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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하는 슬기 Oct 16. 2024

돈 때문에 온 호주 워홀, 살아보니 아니었다.

[방랑과 정착 사이]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잡고 싶었던 세 마리 토끼

[방랑과 정착 사이]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잡고 싶었던 세 마리 토끼




8개월 넘게 장기 여행을 하며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매일매일이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내일은 어느 도시로 갈까?, '버스, 기차 중에 뭘 타지?', '5,000원 더 비싼 게스트하우스에서 잘까? 아니면 최저가에서 잘까?' 등등.. 매 순간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이렇듯 여행 중 선택의 빈도수는 무척 잦았다. 그렇지만 선택 하나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은 그리 무겁지 않았다. 여행의 특성상 이전 선택이 별로면 바로 다른 선택을 해서 그곳을 떠날 수 있으니까.


워킹홀리데이에서의 선택은 여행 때와는 달랐다. 워킹홀리데이는 단어 그대로 'working' (일)과 'holiday' (휴가)라는 상반되는 두 의미의 단어가 합쳐진 애매모호한 말이다. 그래서일까. 워킹홀리데이의 실제 생활도 '정착'과 '여행' 그 사이 어디 즈음에 있다. 워홀은 여행처럼, 하루 이틀 지내다가 별로면 쉽게 떠날 없다. 짧으면 개월, 길면 1년을 생각하고 '선택'하기 때문에 그 무게감은 가볍지 않았다. 

 

부나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야채 공장에서 4개월 정도 근무를 했을 때였다. 세컨드 비자 신청을 하려면 호주 정부가 지정한 농공장에서의 근무일수가 총 3개월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넉넉하게 100일 근무일수를 채웠다. 그때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세컨드 비자 일수를 채웠으니 공장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갈까?'
vs
'이 공장에 남아서 돈을 더 벌까?'




이제는 '내 집, 내 방'이 되어버린 공간. '낯섦'이 '익숙함'이 된다는 것은 때로 무섭기도 하다.



한 여름에도 기모 레깅스 2~3개를 겹쳐 입고, 두꺼운 수면양말 2~3개를 신어야 하는 냉장창고에서의 일. 어느 순간 보니 이 또한 너무 익숙해졌더라.



고민하는 내게 공장 친구들은 여기에서 조금 더 돈을 모으는 게 어떻냐고 했다. 지금 지역 이동을 하게 되면 그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일을 잡을 때까지는 방값이며 생활비며 계속 지출 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당시 호주는 비수기 (겨울)였기 때문에 큰 도시에 가도 일자리를 잡기 힘들 거라고 말했다. 


나보다 워홀 선배인 친구들이 해주는 말은 정말 현실적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있자니 덜컥 겁이 났다. 하나같이 다 맞는 말이었다. 이제는 공장 일도, 사람도 익숙해져서 편했다. 무엇보다 돈도 적지 않게 잘 벌었다. 대기업 공장이라 임금 정산도 깔끔했다. 돈을 모으기에는 이만한 환경이 없었다. 고민이 됐다. 


하나를 선택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성향임에도 이 선택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고, 그다음 날 퇴근길에 인사팀 매니저님께 퇴사 노티스를 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있어 워홀은 단순히 '돈'만 벌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공장 생활도 돈이 전부는 아니었다. 동생들과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이 내겐 낙이었다. <주말 휴무 맞춰서 다함께 놀러간 골드 코스트>




주말마다 숙소 식구들 다같이 브리즈번 시티로 마실 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주중에 시골에서 꾹꾹 눌렀던 욕망을 시티에서 터트리고 오곤 했지.



워홀을 오기로 결심했을 때 '영어' 실력을 향상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세계 여행을 하면서 영어 때문에 아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지만 외국인 친구들과 조금 깊은 이야기를 하기 되거나, 사무적으로 영어를 길게 해야 할 때면 무척 불편했다. 앞으로 이어질 나의 여행을 위해서, 그리고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를 나의 삶을 위해서 영어 실력을 키우고 싶었다. 


또 호주로 올 때 꼭 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호주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해보고 싶었다. 내가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한국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했던 업계가 카페 업종이다. 실제 바리스타로 4년, 프랜차이즈 카페 본사에서 2년, 총 6년을 일했었다. 호주 커피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워홀을 가게 되면 '호주 카페에서 일해보고 싶다'라는 꿈이 있었다. 


맞다. 내가 호주 워홀을 온 목적은 크게 세 가지였다.

'돈', '영어', '경험'


아마 이 세 가지는 워홀러들의 공통된 목표이기도 할 것이다. 이 세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삶에는 1+2, 2+1 따위는 없다. '1' 그 하나라도 제대로 이룰까 말까 한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하나를 위해 끊임없이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선택의 순간이 올 때마다 자연스레 내 삶의 우선순위가 정리되기도 한다.


공장을 떠날 때 나의 우선순위는 '돈'이 아니라 '영어와 경험'이었다. 먼저 카페에서 영어를 쓰면서 커피를 만들고 싶은 나의 목표를 이루기 적합한 곳을 물색했다. 일단은 사람과 상점이 많은 도시로 나가야 했다. 영어를 많이 쓰기 위해서는 비교적 한인의 수가 적은 곳으로 가야 했다. 그렇게 내가 고른 곳은 호주 서쪽에서 가장 큰 도시 퍼스 (Perth)였다.  



그리고 퍼스에서 나의 진짜, 워킹홀리데이가 시작된다. 



공장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떠나는 날. 워홀 제1장을 마무리하던 날. 동시에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해 하늘을 날던 날.





워킹홀리데이를 하던 중에, 다녀온 후에 블로그를 통해 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중에 몇몇 분들은 꼭 서로 짜 맞춘 것처럼 비슷한 내용의 질문을 보내주셨다.


"이제 제 나이가 20대 후반이라서요.. 워홀을 가는 게 맞을까요? 이전부터 가보고 싶긴 했는데.. 너무 늦은 건 아닌지 고민이 되네요.. 선택을 빨리 해야 하는데 너무 어렵습니다..ㅠㅠ"


원래 선택이란 것은 무척 어렵고 피곤한 일이다.

한국에 남든 호주로 떠나든 둘 중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잃는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장기 여행과 워홀.

특히 워홀 중, 선택에 기로에 섰을 때는 꽤 무거운 피로감을 받았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 선택의 순간이 있었기에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자금 때문에 온 워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시작은 돈이 맞지만, 돈이 내 워홀의 전부는 아니었다.

여행만 했다면 지나쳤을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다는 나의 바람, 커피를 더 배우고 싶다는 나의 꿈을 워홀 속 '선택'에 의해 발견했다. 


선택은 나를 힘들게 하는 순간이 아니라, 나에게 기회를 주는 순간이다.

지금 나의 마음, 지금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확인할 기회.







※ 제가 워홀 다녀온 후, 워홀 고민하는 분들께 도움이 될까 싶어 티스토리 블로그에 직접 쓴 글입니다.

워홀 고민하시는 분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https://writer-gi.tistory.com/m/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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