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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하는 슬기 Oct 27. 2024

떠나서 정말 삶이 달라졌나요?

[에필로그] 이 말을 하기 위해 오랜 시간 방랑했나 보다.


[에필로그] 이 말을 하기 위해 오랜 시간 방랑했나 보다. 이 말을 하기 위해 오랜 시간 방랑했나 보다.


'세계여행, 배낭여행, 워킹홀리데이, 제주살이'

돌아보니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방랑자로 살아왔다. '이곳을 떠나 저곳으로 가면 내 삶이 달라지지 않을까'하는 꿈을 배낭 가장 깊숙한 곳에 넣고 길 위를 헤매었다. 어떤 길은 그저 스쳐 지나갔고, 어떤 길은 잠시 머물렀고, 또 다른 어떤 길 위에서는 '삶'이라는 한 글자를 붙여 살아보기도 했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분들이라면 궁금할 것이다.

'그래서 정말 떠나서 내 삶이 달라졌는지, 떠나서 내가 찾고 싶었던 그 무언가를 찾았는지'


48시간 만에 두 발을 딛고 있는 땅은 네팔에서 호주로 바꿀 수 있었지만, 내 삶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았다.

내가 떠나도 세상은 그대로였다. 내 인생도, 나도 똑같았다. 내가 그토록 찾고 싶었던 꿈, 일, 사랑, 중 하나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떠났기에 찾은 것은 있다.

'떠나는 것이 내 삶의 정답은 아니라는 것'

'삶은 여행처럼 스쳐 지나가는 장면과 장면의 이어짐이라는 것'

'삶에는 내가 찾고 싶고, 찾으려고 노력해도 결코 찾을 수 없다는 게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는 것. 내가 떠나지 못했기에 찾은 글이라는 나의 꿈처럼'

마지막으로, '나란 사람은 나를, 내 삶을 이미 아주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떠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꿈은 현실로 가져와 깨져야 본모습이 나온다.



세계 어디를 가도 내 삶은 내 삶이었다. 일상을 떠나 마음에 드는 장소에 간다고 사랑하지 않던 나 자신을 갑자기 사랑하게 되지는 않는다. 잠시 여행뽕에 취해 그렇게 느낄 수 있지만 여행뽕의 유효기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내 두 발이 딛는 곳이 어디든 내 삶을 지키고, 아끼고, 사랑해 줄 사람은 나뿐이었다. 아는 사람이 오직 하나뿐인 낯선 곳에 가서야 깨달았다. 타인의 사랑은 여행길 같은 것이었다.  어떤 길은 그저 스쳐 지나가고, 어떤 길은 잠시 머무르고, 또 다른 어떤 길 위에서는 '삶'이라는 한 글자를 붙여 살아보기도 한 것처럼.


오로지 내 삶을 향한 사랑은 타인에게는 없었다.

타인은 자신의 사랑을 나에게 나누어 줄 뿐이었다.

오로지 내 삶을 위한 사랑은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떠나고, 돌아오는 방랑을 여러 번 반복하고, 한동안 떠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뒤늦게 알게 됐다.

내가 떠난 방랑의 길은 이미 사랑하고 있는 내 삶을 더 사랑하고 싶어서 떠난 길이었다는 것을.

이곳이 아닌 저곳에 가면 삶의 정답 같은 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가지고 떠난 것은 결국 나는 내 삶을 사랑하기에 가능했다.


어쩌면 나에게 이 말을 하기 위해 긴 시간 동안 낯선 길 위를 그렇게나 헤매었는지 모르겠다.

"이미 너는 너를, 너의 삶을 사랑하고 있었어. 그것도 아주 많이."








정식적으로 나의 방랑은 일시정지 상태이다.

2022년 4월 제주살이를 마친 후 현재까지 경기도 본가에서 지내고 있다.


얼마 전 가장 친한 친구는 내게 이렇게 물어봤다.

"너 왜 안 나가?"


여기서 '나가'는 '여행, 떠남'을 뜻한다. 내가 이렇게 긴 기간 동안 한 곳에서만 있으니 이상하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는 덧붙여 말했다.

"슬기야. 너는 장기 여행을 하거나 새로운 곳에서 살 때 가장 너답게 사는 것 같아. 물론 당사자인 너는 힘든 순간도 많겠지만 내가 겉에서 보기엔 그렇게 느껴지더라. 그리고 그때 네가 참 멋져 보여."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장 친한 친구가 이렇게 말해주니 기분이 묘했다. 특히 "그때 네가 참 멋져 보여"라는 말이 내 귓가에 맴돌았다. 정제된 글이나 멋진 사진으로만 내 삶을 바라본 사람이 아닌 내 삶의, 내 방랑의 역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녀가 나를 멋지다고 말해주다니. 


솔직히 말해 낯선 곳을 방랑하는 나를 스스로 '멋지다'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나는 그저 방랑하는 나 자신을 좋아했다. 아주 많이. 그래서 이토록 나는 떠나고, 또 떠났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짜릿한 경험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그 짜릿함의 뾰족함은 둔탁해져 있다. 아무리 나를 찌르고 찔러도 예전과 같은 자극이 오지 않는다. 내게 여행이, 방랑이 그러하다. 이제는 예전 같이 마음에 쏙 드는 나를 만날 수 없다. 아무리 먼 곳으로 떠나도 그저 그런, 평소보다 조금 더 나은, 아니 평소보다 더욱 별로인 나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멋져 보이려고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떠나서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더 나아가 떠나면 내 삶이 달라질 거라는, 삶에 정답 같은 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따위는 가지지 않는다.


이제 내가 떠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냥 내가 좋아하니까. 

나는 여행을, 방랑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나는 이미 내 삶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이 두 발이 어디에 있든 내 삶을 내 삶으로 좋아하게 됐다. 







오늘로써 9월 2일부터 매주 월요일, 수요일마다 발행했던 '떠나면 달라질까' 브런치 북 연재를 마감합니다.

연재하는 동안 예상치 못했던 높은 조회수와 많은 분들의 뜨거운 응원을 받을 수 있어 힘이 펄펄 났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 방랑 이야기를 읽어주시고, 그 안에서 저의 희로애락을 함께 느껴주신 독자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저는 조금은 외롭고, 고단했던 저의 방랑을 따뜻하고 포근하게 안아주고,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될 제 방랑 이야기를 진솔하고 재미있게 전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기록하는 슬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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