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악의 순간, 우리가 해야 할 일

예고 없이 찾아오는 최악의 순간을 버텨내고 이 세상의 모든 마음들에게.

by 기록하는 슬기


내 최측근 중 한 명인 S는 몇 개월 전부터 회사 생활, 경제적인 문제, 가족과의 문제 등 감히 총체적 난국이라고 불릴만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배려심이 깊은 S는 혹여나 자신의 이야기가 듣는 사람에게 부담이 될까 봐 내게도 자주 연락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문제가 생겼을 때나, 감정적으로 너무 지쳐있을 때면 가끔 내게 전화를 걸어와 하소연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달만에 S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혹시나 S에게 더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S의 전화를 받았다. S는 비교적 차분히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내게 이야기해줬다. 하지만 슬프게도 S의 이야기 속 사건들은 '발단' - '전개'의 과정을 거쳐 몇 개월 째 '절정'에 머물러 있을 뿐 '결말'이 난 것들은 없었다.


이제는 화낼 힘도, 그럴 이유도 없다는 듯 S는 덤덤하고 낮은 목소리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 정말 너무 힘들다. 다 포기하고 싶어."


그런 S에게 나는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최근에 들은 S의 목소리 중 정말 의욕이 없어 보였다. 혹여 내가 하는 말 한마디가 S에게 상처가 될까 걱정되는 마음에 머릿속으로 수많은 문장들을 떠올리고, 고치고 있는 도중 S는 이어서 말했다.

"지금 내 상황.. 정말 최악이다. 그렇지?"



P20170928_211440828_526B85FC-E795-450F-B181-4D6369A70AF7.JPG 최악이라고 느끼는 이 순간에도 해는 뜨고, 다시 진다. <사진 2017. 09. 인도 우다이푸르>



최근 몇 개월 동안 전화기 너머로 들은 S의 이야기는 해결되는 방향보다 점점 S를 힘들게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S에게 "맞아. 정말 너의 상황은 최악이야."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나는 현재 S의 상황이 감히 '최악'이라고 불리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짧은 침묵을 지키다가 나는 S에게 대답했다.


"음. 근데 넌 진짜 대단한 거야. 내가 네 상황이었다면 너처럼 못 했을걸. 네가 이렇게까지 버텨왔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지금까지 노력했기 때문에 더 안 좋은 상황을 막은 거 아닐까..?"

내 물음에 S는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네 말은 지금 이 상황이 최악은 아니라는 거네..? 이것보다 더 최악이 있을까?"

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글쎄.. 내가 네가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맞다, 아니다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네가 지금 겪는 그 상황을 스스로 '최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힘든 일들을 마주하게 될 때면 일부러 더 최악을 생각해. 지금 이 상황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을 상상해보는 거야. 그러면 지금 내가 힘들다고 느껴졌던 이 상황 속에서 놓치고 있던 다행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

현재 우리가 처해진 상황만 보더라도 전 세계가 전염병으로 비상인 이 시국에 내가 건강하고, 버는 돈은 줄었지만 일을 할 수 있고, 가족들이랑 가까운 사람들 모두 무사하잖아. 만약에 지금 이중에 하나라도 반대였다고 생각해 보면 그게 지금보다는 더 최악이 아닐까..?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견뎌내는 것 같아."


내 이야기가 끝나자 S는 조금 전보다는 온기가 실린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맞아. 사실 이 상황에서 누구 하나라도 아프거나 내가 아프면.. 그게 더 최악이긴 하지. 듣고 보니까 지금보다 더 최악이 있긴 하구나.

휴.. 내 이야기 들어주느라 너도 힘들겠다. 얼른 문제들이 해결이 돼야 나도 너한테 기분 좋게 전화하는데. 고맙다. 나한테 이런 말 해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그 와중에도 S는 내 걱정을 하며 내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S에게 들어주는 것으로 밖에 도와주지 못해 안타깝다는 말과 함께 그녀에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힘들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여느 때와 같이 우리의 통화는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P20170601_131132221_A37CAA3E-4046-4792-8A78-2C4A9341C4DF.JPG 그때는 최악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까 최악은 아니었더라고. <사진 2017. 06. 태국 꼬창>



S와 전화 통화를 끊고 바로 책상 앞에 앉았다. 전화를 받기 직전까지 쓰던 글을 마저 쓰기 위해 키보드 위에 두 손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쉽사리 글쓰기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직전에 S와 나눴던 통화 내용의 잔상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내가 S에게 했던 이야기 중 한 문장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보다 더 최악을 생각해.'라는 문장 속에 과연 '최악'이란 무엇일까?

어떤 기준으로 그 최악은 결정되는 걸까?

만약 그 당시 내가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상황이나 사건도 나중에는 최악이 아니었다고 느끼게 경우도 있지 않나?

그건 결국 최악이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 속에서 애초에 최악이란 존재하는 걸까?



한번 시작된 이 물음표는 다른 물음표를 데려왔다. 여러 물음표들이 쌓이고 쌓였을 때쯤 그제야 그 많던 물음표들이 하나의 점으로 정리가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 속에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오는 '최악'의 순간은 그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에 의해 그 유무가 결정된다.'라는 한 문장에 마침표를 찍어보았다.




P20170927_160456054_AD7CB109-2C1C-46FD-A46E-D14D7941C0A7.JPG 그렇다면 나는 '없다.'라고 말하고 싶다. <사진 2017. 09. 인도 조드푸르>



이 세상에 태어나기를 원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눈 떠보니 우리의 삶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던 것이고 그렇게 우리는 10년, 20년, 30년, 40년 (...) 그저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내 뜻에 의해 시작하지 않은 인생은 야속하게도 그 삶을 유지할 때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투성이다.


그리고 때로는 '최악'이라는 두 글자를 붙일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우리를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힘든 상황에 '최악'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놓으면 이상하게도 내가 포기하고 도망가야 하는 그 이유들이 생긴 것 같다. 왜냐하면 '최악'이라는 말은 지금까지 내가 노력했던 과정과 그동안 나를 지켜주고 응원해주고 있는 마음들, 그리고 당연하다고 착각해왔던 고마운 것들을 눈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안다. S가 스스로 '최악의 상황'이라고 떠올릴 만큼 많이 힘들다는 것을. 그리고 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힘든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최악'이라는 두 글자를 두 눈에서 걷어내 버리고 그 상황을 다시 바라보자고 말하고 싶다. 최악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분명한 건 그 상황을 최악이라고 바라보지 않는 시각으로부터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힌트는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






똑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각자 다르게 받아들이고 기억한다. 내가 아닌 타인은 그게 어떤 관계일지라도 일단은 남이다. 그러기에 내가 겪지 않은 일에 대해, 내가 느끼지 않은 감정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힘들어하고 있는 S에게,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이것만큼은 말해주고 싶다.


"지금 당장은 많이 힘들지만 네가 생각한 것보다 너는 괜찮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네 생각보다 그 상황 속에 다행이며, 고마운 것들이 여기저기 작게 숨어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네가 보지는 못해도 이렇게 나처럼 멀리서 늘 진심으로 너를 응원하고 믿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분명한 건 지금 너의 힘든 상황은 너의 노력 덕분에 최악은 아니라고.

그리고 너의 삶 속에 앞으로도 최악은 없을 것이라고."









오늘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공감과 댓글은 글 쓰는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