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내 마음은 심란해지는 걸까?
요 며칠 새에 부쩍 차가워진 가을바람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습관처럼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이제 곧 겨울이 오겠구나.. 2020년도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네...'
그리고는 깊고 긴 한숨이 이어진다.
"후........."
내가 한국의 사계절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 반대로 사계절 중 가장 좋아하지 않는 계절은 겨울이다. 몸에 열기가 없어서 유독 겨울을 힘들어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겨울바람이 가져다주는 묘한 감정이 그리 달갑지 않다. 피부에 닿는 모든 부분을 순식간에 시리게 만드는 겨울바람은 그 바람결 그대로 내 마음에도 차갑고 날카롭게 불어온다. 그 바람을 맞은 내 마음 안에는 한 해가 이렇게 끝나가고 있다는 생각에 아쉬움과 초조함 그리고 아련함만이 가득해진다.
그래서일까. 이제 곧 겨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10월 중순의 쌀쌀한 가을바람은 제 아무리 쨍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고 해도 봄에 부는 바람처럼 마냥 달달하지 만은 않다. 가을바람은 노오란 햇살과 함께 설렘을 잠시 데려왔다가 이내 곧 차가운 바람과 함께 외로움과 허무함으로 내 마음 한 구석을 아리게 만든다. 아마 그건 사람이 느끼는 온도의 차이도 있을 테지만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봄이라는 계절과 한 해가 이제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가을이라는 계절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2020년 10월 17일, '벌써' 10월의 반이 지났다. (이제 날짜를 말할 때 '벌써'라는 부사를 넣지 않으면 부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이제 2020년은 약 2개월 하고 15일 정도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2020년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한 요즘 부쩍 나는 초조함과 압박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어차피 연말이나 연초나 내 일상과 내 목표는 변함없지만 계속해서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내년이 되면 정말 적지 않은 나이가 되는데 이제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지 않을까.'
'언제 올지 안 올지도 모를 기회를 내가 과연 잡을 수 있을까. 그때가 너무 늦어버리면 어떡하지..'
'작년 이맘 때는 왠지 2020년 끝자락이면 뭐 하나라도 성과가 있을 줄 알았는데.. 만약에 내년도 지금이랑 똑같으면 어쩌지.'
이런 불안한 생각들은 책상에 앉아 글 쓰려는 나를 계속해서 방해했다. 자꾸만 엉덩이는 가벼워졌고 좁은 내 방을 빙빙 돌다가 창문을 열고는 지나가는 차, 걸어가는 사람들, 아파트에 가려져 반만 보이는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을 반복했다.
유독 마음이 싱숭생숭하던 며칠 전, 1년 전 이맘때 써놓은 브런치와 블로그의 내 글들을 다시 읽어봤다. 특히 11월을 지나 12월부터는 스스로에게 '연말병'이 걸린 것 같다며 마음이 잘 잡히지 않는다며 푸념을 하고는 글 마지막 즈음 '애초에 길게 보고 시작한 일'이라며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라고 쓴 문장을 발견했다. 그리고 문득 처음에 글을 쓰겠다고,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내 것'으로 살아보겠다고 결심할 때 내가 특정 시간을 정해놓고 '3년 해보고 안되면 포기하자!'라고 목표를 잡은 것도 아니었는데 왜 나는 시간에 집착을 했던 건지 의문이 들었다.
당연히 생명을 가진 인간은 육체적으로 쉼 없이 늙어가고 있고, 그 생명은 유한하다. 그러기에 끝없이 이 삶을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갈 수는 없다. 때론 어떤 시간에 촉박하게 뭔가를 하기도 해야 하고, 신체가 더욱 노쇠하기 전에 해야 할 일들 또한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 그대로, 어떤 무엇인가가 되지 않은 채로 2020년이 지나고 2021년이 지난다고 내 인생이 큰 일 난다거나 망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찬바람이 분다고, 겨울이 오고 있다고 해서 초조하고 불안해할 이유는 하나도 없던 것이다. 중요한 건 뭔가를 꾸준히 끊임없이 하고 있는 '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해가 뜨고 지고 하루가 지나는 자연현상 안에 인간이 만들어놓은 '초, 분, 시간, 일, 월, 년'에 내 인생 자체를 억지로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을 순간 깨달았다. 시간 단위는 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간 세계에서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일종의 '약속' 일 뿐 꼭 내 인생을 그 단위에 촘촘히 끼워 맞춰 살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던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닌 몇 개월, 몇 년, 몇 살과 같은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늘 뭔가에 쫓기는 듯 초조했고 불안했던 것이고, '내'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내' 삶은 점점 더 알 수 없었고 어려워지기만 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어딘가에게 귀속되거나 의존하며 살지 않겠다며 주체적으로 내 인생을 살 것이고, 충분히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결국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것. 우리가 말하는 '시간'이란 내 인생에서 내가 필요할 때 쓰는 일종의 도구 같은 것이다. 모두에게 똑같은 크기와 수치로 제공되는 시간이라는 도구에 나를 넣어 재고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그 도구를 써야 하는 것이었다.
멈추지 않고 흐르기만 하는 세월은 때론 무섭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세월처럼 정직한 것도 없다. 누군가는 뒤로 돌아가고 싶어 할지라도, 누군가는 더 빨리 앞으로 가고 싶어 할지라도, 누군가는 이 순간을 그대로 붙잡고 싶어 할지라도 그저 세월은 한결같이 묵묵히 앞으로 나가가기만 하니까.
이런 세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쉼 없이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리고 내 인생의 주도권을 '시간 단위'에게 넘겨주지 않는 것.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여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자분들의 공감은 글 쓰는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