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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하는 슬기 Feb 12. 2024

30대 중반, 직업 때문에 성격이 변할 수 있을까요.

프리랜서 5년 차, 내 성격이 변하게 된 이유

올해, 프리랜서 작가로 살아온 지 어느덧 5년 차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몸 담았던 카페 사업분야 6년 경력을 바짝 쫓고 있다. 2019년, '글'을 업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오래 버틸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그저 글로 수익이라는 것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게 꿈이자 목표였다.


글, 사진, 영상 등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의 작품 활동만으로 생계가 해결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것은 극 소수의 예술인에게만 허용되는 이야기다. 물론 지금 나도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글쓰기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고, 온라인에 필요한 마케팅 글을 고객에게 의뢰받아 작업하고 있고, 상담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많은 프리랜서들이 그렇듯 나 또한 경력도, 인맥도, 아무것도 없는 '맨 땅'에서 시작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큰돈은 아니지만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수익을 만들고 있다. 그 비결은 단 하나다. '절실함이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 나는 글 이외에는 다른 일로는 절대 수익을 만들지 않겠다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때부터 나는 생존하기 위해 글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 방법을 실제로 시도해 보고, 실패하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맨 땅에 헤딩을 하면서 온몸에는 상처가 쌓여만 갔다. 사실 가장 힘든 건 몸보다도 마음이었다. 계속되는 실패는 자신감, 자존감을 모두 다 빼앗아 갔다.




제주살이 하던 시절, 맨 땅에 헤딩하고 또 하고, 할 수밖에 없던 때. 클래스 전단지를 직접 만들어서 들고 거리로 나섰다.



'맨 땅에 헤딩 - (대부분) 실패 - 상처 - 가까스로 자가치료 - 다시 헤딩'


이 힘든 과정은 프리랜서 5년 차인 지금도 여전히 겪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헤딩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몇 가지 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건 (가끔씩 맛볼 수 있는) 성취감라는 달콤함과 계좌에 미세하게 늘어나는 숫자들일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이 과정을 거치면서 변하는 내 성격이다.


얼마 전, 친구들과 갔던 카페에서 내가 프리랜서를 하면서 성격이 변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에피소드가 있다. 그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프랜차이즈 커피점에 갔다. 우리는 키오스크로 커피를 주문했고, 그중 한 친구가 커피를 쏘겠다며 결제를 했다. 긴 영수증이 키오스크에서 출력되자마자 친구는 살짝 당황한 듯 보였다. 왜 그런지 물어보니 친구는 해당 프랜차이즈 적립금이 꽤 많이 쌓여서 커피 1잔은 적립금으로 결제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키오스크에는 적립금으로 결제하는 페이지가 없었고, 3잔 모두 카드로 결제가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구는 "이 카페가 우리 동네에는 없어서 여기서 쓰려고 한 건데.. 근데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써야겠다..!"라고 아쉬운 듯 말했다.


나는 친구에게 바로 "직원분께 물어보자~"라고 말하며 직원분이 서 있는 카운터를 쳐다봤다. 그때 손글씨가 적힌 하얀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키오스크에서 결제한 주문 환불 불가'. 그러자 친구는 "아.. 환불 안되나 봐.. 에이.. 그냥 가자.."라고 말했다. 그래도 나는 친구에게 혹시 모르니 '물어나 보자고' 했다. 물어봐서 안 된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되면 좋은 거니까. 머뭇거리는 친구를 대신해 긴 영수증을 들고 나는 직원분께 친절한 말투로 이 상황을 설명해 드리고, 적립금으로 다시 결제가 가능한지 여쭤봤다. 그러자 직원분은 바로 "네~ 바로 해드릴게요~"하시면서 영수증을 달라고 하셨다. 그때 친구는 내 귓가에 "오~ 슬기! 역시! 적극적이야!"라고 말했다.


이 에피소드는 정말 별거 아닌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적지 않은 깨달음을 준 사건이다. 10대~20대까지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넘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정해진 룰이 있다면 항상 그 안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했다. 만약 조금 의문점이 생기는 결과가 나올지라도 내게 큰 피해가 오지 않는다면 받아들이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사실 이 성격으로 생계형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할 때 무척 힘들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거절'을 받더라도 '이유라도 물어볼까?'라는 생각이 아닌 '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혹독한 프리랜서 세계에서 지금은 입에 풀칠(만) 하고 살고 있습니다. <사진 : 개인 글쓰기 클래스 중>



홀로 맨 몸으로 맨 땅에 부딪혀서 일을 따내고, 돈을 벌어야 하는 프리랜서 생태계에서 생존하다 보니 나는 변해있었다. 이제는 사소한 일이든 큰 일이든 아쉬운 결과를 받는다면 '한 번 이유를 물어보자.',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얘기해 보자.'라는 생각부터 들고, 이를 바로 실천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이전보다 꽤 많이 적극적이어졌고, 없던 강단과 끈기가 생겼다. 나는 이러한 나의 변화가 마음에 든다. 사람 성격에 좋고 나쁨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극적이고 강단 있고, 끈기 있는 성격은 내가 10대 후반부터 20대 내내 늘 갈구하던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가만히 있는데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이전에는 없던 나의 적극성, 강단, 끈기는 어쩌면 그동안 받았던 상처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맞다. 지난 5년 동안 숱하게 맨 땅에 헤딩을 하며 받은 상처를 스스로 치료하고, 다시 일어나 헤딩하는 그 반복된 과정에서 내가 원하던 것들을 체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상처는 방치하거나 잘못 치료하면 더 큰 아픔이 몰려온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의 일이 좋다.

맨땅에 하는 헤딩이 언제 끝날지 모를지라도,

몸과 마음이 상처 투성이가 될지라도,

불안정한 수익과 환경에 밤잠을 설칠지라도,

현재 마음에 드는 나로 살 수 있기에,

그리고 미래에 나를 기대할 수 있게 해 주기에,

글 쓰는 프리랜서 작가라는 나의 직업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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