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에도 여전히 이기적인 내 마음을 바라보며
스무 살 이후 10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나는 길고 짧은 연애를 적지 않게 했고, 그 연애의 끝에서 매번 나는 쿨했다. 아니, 독했다. 단 한 번도 맨 정신이든 술에 취했든 전 남자 친구의 전화번호를 누른다거나 혹은 희대의 명대사 "자니..?"라는 두 글자를 날린다거나 하는 불상사를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에 예외는 있는 법.
그 예외의 주인공은 마지막 연애를 했던 바로 전 남자 친구였다. (그는 이전 글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 사람과의 이별의 과정과 결과 속에 가해자와 피해자는 명확히 구분된다. 내가 가해자, 상대방은 피해자였다. 때는 2년 전, 나는 세계여행 중에 모든 결정을 혼자 내리고 그에게 '이별 통보'를 전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나를 붙잡았지만 나는 매몰차게 그를 외면했다. 마지막 문자로 그는 잘 지내라며 자신은 나의 꿈과 행복을 끝까지 응원한다고 했다. 그때까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던 나는 이 문자가 그와 하는 마지막 메시지임을 본능적으로 느꼈고,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나도 마지막 한마디를 전했다.
"나도 오빠가 잘 지냈으면 좋겠어."
그 이별 후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이번 연도 봄, 여름은 길지 않은 내 인생에서 감히 최악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힘든 시기였다. 1년 간의 해외 생활과 그 후 두 번째 장기 여행을 미리 계획해두었는데, 갑자기 건강이 심하게 안 좋아지면서 그 계획은 모두 무산이 되었다. 혼자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아파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면서 심적으로도 깊은 슬럼프를 겪게 된다. 그리고 그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별 후유증'도 함께 찾아왔다. 왜 나란 사람은 늘 늦은 건지. 난 난데없이 2년 전 그 사람과의 추억을 더듬거리며 매일 밤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에 대한 그리움이 절정을 달려갈 쯔음, 8월의 여름밤이었다. 지난 장기 여행 중 만났던 친구들을 오랜만에 다 함께 만나는 자리에 나갔다. 그날 반가운 마음에 비례해 우리 모두는 맥주잔을 자주 부딪혔다. 맥주만 마시면 취기가 잘 오지 않는 나는 살짝 기분 좋은 마음으로 일행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약간 알딸딸해지니 그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온몸이 가득 차 버렸다. 차라리 확 취했으면 고민 없이 확 김에 그의 전화번호를 눌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신은 말짱한데 술기운이 조금 밀려오니 내 안에 이성과 감성이 미친 듯이 싸우고 있었다.
"전화해. 그냥. 너 그 사람 궁금하잖아!"
VS
"아니야. 참아. 네가 그 사람한테 어떻게 했는데 전화를 해."
그러던 중 내 손가락은 이미 그의 카톡 프로필을 눌렀다가 메시지를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방황하던 내 엄지 손가락은 기어코 '통화하기'라는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바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 휴대폰 화면에는 전화번호로 연결을 하는 버튼과 보이스톡 버튼, 그리고 페이스톡 버튼을 선택하는 창이 새롭게 뜨는 거 아닌가. 평소에 카카오톡은 메시지로만 사용했던 나는 무심결에 한 번 더 '보이스톡' 버튼을 눌렀다. 나는 '연결하시겠습니까?' 정도의 확인 절차가 한 번 더 있는지 알았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당연히 '취소'버튼을 누르고 도망가려고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화기에서 경쾌한 멜로디 "딴딴따라딴~"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당황한 나는 황급히 종료 버튼을 미친 듯이 눌러댔다. 하지만 이미 카카오톡 대화창으로는 내가 보낸 메시지 두 통이 남아있었다. "보이스톡 해요", "취소"
그 순간 내 이마를 마구마구 때리면서 "아.. 망했다.."라는 말만 반복해 읊조렸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제발 나를 차단해줬기를 바라....' 일단 그가 나를 차단했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아무런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제발 오지 않기를 바랐던 그에게 답장이 와있었다. 그는 무슨 일로 연락을 했냐고 내게 물었다. 아마 그도 놀랬을 거다. 그렇게 냉정하게 뒤돌아버린 내가, 2년 동안 전화 문자 한 통 없던 내가 대뜸 그 밤에 연락을 남겨놨으니.
어떻게 말할까 고민을 하다가 나는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지금 나의 상황과 요즘 생각이 많이 났다고, 그리고 연락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누르고 바로 끊었다는 말까지. 마지막으로는 내가 먼저 이렇게 연락해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거듭 사과했다. 나는 그 메시지를 보내고도 혹시라도 욕먹는 건 아닐지 아니면 그대로 씹히는 건 아닐지 내심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역시 그는 달랐다. 그는 이미 내가 한국에 들어온 것도 내 sns를 통해 알고 있다고 하며 언젠가 한 번 연락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아프다는 내 말에 아프지 말라고, 헤어지고 힘들었지만 그것도 내 탓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연락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쓴 그의 한 문장은 내 가슴을 오랫동안 아프게 했다.
"주변 사람들 신경 쓰지 말고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 해서 성공하길 바랄게.
난 너 아직도 응원한다. 잘 지내."
자신에게 이별을 고했던 사람, 그리고 끝까지 자신을 뒤돌아봐주지 않았던 사람을 이렇게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은 내가 헤어진 후 2년이 흘러서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는 이야기와 함께 미안하다는 말을 다시 한번 전했다. 그리고 2년 전 그날처럼 진심을 담아 그에게 말했다.
"나도 진심으로 오빠가 잘 지냈으면 좋겠어. 잘 지내."
그 연락 이후 나는 작은 꿈을 꿨었다. 하지만 나도 그도, 우리는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만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날 이후로 내게는 더 심한 이별 후유증이 찾아왔고, 온갖 이유를 갖다 붙여 그를 떠올리고 아파했다. 그리고 습관처럼 그의 sns에 들어가 염탐하곤 했다. 사진 속 그는 내가 알고 있는 모습처럼 밝았다. 나 만날 때는 자주 못 만나던 친구들과 다 같이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러 다니고. 그는 나의 바람대로 정말 잘 지내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sns를 보고 나면 마음 한편에서는 자꾸만 샘이 났다. 나 없이도 정말 잘 지내고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니 솔직히 얄미웠다. '잘 지내라고 했더니 정말 잘 지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네가 잘 지냈으면 좋겠지만, 왜 잘 지내지 않기를 바라는 걸까.'
유난히 뜨겁고 습했던 이번 여름과 함께 절정을 달렸던 이별 후유증도 이제는 뚝 떨어진 기온과 함께 한풀 꺾였다. 그리고 나는 그와 시작했던 순간부터 그 과정, 그리고 끝을 떠올려봤다. 돌아보니 그 안에서 나는 늘 이기적이었다. 내가 사랑하고 싶은 만큼만 사랑했고, 사랑받고 싶은 만큼만 사랑받았다. 이별 후에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아파했고, 참을 수 있을 정도만 그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사랑도 이별도 끝난 후에도 나는 그가 내가 원하는 만큼 아주 조금은 힘들어하길 바랬던 것이다. 나란 사람, 끝까지 이기적었던 것이다.
지난 여름밤처럼 그가 자주 내게 찾아오지는 않지만 가끔은 그의 기억이 진하게 나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그는 아직도 가끔 내 sns에 들어와 나의 안부를 궁금해할까. 그도 잘 지내 보이는 나를 보며 조금은 배 아파하며 씁쓸하게 sns 창을 닫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곧바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가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 속에서 나는 그의 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오래전 잘 지내는 나를 보며 미워했다가, 다행이었다가, 다시 아파했다가를 수없이 반복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나에 대한 마음을 모두 다 써버렸다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그 양이 있어서 그 관계가 지속이 되든 끝이 나든 그 마음을 다 쓰고 나서야 그 사람을 보내줄 수 있다고 한다. 그 사람은 나와 만날 때 그 마음을 아끼지 않고 썼다. 그는 말과 행동으로 내게 보여줬다. 나는 지난 사랑에 잔뜩 겁만 먹고 그에 대한 사랑을 아꼈다. 그리고 그와의 이별 후 다 쓰지 못한 그 마음을 이제야 홀로 이 자리에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마 이별 직후에도 온 마음을 다해 나에 대한 사랑과 아픔을 썼을 것이다. 그리고 몇 개월 전 그가 마지막으로 내게 해 준 "잘 지내"라는 말은 그 이상의 의미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지금까지 내가 그에게 했던 "잘 지내"라는 말은 결국 " (나 없이) 잘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말이었다.
이별 후 2년 3개월 동안 그를 그리워하고 아파하며 그에 대한 마음을 다 써버린 지금에서야 나도 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는 이 말 그대로 진심이다.
"네가 정말 정말 잘 지냈으면 좋겠어."
지금까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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