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록하는 슬기 Jan 12. 2024

30대 중반, 불안정한 내 직업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

안정적인 직업과 불안한 직업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요즘 내 주변에는 퇴사 후 이직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여러 명 있다. 각각 이직의 이유는 다르지만 이들에게 공통된 고민이 하나 있다.

'이전에 해왔던 일의 경력을 살려서 같은 업계로 지원할까?' 아니면 '더 늦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볼까?'


아마 내가 친구들의 고민을 20대 중후반에만 들었더라도 내 성향상 "30대 되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레 말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도, 내 친구들도 모두 30대이다. 게다가 올해는 30대 초반이라고는 말하기에는 민망한 30대 중반이 됐다. 누군가는 30대 중반이면 아직은 어린 거라며 지금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회사'라는 집단에서 경력과 나이는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아무리 친구들의 고민을 귀 담아 듣는다 해도 내가 뾰족한 해결책을 만들어줄 수는 없는 일이다. 긴 대화 이후에도 답을 찾지 못한 친구들은 깊은 한숨을 쉬고는 내게 이렇게 말을 했다. "슬기야, 넌 좋겠다.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잖아."


이 말을 들었을 때 바로 맞다고 수긍하기도 어려웠고, 또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달까. 우선 지금 나는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로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 건 절대 아니다. 아니, '앞으로 또 어떤 일을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이 한다. 늘 달고 산다라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 같다.


이렇게 계속 새로운 일을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큰 ‘불안함’은 불규칙한 수입에서 온다. 그리고 그다음 불안함은 지금 하는 일을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온다. 내가 하는 일의 특성상 나는 나를 찾아주는 이들이 있어야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다. 이를테면, 내 글을 찾아주시는 구독자분들, 내 글쓰기 클래스를 찾아주시는 수강생분들, 내 글쓰기 능력을 필요로 하는 클라이언트분들 등등.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나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미래에 내가 이 일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특히 뭔가를 창작해야 하는 일은 진심 없이 기계적으로 할 수 없다.


글쓰는 직업은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글쓰는 이 순간, 이 삶이 지금은 가장 안정적이라고 느껴진다.


나의 대답을 듣고 나서 이런 의문이 떠오를 것이다. ‘그렇게 불안한 일을 왜 계속하는 걸까? 더 늦지 않게 비교적 안정적인 일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저는 불안함을 잊을 정도로 이 일이 너무 좋아요.”라고 예상하셨다면 그건 완벽한 오답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도 안정을 추구하고, 불안정을 회피하고 싶은 보편적인 한 사람이다. 불안을 즐긴다거나 불안을 쉽게 잊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내 주변 사람들은 되묻는다.

“네가???”

그도 그럴만한 것이 지난 20대부터 지금까지 굵직굵직한 내 선택들은 현재 사회가 말하는 안정보다는 불안정을 향하는 것들이었다. 대학교 졸업 후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세계일주를 떠나지 않나, 20대 후반에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지 않나,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는 한술 더 떠서 글을 업으로 삼겠다고 하지 않나, 그러다가 갑자기 제주도에서 한 달 동안 글만 쓰겠다고 떠나지 않나, 그러다가 제주도민으로 일 년 반을 기어코 글쓰기로 먹고살다가 오지 않나..


이전에 큰 선택들 앞에서 나도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다. 글에서 보이는 것보다 실제 나는 정말 생각도 많고 겁도 많다. 뭐 하나를 결정하려고 할 때 우주 끝까지 걱정하고 상상한 후에 결정을 내리는 편이다. 이런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안정으로 보이는 것들을 놓아버리고, 불안정이라고 보이는 것을 선택한 이유는 어찌 보면 간단하다. 내 눈에는 ‘안정’과 ‘불안정‘이 거꾸로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30년 넘게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온 한 사람이기에 사회가 말하는 ‘안정’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도 학교를 다닐 때는 내내 모범생으로 불렸고, 또 한때는 (당시 가장 안정적이라는 직업으로 꼽히던) 공무원 시험 준비를 짧게나마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때 ’안정‘을 택하고 나면 나는 항상 그 선택에 집중하지 못했다. ‘이거 네가 원하는 거 맞아? 이전에 네가 하고 싶다는 건 다른 거였잖아. 이건 부모님이 원하는 거 아니야? 넌 이거 하다가 왠지 그만둘 것 같아. 넌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 언제나 내 마음속은 시끄러웠다. 그리고 결국 이 소음은 날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렇다. 그때 내가 택한 안정은 나에게 안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직접 입어보고, 먹어보고, 해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내 마음이 언제 편안한지, 그래서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이전 경력을 살려서 같은 분야에 지원할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지 헷갈려하는 친구도, 용기를 내서 퇴사를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는데도 ‘이게 맞는 걸까‘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친구도, 오랫동안 꿈을 꾸고 있지만 꿈과는 다른 자신의 일을 하는 친구도. 사실 우리는 ‘20대, 30대’와 같은 나이, ‘4년 차, 신입’과 같은 경력을 떠나서 이미 마음속에는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놓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것을 선택했고, 행하고 있다면 일단 그것이 그 당시 내 49%의 불안정을 이긴 51%의 안정이었다는 뜻 아닐까. 물론 우리는 살아있는 생명이기에 계속해서 변한다. 우리가 지금 선택한 51%의 안정이 훗날에는 반대로 ’이건 내게 맞는 안정이 아니었구나‘하며 80%의 불안정이 될 수도 있고, ’역시 내 선택이 맞았어‘ 하며 98%의 안정으로 재확인될 수도 있다. (나는 인생에 있어서 100% 안정적인 삶도, 선택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의 성향에 맞는 55%, 60%의  안정을 선택하고 이를 책임지고 살아갈 뿐.)



그러니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안정’을 고민하고 선택하는 일.

그 후에는 일단 그 선택을 믿고 온 마음 다해 살아보는 일이지 않을까.

무엇이든 체감해야 알 수 있다.

그것이 나의 것인지, 남의 것인지를.

그리고 미래에 겪을 후회를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는 생각하고, 기억하는 사람이기에 후회를 할 수밖에 없다.

또한 후회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후회 속에는 당시 나의 목소리와 나의 진심이 들어있기 때문에.







당신의 고민, 선택, 후회를 모두 응원합니다.

그 안에서 당신의 진정한 안정과 진심을 찾고, 그 삶을 실현하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오늘도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2024년에는 다시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연재할 계획입니다.

좋은 이야기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