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과 정착 사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퍼스 바리스타 정착기
[방랑과 정착 사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퍼스 바리스타 도전기
퍼스에서의 워홀은 문자 그대로 '맨 땅에 헤딩'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시간이다. 일단 퍼스에서 가장 중요한 나의 목표는 바리스타로 일하는 것이었다. 당시 공장에서 벌어놓은 여유 자금이 있었기 때문에 한 달 정도는 바리스타로만 일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때는 6월. 퍼스를 포함하여 호주에 겨울이 오는 시기, 바로 비수기였다. 비수기 때는 시티 잡을 구하는 게 더욱 어렵다고 익히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섬나라의 겨울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가는 빗방울과 강한 바람이 콜라보를 이루어 얄궂게 내 피부를 때렸다. 우산을 써도 비를 다 맞을 수밖에 없는 날씨였다. 이런 날씨에도 하루에 몇만 보씩 걸으면서 이력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호주도 우리나라의 잡코리아, 알바몬과 같은 구직 사이트가 있긴 하지만 내가 워홀을 할 때 (2018년)는 실제 카페를 방문해서 레쥬메(이력서)를 남기고 올 때 취업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먼저 레쥬메를 한 30~40장 인쇄한 다음, 길거리에 보이는 카페마다 직접 들어가서 "안녕하세요~ 여기 사람 구하나요?"라고 말하고, 내 레쥬메를 남기고 오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었다. 아무리 E성향이 강한 나일지라도, 뜬금없이 카페에 들어가서 이력서를 남기고 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영어가 자신이 없으니 이미 카페에 들어가기 전부터 한껏 움츠려있었다. 초반에는 카페에 들어가서 쭈뼛쭈뼛거리다가 말도 못 하고, 커피만 사고 나온 고객이 된 적도 많았다.
그래도 이것도 여러 번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이제는 이력서 남기는 머신이 되어 카페에 들어가 스몰토크도 잘하고, 여유 있게 허허 호호 웃고 나오는 정도가 됐다. 문제는 한 달이 넘어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었다. 이제는 바리스타 말고, 다른 일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고민하고 있을 때 즈음, 문자 한 통이 왔다. 집에서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걸려서 가야 하는 대형 쇼핑몰 안에 있는 카페의 매니저였다. *트라이얼을 보러 올 수 있겠냐는 첫! 문자였다. 나는 바로 'sure!'이라고 답했다.
*트라이얼 (trial) : 호주에서는 직원을 뽑기 전에 먼저 1~2시간 정도 실제 현장에 투입해 본 후, 자신들과 일을 할 수 있는지 본다. 트라이얼을 거치고 나서 최종적으로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정해진다.
한국 카페에서는 눈 감고도 커피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손에 익어있었다. 하지만 호주 카페는 처음이었다. 커피 메뉴도 다르고, 카페 시스템 자체가 아예 다르다. 그리고 가장 큰 산은 모든 카페 직원, 손님들과 영어로만 소통해야 한다는 것. 손님들이 주문하는 말, 같은 직장 동료들이 내게 했던 말이 중간중간 잘 안 들렸었다. 그래도 눈치로 알아들으면서 커피도 만들고 서빙도 잘했다.
마지막으로 매니저님이 따로 내 커피맛을 보고 싶다고 하며 까다롭게 카푸치노를 커스터마이징 주문을 했다. 매니저님의 주문을 하나하나 속으로 읊조리면서 커피를 완성했다. 다행히도 매니저님은 내 커피를 먹자마자 "음~! 맛있다! 네 커피 좋다~! 마음에 들어!"라고 말하셨다. 곧이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인 "오늘 일도 잘하고, 커피도 맛있고. 좋다. 난 너랑 같이 일하고 싶어. 넌 괜찮니?"를 드디어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순조롭게 흘러가면 그건 워홀이 아니다. 다음 주에 정식으로 출근한 첫날, 나는 매니저가 아닌 처음 보는 사장님에게 1시간 만에 해고를 당한다. "네 커피 별로야. 난 너 필요 없어."라는 한 마디 말과 함께 한 시간 시급인 20불을 손에 쥐어주고는 내게 "잘 가"라고 했다.
딱히 큰 실수를 한 건 없었다. 나를 뽑은 매니저님은 그날 급한 일이 생겨서 출근하지 못했고, 나를 교육시켜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출근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손님이 갑자기 막 쏟아져 왔고, 그때 처음 보는 사장님이 출근하셨다. 이 카페의 레시피도, 컵 사이즈도, 아~무런 것도 모르는 내게 사장님은 "빨리 커피 만들어!"라고 다그치기만 했다. 그래서 그저 빨리 만들었다. 그게 다였다.
바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사장님은 자신이 따로 뽑은 바리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그 사람을 교육시키고 있었다. 카페 내부 사정은 모르지만, 확실한 사실은 나는 퍼스에서 처음 구한 첫 바리스타 잡을, 그것도 첫 출근날 한 시간 만에 잘렸다는 것.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다. 손에 20불 지폐를 쥐고 그 쇼핑몰을 나오는데, 이런 장면은 드라마에나 나오는 일 아닌가 싶었다. '너 필요 없어'는 말과 동시에 손에 쥐어진 '20불의 지폐'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워홀이라고 할지라도 그 당시에는 내 삶, 내 생계와 직결되는 '일'이기에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안 그래도 이방인으로서 한 나라에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적응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고단한 일이었는데, 이 사건은 그 고단함에 '서러움'까지 더해줬다.
나는 더 이상 여행자가 아니었다. '아 여기 생각보다 별로네?'하고 훌쩍 떠나 버릴 수는 없었다. 여행이 아닌 워홀로 호주에 온 나름의 목표도, 계획도 있다. 지금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은 결국 바리스타로 직업을 찾는 일이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한 시간 반 만에 해고당한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나는 다음 날부터 다시 이력서를 들고 카페를 찾아 나섰다. 더욱 간절해진 마음으로.
퍼스에서 새롭게 시작된 워킹홀리데이.
이전에 야채 공장에서 일했을 때와는 또 다른 힘듦과 서러움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주변 워홀 선배들은 퍼스는 다른 도시보다도 직업을 구하기 힘들 거라고 했었다.
서쪽에서 가장 큰 도시이긴 해도 동부 쪽의 대도시에 비해서는 도시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일도 그에 비해 없고, 한인을 포함한 동양인의 인구가 비교적 얼마 적기 때문에 차별도 많이 당할 거라고 했었다.
역시는 역시였다.
워홀 선배들이 해준 말은 하나 틀리지 않았다.
퍼스에서의 워홀은 쉽지 않았다.
특히 '바리스타를 꼭 할 거야!'와 같은 내 목표를 가지고 직업을 구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매일 비바람을 맞고, 몇 반보 넘는 거리를 걸으며 이력서를 돌리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주변에 워홀을 왔다가 몇 개월만 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갔다.
왜 떠나는 줄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이렇게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공장으로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타 지역에 있는 공장 친구들이 자신의 동네로 오라고 해도 가고 싶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마음먹고 퍼스까지 온 거, 뭐라도 하고 싶었다.
바리스타에 대한 원대한 꿈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마음먹은 것, 내가 스스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끝까지 해보고 싶었다.
워홀은 여행과 정착 그 어느 사이의 삶인 만큼 책임감 또한 여행보다는 무거워졌다.
책임을 지고 싶었다.
내가 하겠다고 말한 것. 그래서 선택한 것에 대해서.
여행 내내 마음대로 떠나고 마음대로 주저앉는 제 멋대로인 삶을 충분히 살았다.
이제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위해 싫어도, 힘들어도 해내고 싶었다.
남들에게는 기껏해야 커피 뽑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나에게는 당장의 삶, 생계와 직결되는 일이고 꼭 해보고 싶었던 꿈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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