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사랑은 10대, 20대의 사랑보다 성숙할까?
어린 시절, 막연하게 바라본 30대의 사랑은 완성된 어른들의 사랑처럼 보였다. 왠지 모르게 그들의 사랑은 성숙해 보였다. 30대에는 사랑 때문에 흘리는 눈물도 콧물도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3n 년 차 인생을 살아가며 깨닫고 있다. 어떤 감정이든,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나이는 아무런 힘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어제 오전, 친한 동생은 내게 “언니 전화 가능해?”라는 카톡을 보내왔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이 동생은 최근 1~2개월 전부터 나와 부쩍 전화 통화를 하고 싶어 했었다. 단순히 안부 인사를 묻는 통화라기보다 진하고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려던 것 같았다. 이전에 동생은 내게 메시지로 귀띔을 해줬었다.
‘언니 나 요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라고.
그리고 어제 드디어 동생의 러브 스토리를 자세히 듣게 됐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30대인 동생은 지금 짝사랑 중이다.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생이 짝사랑하는 상대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현재 연애할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동생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했고, 그 상대방은 애매하게 선을 긋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듣기에도 그 상대방 또한 동생에게 마음은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그 상대방은 오래전 동생과 일 때문에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라서 이전부터 나도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 들었었다. 오히려 몇 년 전에는 그 상대방이 동생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때는 동생이 그 사람에게 마음이 없었고, 몇 년이 흐른 지금은 동생이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열렬히 짝사랑 중인 동생은 오랜만에 이런 감정을 느껴본다면서 자신이 그 사람에게 했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손편지를 써서 그 사람의 책상 위에 몰래 올려놓고 오기도 하고, 행여나 그 사람에게 부담이 갈까 봐 연락도 참고 참고 또 참다가 일주일에 한 번 눈을 질끈 감고 문자를 한다고 했다. 그 사람에게 답장이 올 때면 꼭 10대 때 짝사랑하던 남자아이에게 문자로 답장을 받은 것처럼 마냥 하루 온종일 설레고 마냥 들뜬다고 했다.
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있었던 에피소드를 말하는 내내 목소리가 한껏 격양되어 있었다. 그리고 속상했던 기억을 말할 때는 그 마음이 내게 느껴질 정도로 그 슬픈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한 시간 남짓한 동생의 짝사랑 스토리를 들으며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과 어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아예 별개구나’라는 것을. 특히 감정계의 최고봉이라고 불리는 ‘사랑’에 있어서는 더욱.
전화 통화가 끝날 무렵 나는 동생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항상 우리가 연애 상담을 할 때 보면, 상대방의 행동이나 말을 우리 기준으로 해석하잖아. 결국 우리는 그 사람이 아니니까 열심히 추측할 뿐이고 정답이 될 수는 없어. 그런데 내가 네 얘기 쭉 들어보니까 그 사람도 너한테 마음은 있는 것 같아 보여. 지금 어떤 이유와 어떤 생각으로 너한테 그렇게 행동하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너한테 좋은 감정은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일단은 이렇게 관계를 잘 유지하다 보면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 일단 너무 전전긍긍하지 마..!”
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동생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사실 언니.. 나는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것 같아. 그 사람도 나한테 마음이 있다는 그 말. 그 사람한테 당장은 못 들으니까.... 언니한테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아..
그래도 언니한테 이렇게 이야기하고, 또 듣고 나니까 속이 다 후련하다!”
그때 나는 또 느꼈다. 우리는 항상 내가 받고 있는 감정에 대해 확인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중에 ‘사랑’이라는 감정에 있어서는 몇 배로. 보통 연인 관계에서도 표현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또한 이런 심리에서 말하곤 한다. 도저히 숨길 수 없는 눈빛과 행동, 말투를 통해 ‘내가 너를 좋아해’라는 마음이 다 느껴질지라도 우리는 늘 확인받고 싶어 한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귀에 들리고, 손으로 쓸 수 있는 짧은 단어로나마 확신받고 싶어 한다.
서른이 훌쩍 넘어서도 여전히 서툴고, 그렇기에 순수하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동생을 바라보며 나 스스로를 돌아봤다. 맞다. 최근 3~4년간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이겨내면서 나름대로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있는 성숙한 마음을 가지게 되지 않았나 싶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내 마음을 흔들어놓는 누군가를 만나거나 그런 사건을 겪을 때 내 모습은 사랑도, 연애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신인 아마추어 같았다. (지금도 변함없이 그러하다.)
그렇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셀 수 없는 사람, 사건, 경험을 겪는다.
그러면서 우리의 신체 곳곳 피부 위에는 굵고 얇은 주름들이 늘어만 간다.
하지만 이때마다 우리의 마음속 구석구석에는 새롭고, 익숙한 감정의 씨앗들이 뿌려진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다시 새싹이 트기 시작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가 살아온 삶을 나타내는 숫자가 커지고, 몸은 점점 늙어갈지라도,
우리의 감정만큼은 늙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30대에도 40대에도, 앞으로도 쭉,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불완전하지 않을까.
그래서 사랑 앞에서는 아픔과 행복을 숨기지 못한 채로, 그렇게 영원한 아마추어로 살아가지 않을까.
오늘도 제 이야기를 찾아주시고, 끝까지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쉽사리 무뎌지지 않는, 늙지 않는 우리의 감정을 안아주는 글을 앞으로도 쭉 오랫동안 나누겠습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