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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하는 슬기 Feb 05. 2024

30대 이후 인간관계가 점점 좁아지게 된 이유

도대체 몇 살이 되어야 인간관계가 쉬워질까요


주변사람들은 내게 '인싸'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인싸는 아니라고' 부정한다. 그리고 덧붙여 이렇게 말한다.

"10대~20대 때는 나름 인싸였던 것 같은데, 20대 후반부터는 인싸의 삶이 저랑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자세히 보면 제 인간관계는 좁고 깊어요."


사실 10대부터 20대 중반까지의 나를 돌아보면 인싸라는 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교적이고 적극적인 성격과 성향 탓에 늘 주변에는 친구들이 많았다. 정신 차리고 보면 어느새 '반장, 부반장, 과대표'와 같은 리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물론 나도 재미있고 좋았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것도 두렵지 않았고, 눈치가 빠른 덕분에 무리 내에서 사람들을 고루고루 챙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특히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내 인싸력은 절정이었다. 인문대였던 나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교양수업을 들으면서 예체대, 사회과학대, 공대 등을 넘나들며 마당발이 됐다. 1~2학년 때까지만 해도 캠퍼스 안이나 학교 주변 카페, 술집을 가면 아는 사람을 안 만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이렇게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던 나였는데 어쩌다가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지향하게 된 걸까.


지금 내 인간관계 호수는 조금 좁지만 그래도 깊다. 내 마음속 깊이 들어온 나의 사람들 덕분에.


첫 번째 계기는 20대 초반부터 중반 내내 긴 해외여행과 해외 살이를 하면서부터다. 그때 인간관계는 내 생각보다 휘발성이 더 강하다는 것을 배웠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와 비슷한 논리 일 수 있지만, 나는 하나를 더 깨달았다. 관계의 휘발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결’이라는 것. 여기서 말하는 사람의 결은 생각, 가치관, 마음, 표현의 결을 뜻한다. 서로 비슷한 회로로 생각하고, 비슷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내 예상보다도 끈덕졌고, 끈질겼다.


두 번째 계기는 20대 후반에 크게 몸이 아팠었을 때이다. 당시에 한쪽 팔에는 깁스를, 한쪽 다리에는 깁스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혼자 화장실 가는 것은 물론이고, 휴대폰으로 문자를 칠 수도 없었다. 1~2개월 후, 몸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내 상태를 전할 수 있었다. 그때 돌아오는 반응은 제각기 모두 달랐다. 무조건적인 걱정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상처되는 말도 종종 듣기도 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말 중 하나는 “암이었어? 암 아니면 됐어”와 같은 말이다.) 이 계기로 알게 된 것은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몇 없다는 것, 사람은 결국 ‘타인’이라는 것. 어쩌면 내가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이라는 존재에게 큰 기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나를 변화시켰을 거라고 본다. 아니, 정확히는 나 스스로를 알아가게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 나란 사람에 대해 쌓인 데이터도, 분석도 없던 20대에는 타고난 성향이 이끄는 대로 몸과 마음을 쓴다. 세월과 함께 나에 대한 데이터는 쌓이고 쌓여, 나름의 분석을 마친 30대가 된다. 쌓인 데이터 속에 기록된 ‘상처’들과 비슷한 모양이 보이면 어디에선가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라는 경보음이 울린다. 경보음에 한 번, 두 번 뒷걸음치다 보니 지금의 내가 되어있다. 이 모습이 아마도 30대의 인간관계를 대하는 우리들의 한 장면과 같지 않을까.


또 어느 때는 정답률 99.99%의 경보음이 울려도 멈추지 못하곤 한다.


언뜻 보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간관계에 있어서 큰 어려움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데이터와 분석이 알려주는 대로 조심해야 할 것들을 조심하고 피하면 상처받을 일이 없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낯선 사람을 만나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는 ‘삶’을 산다.


그리고 우리에게 쌓인 데이터와 그 분석이 늘 100% 맞을 거라는 보장은 더욱이나 없다. 경보음이 들리지 않아서 가까이 다가갔는데 알고 보니 처음 보는 상처일 수도 있고, 경보음이 들려서 도망갔는데 알고 보니 그전 상처와 같은 모양이라 착각하고 새로운 인연을 알아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를 탓할 수는 없다. 우린 로봇이 아니니까. 우린 생명이 있는, 늙어가고 있는 인간이기에 계속해서 변해간다. 서로 변하고 변하는 사람들끼리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에 이것은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면 늘어나는 나이의 숫자에 비례해서 더욱 자주 울리는 나의 인간관계 경보음은 그리 반갑지 않다.

시작부터 끝을 생각하고, 행복보다 아픔을 떠올리며 사람으로부터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30대 중반, 이제는 20대처럼 몸과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직진할 수는 없다는 것은 안다.

그럼에도 앞으로 늙어갈 내게 바라는 것이 있다.

사람을 생각하면 ‘끝, 이별, 상처’와 같은 것들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죽을 때까지 우리는 사람 때문에 아프고, 사람으로 인해 행복할 것이라는 것을 조금씩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배운 대로 사람은 결국 타인이기에 '나와 같을 것'이라는 기대는 줄이되, 나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아픔만을 줄 거라고 예단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내 인간관계의 호수가 그만 좁아지기를, 조금은 더 유연한 호수가 되기를 바라본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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