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
당신의 안부가 궁금했던 이유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상처를 받기도 하는 나와 당신의 마음속 이야기

by 기록하는 슬기


이별한 지 오래되었지만 제각각 다른 이유로 문득문득 떠오르는 옛 연인들이 있다. 이중에 그 빈도수가 가장 높은 두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나한테 상처만 남겼지만 그럼에도 내가 좋아했던 나쁜 X(이하 B)이고, 두 번째는 마지막까지 내가 상처만 줬지만 그럼에도 나를 사랑해줬던 착한 남자(이하 M)이다.


이 두 사람 중 누가 더 자주 떠오르냐고 물어본다면 단연코 후자 M이다. 하나 더, 이 두 사람 중 누굴 떠올릴 때 더 마음이 아프냐고 묻는다면 그것 또한 M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중 누가 나한테 더 끈질기게 연락을 해왔냐고 묻는다면 그 사람은 B이다.




B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어린 나이에 그저 '감정'이 시키는 대로 서투른 연애를 했던 사람이다. 사실 B와는 연애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정도의 시간 (약 3개월)을 만났다. B는 내 이상형에 가까운 외모와 입담, 그리고 여자를 설레게 하는 포인트까지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와 함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B는 좋은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니, 나쁜 놈이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쓰지는 않겠지만, 다방면에서 최악의 연애 상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곧이어 주변 사람들 또한 나에게 B와 헤어지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B의 친구 사이에서도 B는 '쓰레기'라고 불린다며.


다행히 나는 오래가지 않아 그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졌다. 나는 결국 B에게 이별통보를 했고, B는 당시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물러 터진 줄 알았던 내가 단호하게 헤어지자는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내게 연락해왔고, 나는 결국 그의 전화번호는 물론, 그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의 번호까지 차단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잠잠해질 때쯤 항상 내 주변 지인들에게 연락해 나의 안부를 묻거나, 어느 날은 내 번호까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그런 연락은 이별 후 6년이 지나서까지도 계속되었다.


이별 직후 B가 내게 다시 만나자고 애걸복걸할 때는 마음 한편에서 '복수를 했다는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 후, 오랫동안 그가 드문 드문 내 지인들에게까지 연락을 해올 때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쟤 왜 저래?' 이게 다였다. 난 그의 안부가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그 사람은 알아서 잘 살겠지 싶었다. 내가 B가 아주 가끔 생각나는 이유는 대부분 1차원적이었다. 그와 닮은 누군가를 길거리에서 보거나, 혹은 그와 사귈 시절 함께 알고 지냈던 지인이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거나. 아니면 그때가 떠올라 풋풋했던 '내'가 아주 가끔 그리워서? 그 정도였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중 한 장면, 왠지 모르게 깊은 공감이 간다.



그런데 문제는 M이다. 그 사람은 이미 내 글에도 몇 번이고 언급이 된 적이 있을 만큼 내가 가장 최근까지 그리워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단지 가장 최근에 만났던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M을 만날 당시에도, 헤어지고 나서도 내내 생각했다. 'M은 좋은 남자구나, 좋은 사람이구나.', '내가 M 같은 남자를 또 만날 수 있을까?'라고. 그래서 지금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드는 생각은 딱 하나다. '이렇게 될 거 조금 더 잘해줄걸..' 그에게 받은 게 너무 많아 그에 비해 너무도 보잘것없는 내 사랑이었다. 헤어질 당시 별로 힘들지 않았는데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를 아프게 만들던 사람이다.


M과의 만남도 내가 이별 통보를 하며 끝이 났다. M은 울먹이며 내게 다시 만나자고 했다. 당시 내 목소리는 누구보다 차갑고 단호했지만, 그 전화를 끊고 며칠 동안 나는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무슨 일이 있냐'라고 물어볼 정도로 나는 많이 아팠다. 그 사람만큼은 아니겠지만 매일 밤 나는 그 사람이 보고 싶었고, 그리웠다. 그리고 가장 컸던 마음은 '미안함'이었다. 내가 그에게 큰 상처를 줬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속으로 매일 스스로에게 말했다. '넌 정말 나쁜 년이야..'


M과 이별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아주 가끔 나는 그가 생각난다. 미련이라던가 후회, 좋아하는 마음이 남은 것은 아니다. 말도 안 되지만 만약에 그가 다시 만나자고 해도 나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비겁하지만 난 그 사람과의 사랑과 삶에 자신이 없다. 내 마음은 여기까지다. 그럼에도 그가 가끔 떠오르는 이유는 그저 그 사람의 안부가 궁금했다.


'잘 지내고 있는지'







이별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B와 M, 그 두 명을 떠올리며 한 번 생각해 봤다. 이제는 미련도,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왜 가끔 내 마음속에 노크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는지.



내가 M이 생각나는 이유는 그의 '안부'보다도
내가 그에게 줬던 '상처'가 궁금하기 때문이었다.


상처를 누군가에게 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 상처가 궁금하다. 내가 준 상처가 잘 아물었는지, 혹은 아직도 잘 아물지 못해 아픈 건 아닌지. 상처를 준 사람은 그 상처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그 과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상처가 다 아물어 흉터로 자리 잡는 동안 두 눈으로 그 과정을 보며 견뎌냈다. 그리고 그 상처가 흉터가 되고, 통증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이렇듯 M은 내가 준 상처를 한 동안 아파하며 흉터로 자리 잡을 때까지 견뎌냈다. 예상컨대 지금은 그 흉터 자국마저 많이 희미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B가 이별하고 6년이 지나도록 내게 연락을 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B는 나의 안부가, 나의 상처가 궁금했나 보다.


모든 것은 그 입장이 되어봐야 이해가 간다. 왜 그토록 B가 내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연락을 해왔는지, 신기할 정도로 나는 왜 이렇게 B에게 무덤덤했는지. 그리고 난 왜 자꾸 M이 생각났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돌아보니 누군가에게 나는 상처를 줬던 B가 되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받았던 M이 되기도 했다.


이제 내가 B를 떠올리면 아무렇지 않듯, M도 나를 떠올리면 아무렇지 않겠지 싶다. 나의 상처, M의 상처가 다 아물어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상처가 잘 아물어서 서운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이제는 나의 지난 상처가 사라지고 통증이 없는 흉터가 남았듯 M에게 '내가 너무 아픈 상처가 아니었길, 아픈 사랑이 아니었길' 바란다.






이제야 알 것 같다.

헤어진 연인이 묻는 "잘 지내?"라는 말에는 복잡한 마음이 엉켜있겠지만, 그중에는 "내가 준 상처는 어때..?"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 세상에 모든 상처가 그렇듯, 누구 때문에 생겼든 그 상처를 잘 아물도록 보살피는 일은 자기 자신의 몫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남아있는 크고 작은 흉터는 그런 아픔을 견디고 결국은 새살이 돋았다는 작은 훈장 같은 것이다. 이미 상처가 모두 아문 나와 당신은 새로운 상처도 기꺼이 받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상처도, 흉터도 두려워하지 말자.


상처는 언젠가 아물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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