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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을 알고 살면 더 행복해질 수 있어.

삶이라는 불편함, 불리함 투성이 속에서 '이면'을 바라보는 시선 갖기.

by 기록하는 슬기


평일 오후 5시, 딱히 볼 만한 채널은 없지만 멍하니 TV 리모컨을 손에 꼭 쥔 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을 때였다.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내 엄지손가락이 한 케이블 채널을 지나치던 도중 일시정지가 되어버렸다. 언뜻 보기에 그 프로그램은 대도시에서 평생을 살았던 사람들이 은퇴 후 인적이 드문 시골로 내려가 생활하는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같았다. 은퇴나 귀농이 내 관심사는 아니지만 그 채널에 시선이 고정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채널을 스쳐 지나갈 때 PD와 출연자(귀농한 분)가 나눈 짧은 대화 때문이다.


출연자는 서울에서 살다가 은퇴 후 부인과 아이들과 함께 강원도 태백산맥 근처 산기슭 작은 마을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촬영 당시 계절은 봄이었지만 그 출연자가 살고 있는 곳에는 무릎까지 차오르는 폭설이 온 상태였다. 출연자분은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자연스레 장화를 신고 큰 삽을 가지고 나와 열심히 집 주변에 눈을 치우고 있었다. 그때 PD와 출연자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PD : 지금이 4월 초인데도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데.. 겨울에는 눈이 더 많이 오겠네요? 눈 오는 날마다 이렇게 매번 눈 치우셔야 하는 거예요..? 엄청 힘드시겠어요.

출연자 : (계속 삽으로 눈을 치우시면서) 뭐, 그렇죠. 뭐. 허허.

PD : 도시 살 때는 이렇게 힘들게 눈 안 치우셔도 됐었잖아요. 도시에 비해 불편한 게 너무 많은데 산으로 오신 거 후회하지는 않으세요?

출연자 : (잠시 멈춰 서서 PD를 바라보며) 아니요. 저는 불편할 것을 알고 사는 곳에서 오히려 '이면'을 만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출연자 분은 아무렇지 않게 집 앞에 쌓인 눈을 다시 치우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출연자분이 말씀하신 한 마디, "불편할 것을 알고 사는 곳에서 오히려 이면을 만날 수 있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자연스레 인도 여행을 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인도를 가기 전 여러 매체와 먼저 다녀온 사람들에게 무시무시한 소문과 실제 경험담들을 들었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출발했었다. 인도에 도착하고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나는 왜 그렇게 인도라는 나라를 "어메이징 인디아", "크레이지 인디아"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정신없이 "헬로 마이 뿌렌드~"라며 다가오는 호객꾼들 (사기꾼들), 그리고 조금만 한 눈을 팔면 소똥과 개똥 둘 중 하나는 밟을 수밖에 없는 길거리가 나를 반겨줬기 때문이다. (물론 이외에도 불편한 것들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그런데 하루, 이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런 불편함은 인도를 여행하는데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나는 더 위험하고 더 불편할 거라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매일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여행자로서 억울하고 화나는 일은 수 없이 마주 했었다. 처음에는 그때마다 화도 내고, 안 하던 욕까지 내뱉었지만 결국 나는 "그래.. 이런 거 알고 내가 온 건데 뭐.. 여기 인도잖아."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불편함'을 먼저 인정하고, 시작했기 때문일까. 나는 시간이 갈수록 인도의 불편함보다는 인도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인도에서 단 일주일도 견디기 힘들어서 미리 예약한 항공권 스케줄을 바꾸거나 취소까지 해가면서 인도를 떠났지만 나는 '지겨운 인도, 짜증 나는 인도'라고 하면서 뒤돌아서는 '매력 있는 인도, 왠지 다시 오게 될 것 같은 인도'라고 말하며 3개월 넘도록 인도 여행을 즐겼다. (그 후 인도 여행을 포함한 1년 7개월의 장기 여행이 모두 끝난 뒤에도 가장 그리워하고 다시 가고 싶은 나라를 인도라고 말하는 인도 빠순이가 되어버렸다.)


만약 나에게 인도를 좋아하는 이유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여행을 하던 당시에도, 여행이 모두 끝난 지금도 명확한 이유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말할 수 있다. 인도에서 느꼈던 불편함과 위험함 속에서 느꼈던 '안락함'은 몇 배로 더 강렬했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누리던 모든 것들이 결코 당연했던 것이 아니라 '너무도 다행이고 소중했었다는 것'을 나는 '인도'에서 느꼈고 배웠다고. 그래서 나는 인도를 여행하며 그런 감정을 즐기던 '내'가 좋았기에 그곳이 다시 가고 싶은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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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귓가에 아른거린다. "헬로우 마이 뿌렌드~ 웰 아유 고잉?"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불편함마저 내가 좋아하는 인도의 매력 그 자체라는 것을. 그리고 내 인생 또한 그렇다는 것을. <사진 : 2017년 인도 여행 중>




그러고 보니 "불편할 것을 알고 사는 곳에서 오히려 이면을 만날 수 있는 것 같아요."라는 말은 비단 여행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삶 속에서 우리가 오랜 고민 후 내린 결정, 선택 그 후 자꾸만 '후회'하고 '의심'하는 것도 어쩌면 그 '이면'을 바라보려 하지 않고, 계속해서 '불편함'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만약에 귀농하신 출연자분이 4월까지도 내리는 폭설에 계속해서 불편함을 느끼고,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면서 얼굴에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눈을 치운다면 아마 그분은 매일 아침 '귀농한 자신의 선택'에 후회를 할 것이고 의심할 것이다. '내가 괜히 여기까지 내려왔나? 큰 맘먹고 내려온 건데, 다시 올라가야 하나?' 그러면서 그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을 느끼지도, 즐기지도 못 하고 계실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삶은 불편함, 불리함 투성이 이라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그 불편함과 불리함을 머릿속으로 인지를 하고 있음에도 막상 눈 앞에 나타난 그 불편함과 불리함에 모든 신경과 시선을 집중한 채로 그곳에 매몰됐기에 더욱 삶이 고단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뒤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머리로 수 백번을 상상하고 연습한다 해도 막상 눈 앞에 다가온 불편함을 쿨하게 단번에 인정하고 넘기기란 힘들다. 하지만 이미 몇십 년씩 살아낸 삶 속에서 우리는 슬프지만 그 불편함과 불리함을 끊임없이 학습해왔고, 해오고 있지 않나. 우리에게 어쩌면 그 이면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과 여유는 이미 갖추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런 삶을 조금은 덜 불편하게, 덜 힘들게, 덜 슬프게 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역설적이지만 먼저 삶의 불편함, 힘듦, 슬픔을 '당연'하게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후 고개를 반대로 돌려보고, 시선을 옆면 뒷면 윗면 여러 방면을 바라보며 내게 긍정적인 감정과 에너지를 일으키는 면에 시선을 오래 두는 일. 이것이 유독 불편하고, 힘들고, 지치기만 했던 우리 일상과 삶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는 중요한 키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변수가 생기고 있는 요즘 상황으로 인해 불편하고 불리한 삶의 '이면'이 잘 보이지 않는 당신과 나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인생이란 '절망'과 '희망'을 양 옆에 두고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개를 어디로 돌리고, 어느 곳을 오래 바라보느냐에 따라 내 삶이 '절망적이냐, 희망적이냐' 바뀌는 것 같아요.

요즘 들어 괜스레 마음도 몸도 더욱 지치고 힘들었다면, 자꾸 나의 선택에 의심이 갔다면,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 생각하고 바라보며 그쪽을 향해 스스로 걸어가고 있던 건 아녔는지 돌아보길 바라요.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당신의 그 시선과 걸음이 매번 흔들리지라도,

그럼에도 '희망'을 향하기를, 향할 것이라고 믿어요."










오늘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자분들의 공감과 응원은 글 쓰는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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