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없는 사랑도, 꿈도 괜찮아.
2년 전 제주살이를 하던 때, 어느 봄날이었다. 친한 친구 L은 나를 만나기 위해 제주도에 왔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녀는 빳빳한 분홍색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사실 나는 이미 그 편지 봉투 안에 내용물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청첩장이었다.
아직 현재 진행형인 우리 인생에서 섣불리 해피 엔딩, 새드 엔딩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어렵지만 내 친구 L은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해피 엔딩인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도 그녀와 그녀의 예비 남편분은 각자의 인생과 '꿈'을 지켜주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딱 내가 바라는 사랑을 하고 있는 듯한 두 사람이었다. 이내 나는 부러웠고, 조금 (많이) 외로워졌다.
30대가 된 후 진득한 연애를 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직 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꿈을 향해 달려가기에도 모자란 이 시기에 사랑을 하게 되면 왠지 나는 '꿈'도 '사랑'도 둘 다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꿈'과 '사랑', 이 두 가지에 대해 고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영화 ‘라라 랜드’가 떠오른다. '꿈'이 있는 청춘 남녀가 나눴던 '사랑'이야기라서 그런 걸까. 처음 영화관에서 볼 때도 무척 공감하면서 봤고 그 이후로도 꿈이든 사랑이든 그 어떤 것이 고파질 때마다 꺼내서 봤던 영화다. (지금까지 본 횟수는 10번도 족히 넘는다.)
미아 (엠마 스톤)의 꿈은 배우가 되는 것이었고,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 (라이언 고슬링)의 꿈은 재즈 클럽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둘은 우연히 만나게 되고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때 그들이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된 데에는 '꿈'이 한몫했을 것이라고 본다. 이 둘이 꾸는 꿈은 각자 달랐지만 가슴속에 뜨겁고 간절한 꿈이 있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자신을 아프게 하는 꿈이 있다는 것도 닮아있었기에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에게 빠르게 빠져들었던 것 아닐까.
하지만 반대로 이 둘이 헤어지게 된 이유에 가장 큰 것 또한 '꿈'이었을 것이다. 원래 인간관계에서 한 사람이 좋아지는 이유는 곧 그 사람과 멀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들이 각자 품고 있던 열정 가득한 꿈 때문에 뜨거운 사랑에 빠지게 됐지만 그들에게 있어 사랑만큼 중요했던 것은 꿈이었다. 결국 그들은 사계절 동안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고 이별을 결심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둘의 '꿈'은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5년 후'라고 나오는 이 영화의 엔딩 장면을 영화관에서 처음 봤을 때, 나는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었다. 나는 주인공들의 꿈과 사랑, 그 두 가지를 모두 응원했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서는 이런 마음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지나친 욕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서만이라도 그들은 해내길 바랐다.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그 주인공인 엠마와 세바스찬이 곧 나였기 때문에.
내가 라라 랜드를 처음 본 건 개봉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6년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때 내 옆 자리에는 당시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고, 그때 당시 나의 '꿈'은 세계 여행을 떠난 후 글을 쓰는 것이었다. 내 꿈은 그 사람을 떠나야 가능했었다. 그래서 그와 사귀기 전부터 나는 그 사람에게 내 꿈을 말했었고, 그 사람이 나와 만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거절했었다. 하지만 그때 그 사람은 내게 말했다.
"난 그런 꿈을 꾸고, 꿈을 향해 다가가는 네 모습이 멋있어. 난 너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할 거야. 내가 다 알고 시작하는 거니까 상관없어. 나는 자신 있어. 너의 꿈을 응원해 주고, 우리 관계를 지켜낼 자신 있어. 우리 만나자."
그렇게 그 사람과 만나게 됐고, 2년 넘는 시간 동안 연애를 했었다. 그 연애를 하던 내내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꿈'과 '사랑' 앞에서 수없이 흔들렸다. 무엇보다도 ‘내가 앞으로 이런 사랑을,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나를 '꿈' 앞에서 자꾸만 작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사랑이 아닌 꿈을 선택했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부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간직해 온 소중한 나의 꿈이기에 그 꿈을 저버릴 수 없었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꿈을 포기했을 때 나는 더 길고 깊은 후회를 할 것 같았다.
한국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는 나를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나는 '꿈'이 먼저였다. 나는 그때 알았다.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나란 사람에게 '꿈'과 '사랑'을 동시에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버거운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하나 더 깨달았다. 나에게 맞는 사람은 내 꿈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꿈을 '함께' 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기서의 '함께'의 의미는 무조건 같이 여행을 떠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자신만의 꿈이 있고, 그 꿈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 내 곁에 있어주길 바랐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후 라라 랜드의 결말을 보니, 꿈이 있는 사람이 그때 내 곁에 왔을지라도 내가 바라던 엔딩 장면을 쉽사리 맞이하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라라 랜드의 결말을 두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은 크게 둘로 나뉜다. 남녀 주인공의 '꿈'에 초점을 맞춰 본 사람들은 이 영화는 '해피 엔딩'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본 사람들은 '새드 엔딩'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많은 눈물을 흘렸던 나는 '새드 엔딩'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된 지 6년이 훌쩍 넘은 지금, 나의 선택을 돌아본다. 지난 시간 속에서 내가 놓았던 것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놓칠 듯 놓칠 듯하면서도 결코 놓지 않았던 것은 '꿈'이었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이 영화의 결말이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 그렇다고 두 주인공이 '꿈'을 이뤘기에 단순히 해피 엔딩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의 끝 무렵, 5년 만에 우연히 만난 남녀 주인공이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며 눈빛을 주고받는 장면이 있다. 그때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 후회와 미련으로 가득했다면 나는 아마도 이 영화의 감독과 작가를 더 원망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 서로를 아련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곧 다행스럽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그들의 눈빛과 표정을 이렇게 읽었다.
"다행이야. 네가 간절히 원했던 꿈을 이뤄서. 꿈을 이룬 너의 모습 정말 멋져. 진심으로 축하해."
어쩌면 이 영화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청춘 남녀의 '꿈'과 '사랑'의 관계를 그려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꿈이 고플 때, 사랑이 고플 때 나는 이 영화를 자주 찾았나 보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우리의 삶 속 '꿈'과 '사랑'이란 것이 꼭 엔딩이 지어야 하는 어떤 과제가 아니라 그저 한 시절 속에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 같아서.
그렇다. 30대가 된 이후로 나는 '이제는 더 이상 꿈도 사랑도 실패하고 싶지 않아.'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진짜 '실패'는 나처럼 미리 '새드 엔딩'을 정해놓고 '사랑'을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어떤 '꿈'일지라도, 어떤 '사랑'일지라도 그 앞에서 도망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사라지지 않을, 엔딩 없는 아름다운 순간을 기꺼이 만들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꿈도 사랑도 그 과정과 순간을 '해피'하게 잘 즐겨보려고 한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여러분들의 꿈과 사랑, 그리고 하루하루를 늘 응원하겠습니다.
따뜻한 공감과 댓글은 글 쓰는 사람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