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노력하면 될까요?

사랑을 두려워하면서도 또다시 사랑을 선택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by 기록하는 슬기


지난 나의 20대의 연애사를 돌아보면 그리 만족스럽지도, 그렇다고 불만족스럽지도 않다. 그 와중에 다행(?)이었던 것은 특출 나지 않은 외모와 매력에 비해 또래 이성들에게 인기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리즈 시절'은 대학교 3학년 전 긴 연애를 시작하기 전과 그리고 그 연애를 끝낸 후 1년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상하게 (본인이 이해가 안 가서 이상하다고 표현한다.) 재수 후 대학교 1학년 신입생 때는 나를 좋아한다는 이성들이 꽤 많았었다.


그중 한 친구는 나를 본 지 단 2일이 지난 후 내게 고백을 해왔다. 그때까지 '여중-여고' 6년 동안 금남의 세월을 보낸 연애 고자였던 나는 이런 고백에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한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이렇게 짧은 시간만 보고 가능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이렇게 바로 고백을 한다고?'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짧은 고백을 마친 그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금 네가 말한 거.. 솔직히 나는 이해가 잘 안가.. 그냥 충동적으로 느끼는 감정 일수도 있으니까 시간을 가져보고 그다음에 이야기해보자. 혹시라도 시간이 흘러서 이 감정이 아녔다고 해도 나는 신경 쓰지 마. 너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 알겠지?"

그때 그 친구는 자신만만하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 한번 사람 좋아하면 정말 오래 좋아해. 사실 이전에 좋아했던 사람도 3년 넘게 좋아했었어. 나 이거 그냥 하는 이야기 아니야. 지금은 그렇게 느낄 수 있지만 나중에 진짜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야. 나 진심이야. 지켜봐 봐."


5000.jpg



그 고백을 듣고 1개월, 2개월 시간은 흘렀고, 그 친구는 1년이 지나고 나서도 나를 좋아했다. 그 친구의 성격상 직설적으로 고백을 한다거나 티를 겉으로 내지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늘 뒤에서 나를 챙겨주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 친구는 군대를 갔고, 그는 내 기억에서 서서히 잊히고 있었다. 그때 나에게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고 그 사람과 3년이 넘는 연애를 하게 된다. 연애의 끝이 좋은 연인이 어디 있겠냐만 그 사람과의 연애의 끝은 한 마디로 '너덜너덜' 했다. 헤어지고, 다시 사귀고의 과정을 몇십 번 반복하며 '정말 이렇게 끝인 거야?' 싶을 때 우리는 서로의 전화번호를 더 이상 누르지 않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그렇게 오래 해 본 연애라 그런지 온 마음을 다해 표현했다. 시작의 달콤함도 끝의 구질구질함도 그 어떤 연애보다 강렬했다. 그리고 나는 연애의 허무함에 빠져 다시는 연애 같은 것 하지 않겠다며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그때였다. 한참 그 연애의 끝에서 힘들어할 때 나를 오래전부터 짝사랑해 온 그 친구는 제대를 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나에게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는 내게 그때도, 지금도 특별한 사람이다. 겨우 이틀 보고 나한테 고백을 한 사람, 근데 그 마음이 4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사람. '나를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볼 수 있을까. 이런 사람을 만나야 내가 덜 상처 받고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진심이 얼마나 길었고, 무거웠는지 알았기에 쉽게 "일단 만나보자!"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친구도 강력하게 "만나자!"라고 밀어붙이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자꾸 내게 고민할 틈을 줬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그래. 나도 한 번 노력해보자. 사랑도 노력하면 될 거야.'




어바웃타임_1.jpg




이전에는 나는 희망고문은 나쁜 거라 생각해서 그 친구에게 문자가 오면 일부러 단답형으로 보내거나 딱히 할 말이 없으면 씹기 일수였지만 '노력'하자고 결심하고 나서는 문자 하나하나 답장을 보냈고, 가끔 걸려오는 전화도 성의 있게 받았다. 그리고 그 친구가 용기 내어 만나자고 하면 고민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한번 나가서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이 사람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 이전에 내게는 '좋은 친구'이기도 했다. 그와 있으면 편하고 좋았지만, 그뿐이었다. 그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면 나는 더 멀어지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나는 또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에게 노력을 하며 나는 점점 내 마음의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나는 그를 좋아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사랑은 노력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런 확신이 들고 나는 그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아마도 내가 노력할 때부터 이미 결론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몇 년 동안 나는 그에게 작은 '틈'조차 주지 않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때 그는 나에게 어떠한 이유도, 변명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새로운 연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도 이기적인 인간인지라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내 속마음은 '응? 걔가? 걔 2주 전까지도 나 좋다고 했는데..'였다. 알고 보니 그는 나 때문에 힘들어서 당시 여사친 (현 여친)에게 상담을 했고, 그러다 둘은 정이 들어 사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 더. 그와 사귀게 된 그녀는 오래전부터 그를 짝사랑 해왔다고.

그렇다면 그도 그녀에게 '노력'했던 걸까.

'그는 사랑이 노력으로 가능했던 걸까.'



IMG_7525.JPG



그 후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그제야 나는 새로운 누군가와 큰 '노력'없이 사랑에 빠졌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했던 사랑도 결국은 끝이 나있다. 20대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름답고도 처절했던 '사랑', '연애'라는 깊은 호수에서 쉼 없이 헤엄을 치며 이제야 알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 물속으로 빠지는 일 밖에 없다는 것을. 같이 보트 위로 올라가 노를 젓든 함께 구명조끼를 입고 헤엄을 치든 그 둘에게 맞는 노력을 해야 그들은 그 깊은 호수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둘 중 한 명만 죽어라 노력하면 결국 그 한 명은 지쳐 나가떨어지게 된다. 즉, 노력 없이 시작한 사랑이든 노력으로 시작한 사랑이든 그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노력'이란 필수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노력을 기꺼이 감내하느냐, 아니면 그 노력을 외면하느냐의 차이일 뿐.


때로는 머리는 알아도 가슴은 모르는 것, 때로는 머리는 몰라도 가슴은 아는 것.
의식적으로 하는 '노력'과 본능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적절히 섞여야만 무사히 그 둘의 사랑은 지켜진다. 이렇듯 '사랑'이란 놈은 너무도 변덕이 심해 늘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아이러니 하지만 결국 우리는 이 맛에 '사랑'을 한다.



힘들어도 그만큼 달콤한 것, 많이 울어도 그만큼 웃을 수 있는 것, 어렵지만 그만큼 짜릿한 것.

'노력'을 고단하다고만 느껴지지 않을 누군가가 내게 나타나 끝까지 그 사람에게만 그 '노력'을 하고 싶다.

아마도 나도 사랑이 하고 싶나 보다.







지금까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공감과 댓글은 글 쓰는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