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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하는 슬기 Aug 04. 2020

오랜 솔로 생활이 내게 알려준 것

'결혼해서 잘 살 팔자'라는 말이 믿고 싶어 진 어느 30대 솔로의 일기



"이봐! 손금에 나와있네!"


몇 개월 전 만났던 친구 L이 내 손금을 보고 한 말이다. 그녀는 나를 만나기 며칠 전 지인의 소개로 용하다고 소문난 일명 손금 도사를 만나고 왔다고 했다. L은 나를 만나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대뜸 하얗고 길게 뻗은 자신의 손을 쫙 펼치고는 도사가 말해준 자신의 손금에 대해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L은 그 도사가 손금만 보고도 자신의 과거 사건을 몇 개 맞췄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 말을 하고 있는 그녀의 말투와 눈빛은 이미 그 도사가 손금을 보며 말한 그녀의 미래에 대해 신봉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내 손금을 봐주겠다며 어느샌가 내 손을 잡고는 그 도사에 빙의한 듯 내 손바닥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워낙 손금, 관상, 사주팔자, 타로와 같이 미래에 대해 점치고 예언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기도 하고 잘 믿지 않는 나는 L이 하는 말을 그저 '재미'로 듣고 있었다. 그녀가 내 손바닥 위에 그어진 진한 금 몇 개를 검지 손가락으로 따라 그어가며 알려준 내 미래는 대략 이러했다.

"너 생명선이 길다. 음.. 잔병은 많은데 오래 살겠어."

"너는 공부를 했어도 잘 풀렸겠다. 그런데 부동산 쪽이나 뭔가 투자하는 일을 해도 괜찮겠네."

그리고 그녀는 내 결혼운과 관련된 손금을 보더니 한숨 놓았다는 듯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봐! 손금에 나와있네! 내가 예전부터 말했잖아. 넌 결혼 왠지 천천히 할 것 같은데 잘 살 것 같다고. (진한 손금 두 개를 차례대로 가리키며) 이 손금이랑 이 손금이 딱 붙어서 이어져야 하거든. 

넌 결혼해서 한 사람이랑 잘 살 팔자야."


L이 해주는 내 손금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 듣기 좋은 내용이어서 그랬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맞아.. 내가 잔병이 어렸을 때부터 많긴 했어. 근데 큰 병은 없었지..'

'맞아.. 학교 다닐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내가 공부 쪽에 아예 소질이 없는 건 아니었지..'

'응? 부동산? 투자? 음.. 지금부터라도 주식이라도 조금씩 배워둬야 하는 건가..'

'결혼.. 그래도 결혼을 내가 하긴 하는구나. 다행이야.'



언제부턴가 '혼자'가 편해져 버렸지만 그럼에도 왜 '함께'이고 싶은 건지. <사진 2019. 09. 여수 오동도>



이외에도 L은 내 손을 이리저리 펴고 접었다가를 반복하며 다른 설명을 이어갔지만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결혼'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 나이 30대 초반, 3년의 솔로 생활을 꽉 채우고 이제 곧 솔로 4년 차에, 가까운 친구들은 대부분 일찍 결혼을 한 상황에, 그마저도 솔로였던 몇 명의 친구들의 내년 결혼 소식을 미리 듣고 있는 이 와중에, 나라고 '결혼'에 대해 마냥 태평스러울 수는 없었나 보다. 그렇다고 당장 연애가 하고 싶고, 결혼을 꿈꾸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언젠가는 나도 결혼을 해야 한다는(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들킨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나이 앞자리 숫자가 2에서 3으로 바뀐 후 조금씩 '결혼'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불과 2~3년 전인 20대 후반 때만 해도 '나는 왠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괜히 피곤하게 타인이랑 함께 사느니 혼자 사는 게 낫지.', '아마 내가 늙었을 때는 결혼을 안 한 사람들도 많을 거야. 그럼 그때 그런 사람들이랑 친구 하면서 살면 그렇게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아.'라는 생각을 했었다. 


연애나 결혼에 관련해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아픔은 없었지만 20대 때 연애를 포함한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며 '모든 관계의 끝에서 마주해야 했던 허무함'에 질렸던 것 같다. 어차피 '만남'의 결론은 '이별'이라고 생각했기에 연애도, 결혼도, 그 외에 다른 인간관계도 새롭게 시작하려고 하지 않았고, 우연한 만남이 생겨난다 해도 예전처럼 온 마음을 다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었다. 결국 끝은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니까. 이렇게 나는 서서히 연포자(연애 포기자), 결포자(결혼 포기자)와 같이 인간관계 포기자가 되어가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선택한 외로움은 생각보다 견딜만했다. 특히 감정 중에 가장 강렬한 '사랑'을 하지 않으니 일상이 너무도 평화로웠다. 별 거 아닌 걸로 싸울 일도 없고, 휴대폰을 내내 붙잡고 있지 않아도 되고, 내가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으니까. 이와 같이 관계에 소비하는 시간과 감정이 없어지니 내 일상은 훨씬 수월한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난 이 생활에 만족한다. 카카오톡에 광고나 택배 알림 문자가 아닌 '사람'이 보내주는 메시지가 2~3일에 한 번 오는, 속상한 일이 있거나 마음 답답할 때 무조건 내 편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일기장을 꺼내 종이 위에 마음껏 하소연하는, sns에 들어가자마자 뜨는 친구들의 너무 귀여운 아기 사진을 보고 또 보고 조용히 미소를 짓고 하트를 누르는, 나를 걱정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걱정할 사람도 딱히 없는, 그래서 잦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조금은 건조하고도 밋밋한 이 일상 속 내 감정들이 아직까지는 마음에 든다.




아직은 내가 택한 외로움을 견딜 수 있지만 이 생활이 길어진다면.. 난 자신이 없다. <2020. 07. 홀로 산책 중>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러한 일상을 몇 년이고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걸 서서히 느껴간다. 이 세상 속 모든 인간의 삶이 애초에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만 살다가 갈 수는 없다. 아무리 혼자가 좋은 사람일지라도 평생을 혼자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혼자가 좋다는 건 둘이 있어봤기에, 다수와 함께 있어봤기에 혼자가 좋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가끔 말한다. '나는 혼자가 좋아.', '혼자가 편해.'라고. 하지만 여기서 '혼자가 좋다'는 말을 오해하지 말자.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혼자가 좋다는 게 아니라 단지 혼자 있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반대로 '혼자 있는 것 너무 싫어.'라고 하는 사람들은 함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사람마다 취향과 성향에 따라 조금씩 혼자, 함께 있는 시간의 비율이 다른 것일 뿐 결국 사람은 사람과 살아가야 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솔직히 난 아직도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와 다시 사랑을 하고, 결혼이란 것을 서스름 없이 말하며, 결혼을 준비하고, 결혼을 하고, 그 누군가와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여전히 내겐 어색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어떨까. 계속해서 혼자 살아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봤다. 어쩐지 상상하기는 더 쉬웠지만 고개는 절로 절레절레 흔들렸다. 막상 현실로 닥치면 모르겠지만 그때의 내 외로움은 지금의 '자발적인 외로움'과는 달리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이 되어버릴 것 같아 벌써부터 겁이 났다. 나도 모르게 갖고 있던 이런 생각과 감정들이 L이 해준 손금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줬던 것이다.






L이 해준 이야기를 천천히 상기시켜보던 도중 이 짧은 대화가 불쑥 떠올랐다.


"근데 너 결혼 좀 늦게 하나 봐. 위에 선이랑 아래 선이랑 꽤 끝에서 붙는데..?"

그리고 나는 L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

"헉! 얼마나 오래 걸리는 거야.. 설마 10년, 20년 후 이런 건 아니겠지!!?"


맞다. 관계의 끝에서 내가 느껴야 했던 '허무함'이 날 사랑과 연애, 사람들과 잠시 멀어지게 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늘 만남의 '설렘'과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속의 '기쁨과 행복'을 져버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와 비례하는 '슬픔과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결국 나는 '사랑'을, 그 사랑을 나와 함께 나눌 어떤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결포자도, 연포자도 아니었던 나를 솔로 생활 4년 차에 겨우 발견한 나는 L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 몰라 몰라. 그냥 나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을래.
앞으로 난 결혼해서 잘 산다는 거. 이것만 믿을래!"








오늘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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