠다.
물론 한국에는 내가 좋아하고, 또 나를 좋아해 주는 따뜻한 사람들은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그 사람들을 기다렸고, 그들의 마음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때마다 내 곁에 있어주지도, 그들의 마음을 전해주지도 않았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기로 않기로 했던 것이다. 상대방은 모르겠지만 늘 나는 홀로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고, 절대로 그 선을 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럼에도 자꾸만 사람에게 기대하고 싶은 마음은 생겨났고, 그 마음은 나를 괴롭혔다. 남몰래 누군가에게 기대를 했다가 그 기대가 실망이라는 감정으로 바뀌어 내게 되돌아올 때면 한껏 부풀려진 크고 무거운 외로움이라는 녀석과 함께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런 외로움이 무서워 그 누구에게도 기대하고 기대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이렇듯 한국에서는 나의 외로움에 명확한 이유가 있었고, 설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와 설명들은 꼭 내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내 귓가에 대고 듣고 싶지 않던 무서운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너는 혼자야."라고.
다행히도 지난 수년간 사막 속의 외로움과 군중 속의 외로움을 번갈아 겪으며 나는 내가 참 어리석다는 것을 느꼈다. 외로움이란 두 발을 딛고 있는 이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외로움과 같은 내면의 감정은 결국 내 마음의 문제였다. 사실 어디를 가도 늘 내 마음은 외로웠다. 그 외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보살펴 주는 지의 차이였다. 결국 바꿔야 할 것은 장소가 아닌 나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말했듯이 나는 참 어리석다. 그 깨달음은 단지 머리로만 이해하고 느꼈을 뿐이다.
오늘처럼 온몸의 세포 하나, 하나가 외로움에 지배를 당해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날이면 나는 두 눈을 감고 상상을 한다. (해야 한다.)
그동안 찾지 못했던 그 무엇을 이번에는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다시 떠나는 날을, 떠나는 나를.
행복이나 낭만 따위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로움을 달래 줄 수 있는 어떠한 존재를, 외로움을 망각할 수 있는 어떠한 곳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어리석은 희망을 부퉁 켜 안고.
그렇게 나는 오늘도 이곳을 떠나는 어리석은 꿈을 꾼다.
외로움이 나를 삼켜버리기 전에
외로움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서.
살아 남기 위해서.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곳을 떠나는 꿈을 꾼다.
오늘도 끝까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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