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겸손함이 주는 부작용에 대하여.
오랜 방황 끝에 이제 정말 '글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고, 매일 '글'을 쓴 지 이제 딱 1년이 되었다. 1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만큼 이제는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내 주변 (온오프라인 포함)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기에 브런치 이외에 다른 sns상에서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는 분들, 글을 너무 잘 봤다며 글에 대해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 혹은 내게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이 멋지다면서 따로 메시지를 보내주시는 몇몇 분들이 계시다.
그때마다 내가 공통적으로 답글에 남기는 말이 있다. "어우. 아니에요~ 아직 작가는 아니지만.. 제 글을 좋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직 멋져지려면 멀었지만.. 이렇게 응원해주시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멘트다. 나는 나를 스스로 '작가는 아직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과 '아직은 멋지지 않다는 것'을 늘 말한다.
이런 멘트를 쓰는 이유 중 첫 번째로는 칭찬 가득한 말에는 일단 겸손하게 답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적어도 '작가'라고 스스로 말하고, 또 불릴 수 있으려면 공식적으로 등단을 하거나 글 쓰는 활동으로 최소한의 수입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멋지지 않다는 건 정말 스스로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더 내가 부지런하고, 조금 더 묵묵하게 이 길을 걸어가기를 바란다.)
그러던 중, 2개월 전 친한 친구 H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H는 지금까지 잘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와 내년 봄에 결혼식을 올릴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그 소식 자체가 놀랍지는 않았다. 그보다도 내 머릿속에 바로 든 생각은 '내년 봄이라.. 내가 그때쯤이면 글로 경제생활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H가 결혼할 때 좋은 선물이나 넉넉하게 축의금 주고 싶은데..'였다. 곧이어 나는 이런 내 마음을 에둘러서 H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 그때는 지금보다 내가 좀 더 잘 돼서 딱! 멋진 친구로 네 결혼식 가야 하는데!!! H야. 나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좀만 기다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도착한 H의 답장을 읽고 내 양 손의 엄지 손가락은 잠시 멈췄다.
"슬기야. 지금보다 더 잘 되든 안되든 넌 이미 충분히 멋져."
이런 표현이 아직도 낯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H에게 "뭐야~ 나 하나도 안 멋져.. 입에 무슨 달달한 사탕 물고 말하고 있는 거야? 왜 이렇게 멘트가 달달한 거야~"라며 장난스럽게 답했다. H는 장난도 아니고, 그냥 하는 말도 아니고 방금 전 자신의 말은 진심이라고 한번 더 강조했다. 사실 나도 알고 있다. H는 내게 늘 "역시, 멋진 슬기!", "항상 좋은 글 써주는 내 친구, 슬기 작가님"과 같은 표현을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아끼지 않고 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민망함에 조금 전처럼 H에게 겸손함과 적당한 농담을 섞어 대답을 하곤 했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꽤 객관적인 주변 사람들을 곁에서 자랐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 모두 많이 무뚝뚝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표현이 풍부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예전부터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을 때면 일단은 "아니에요~"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어렸을 때부터 겸손하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게 예의라고 배웠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렇지 않으면 '자기만 잘난 줄 아는 사람', '건방진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타성에 젖은 겸손함을 오랜 시간 실천해오면서 겸손함에 치명적인 부작용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학습한 '겸손'이라는 태도가 과해지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하나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나의 노력'으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거나, 혹은 그 과정에 있을 때 누군가 "대단해요! 멋져요!"라고 할 때 우리는 굳이 "아니에요~ 제가 한 게 뭐 있나요.."라고 말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실제로 그 어려운 시간들을 견뎌내고, 그러한 노력을 한 사람은 '나'다. 나의 노력과 그 시간에 대해 스스로 인정을 하려면 오히려 "맞아요. 힘들긴 했지만 여기까지 견뎌낸 제 자신이 때로는 기특해요."라는 말이야말로 그 시간을 살아낸 '내'가 들었을 때 더 기쁘지 않을까.
물론 우리의 삶 속에서 '겸손'은 때에 따라 반드시 필요하다. 옛날부터 겸손은 미덕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가르쳤던 이유는 '나만이 옳다고 내세우지 않고 남을 존중한다'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어렸을 때부터 사회 속에서 받고 느낀 교육과 분위기 때문에 생긴 '무분별한 스스로에 대한 겸손'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특히 나처럼 '자만', '자랑'보다는 '자책'이 더 쉬웠던 사람은 더욱더 고민해야 한다.
그동안의 겸손이 상대방을 존중하기 위한 '필요한 겸손함'이었는지,
아니면 자기 자신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불필요한 겸손함'이었는지 말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의식적으로 고치려고 노력 중인 것이 하나 있다. 누군가가 나의 노력, 그 노력으로 인한 과정과 결과에 대해 칭찬을 해줄 때 "아니에요~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아직은 하나도 안 멋져요."등과 같이 일부러 그동안의 나의 노력을 부정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 위에 내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기특하고 애틋하다.
어떠한 확실한 '명사적인 결과'는 아직 몇 개 만들지 못한 나의 삶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계속 움직여왔고, 지금도 움직이고 있는 '동사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온 마음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에게 불필요한 겸손을 버리고,
내가 지금까지 해 온 노력과 그 시간을 알아주고, 칭찬해주고, 그래서 스스로를 믿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H가 진심을 담아 내게 했던 말을 이제야 나도 스스로에게 따뜻함을 가득 담아 말해본다.
"지금보다 더 잘 되든 안되든 넌 이미 충분히 멋져."
+) 더불어 이런 나의 노력, 그리고 나란 사람을 알아주고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이 말을 전한다.
"맞아요. 저 많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노력했고, 하고 있어요.
근데 이렇게 버틸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당신'이에요.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응원해주세요. 그만큼 또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 )
그리고요, 이 말은 꼭 하고 싶었어요.
정말 정말 정말 진심을 다해 고맙습니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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