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과 정착 사이]1년 5개월 동안 글 쓰는 제주도민으로 살아낸 생존기
[방랑과 정착 사이] 1년 5개월 동안 글 쓰는 제주도민으로 살아낸 생존기
제주에서 매일 글만 써보자는 나의 비장한 마음은 뜨거웠다. 제주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나는 문자 그대로 주 7일, '매일' 글을 썼다. (기억하시는 구독자 분도 계시겠지만 브런치 1일 1 프로젝트가 그 시작이었다.) 제주에서 지낸 지 2주 정도 지났을 때였다. '한 달만 더 살아볼까?'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정말 한 달이 지났을 때는 원래 지내던 호텔에서 다른 호텔로 이사까지 가면서 한달살이를 연장했다. 그 후 제주 한달살이는 3번이나 반복되었다.
결국 나는 한달살이를 청산하기로 했다. 제주에 머문지 4개월 지난 2021년 4월, 1년 동안 지낼 월세 방을 계약했다. 동시에 나는 법적 제주도민이 되었다.
처음에 한달살이로 제주를 찾았을 때 내 다짐처럼 일 년 살이가 시작되었을 때도 나는 속으로 다짐, 또 다짐을 했다. 이번 제주살이에서의 내 목표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것이고, 그 글쓰기로 먹고사는 것'이라는 것을. 솔직히 말하겠다. 그 일 년 동안 나는 굳은 다짐 앞에서 매일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어느 날은 그 다짐으로부터 도망가고 싶기도 했고, 또 다른 어느 날은 그 다짐을 했던 나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래서 제주에서 그 다짐을 끝까지 지켰냐고 물어보신다면, 결과적으로 글쓰기로 어떻게든 먹고는 살았다. 그렇다고 유튜브에 나오는 성공한 프리랜서들처럼 '월 50 벌다가 월 1000 벌어요'이런 말은 못 한다. 그 근처에 가려면 한참 멀었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월세 내고,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기에도 급급했다. 특히 제주살이 내내 월세 내기 1주 전, 카드값이 빠져나가기 며칠 전부터 극심한 불면증과 위통에 시달려야 했다.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본 친구들은 내게 물어봤다. 다른 일을 하면서 글쓰기를 병행할 수 있지 않냐고. 사실은 친구들이 그 말을 하기 전부터 나는 몇 달 동안 매일같이 알바, 구직 사이트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게시물을 보고 나서 나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네가 글로 돈 벌 수 있는 모든 시도들을 다 해보고 다른 일을 해보려고 하는 거니?'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아니.."였다.
내가 지난 20대를 돌아보며 뼈저리게 후회하고 배웠던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내가 진정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현재 나의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시도해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 시간이 흐르고 나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어떤 목표를 이루지 못한 그 결과'가 아니라, '충분히 시도할 수 있었음에도 시도하지 않았던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또다시 그러한 내 모습을 마주하기 싫었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안 간다고 할 만큼 내 다짐을 지키려 애썼다. 신기한 건 바라보는 방향을 자꾸만 바꾸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로 찾고, 시도하다 보니 하나둘씩 작은 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주에서 나는 매일같이 글을 쓰며, 글로 돈을 벌며 1년 5개월을 살아냈다.
2022년 4월 8일은 방 계약 기간이 끝나는 날이었다. 그날이 다가오기 3달 전부터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길고 복잡한 고민 끝에 나는 결정을 내렸다. 일단 5월이 되기 전에 제주를 떠나기로. 물론 제주를 이대로 떠나기에는 아쉬운 마음 또한 컸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됐다'라는 마음이 조금 더 컸다.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떠나고 싶었다. 아쉬운 마음과 떠나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49% vs 51%인 마음, 그래서 이곳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마음속에 묵직하게 간직한 채로 떠나고 싶었다. 그래야 이곳을 떠난 후에도 이곳을 그리워할 수 있으니까. 그 그리움이 머지않은 날에 분명 나를 다시 제주로 부를 테니까.
제주에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하나 있다.
"제주도 살아보니까 어때? 엄청 좋지? 너 행복해 보이더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삶이 그러할 것이다. 어떠한 장소 하나를 바꿨다고 갑자기 매일매일이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특히 한 곳에 오래 살다 보면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무뎌지기 마련이다. 낯설 때는 느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감각들이 알아차렸던 그곳의 매력들이 익숙함과 편안함이라는 두꺼운 담요에 가려져서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그게 어느 곳이라 할지라도 낯선 곳이 익숙한 곳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내게 제주도가 그랬다. 처음에는 '제주도라서 좋은 점'들만 눈에 보였고, 그것들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나는 '제주도라서 불편한 점'들을 찾고 있었다. 프리랜서로서 어떤 일을 시도하려고 할 때 잘 풀리지 않으면 제주도라는 장소를 탓했다. 돌아보면 그때 나는 제주도라는 장소가 아닌 나의 선택을 자꾸만 의심하고 후회했던 것 같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고, 좋아서 한 선택임에도 막상 그 선택에 따른 무거운 책임들이 코 앞으로 다가오자 그 무게를 견뎌내기 두려웠던 것이다.
"제주도 살아보니까 어때? 엄청 좋지?"라는 질문에 대해 아주 솔직하게 답을 해보겠다.
나의 제주살이의 일상은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제주라서 좌절했고, 실망했고, 아파했고, 무척이나 외로웠다. 하지만 나는 중간에 제주를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나지 못했다. 그것 또한 제주이기에, 제주라서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그만큼, 그 이상으로 나는 제주를 좋아했고 사랑했으니까.
제주에서 보낸 하루하루가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1년 5개월 동안 제주에서 보냈던 나의 그 시절은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매일 웃고, 매일 마음이 편안해야 그게 행복은 아니니까.
많이 아프고, 힘들고, 외로웠을지라도 제주에서 살았던 나는 '나로서 살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제주에서의 시간들을 떠올리고, 마지막에는 "그래도 정말 좋았어."라는 말을 꼭 하게 된다.
그렇다.
제주에서 보낸 1년 5개월이라는 그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 충분히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본 브런치 북은 다음회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찾아주시고,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