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데리고 살 사람은 '나'다.

내 마음에게 미안함과 애틋함을 전하며.

by 기록하는 슬기


최근 2~3주 동안 내 기분은 내내 다운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자주 느끼는 우울감도 아닌 것 같았고, 그렇다고 슬럼프 때 겪었던 무기력증도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몸과 마음이 축 처졌달까. 처음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두 달 가까이 밖에 제대로 못 나가고, 사람들도 못 만나서 그런 걸 거야.'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리고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도 내 일상은 상당히 건조했고, 단조로웠기에 '이러다가 말겠지..'라고 여겼다.


그런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나의 감정 그래프가 눈에 띄게 바닥을 향해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늘어만 갔다. 자꾸만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아서 폐인지 심장인지 명치인지 어디인지 모를 내장 끝까지 숨을 들이마셨다가 길게 '후~'하고 내뱉는 내 모습을 자주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신경이 예민해질 때마다 청각이 더욱 민감해지는데, 근래에는 평범한 일상 소음에 인상을 찌푸린 내 표정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보았다. 혹시나 해서 달력을 확인해 봤는데 딱히 여성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시기도 아니었다.


심상치 않는 나의 이러한 감정은 곧 '슬럼프'라는 무시무시한 놈을 데리고 올 수 있으니 최대한 정신줄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한동안 뜸하게 썼던 스케줄러에 매일매일 해야 할 일들을 적었다. 일상이 무너지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꾸역꾸역 글을 썼고, 매일 하는 영어공부와 운동을 했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다행히 예전처럼 감정에 휘둘려 나와의 약속들을 확 포기해버리는 그런 충동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바닥을 향해 가고 있는 나의 감정 그래프가 다시 상승될 기미는커녕 유지조차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프의 하강 곡선의 각도는 비교적 완만해졌지만 여전히 곡선의 끝은 x축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감정의 원인을 차근차근 찾아보기로 했다. 분명히 내가 이렇게 힘든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2018. 06. 호주 퍼스, 코테슬로 비치.>



처음으로 떠오른 그 이유는 10대 때부터 항상 나와 공생하고 있는 우울감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우울하다.'라는 네 글자보다 '외롭다.'라는 세 글자가 유독 내 뇌리에 자주 스쳐갔다. 그도 그럴 것이 친하게 지내는 친구, 동생들과 얼굴 보고 대화를 나눈 지가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전화나 메시지를 통해서라도 소통을 하고 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먼저 연락을 해보았다. 그런데 내 최측근들 또한 요즘 바쁜 일상과 무거운 고민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기에 전화는 2분 만에 종료가 되었고 메시지 또한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름 모를 다운된 감정에 '외로움'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붙여졌다.


두 번째로는 '실망감'이 나를 지치게 한 것 같았다. 지난 1월에 규모가 큰 한 공모전에 출품을 했었는데, 수상자들에게는 3월 중순에 메일로 개별 통보를 해준다고 했었다. 3월 10일이 갓 넘은 날부터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메일함을 확인했었다. 메일함 옆에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는 숫자가 떠있을 때마다 나는 짧은 기대 후 긴 실망감을 맨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세 번째로는 경제적인 이유가 될 것 같다. 2월 말에 호주 워킹홀리데이 세컨드 비자의 유효기간이 끝난 후, 나는 세금과 연금 등 회계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는 중이다. 호주 세금법이 점점 워홀러들에게 불리하게 바뀌어 가고 있다는 건 익히 들어왔기에 세금 환급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환급은커녕 나는 오히려 적지 않은 금액을 호주 국세청에 '추가 납부'해야 했다. 담당 회계사님께 한화로 돈을 이체하고 나서 본 한국 계좌에 남은 초라한 잔액은 위산 분비를 촉진시킬 뿐이었다. 하나 더하자면 요즘 호주 환율은 최근 10년 중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그나마 남은 돈은 모두 호주 계좌에 있다.)


그 이외에도 자잘한 이유들이 있었지만 최근에 내 감정 영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들은 이러했다. 이렇게 머릿속으로 내 기분이 왜 다운되었었는지를 정리를 하고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외로움? 내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게 아니라 나랑 친한 사람들이 현재 내가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감정인지 모르니까 내 전화나 문자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거야. 괜히 오버하지 말자.


공모전? 탈락? 그 공모전은 워낙 경쟁률 세기로 유명하잖아. 애초에 수상이 힘들다는 거 알고 있었으면서 왜 그래. 공모전 수상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아니잖아.


돈? 어차피 호주 세금은 내가 그곳에서 정당하게 일했으니 당연히 처리해야 할 일이고, 그 나라 법이 그렇다는데 어떻게. 따라야지. 환율? 남은 호주달러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연연하지 말자. 한국에서 마음먹고 한 달 일하면 다 메꿀 수 있는 돈이잖아. 돈은 벌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그냥 나는 지금 하던 대로 글을 쓰면 되는 거야. 글을 쓰는 과정, 글을 쓰고 나서의 반응, 다시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한 고민과 고뇌까지. 힘든 일이라는 거 이미 알고 시작했잖아. 새삼스럽게 너무 괴로워하지 말자. 지금 내가 힘들 이유, 우울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 다 네가 선택한 거잖아. 이것도 다 견뎌내야지. 안 그러면 넌 또 실패할 거야. 패배자로 살아가게? 아니잖아. 그러니 강해져야 해. 버텨야 해.'





'버티자.'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던 시기 중 하나. <사진_2018. 08. 호주 퍼스>



나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며 정신 승리를 하기 위해 하루, 하루 다시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 때문에 1년 넘게 해외에 있는 친오빠에게 연락이 왔다. 오빠는 요즘 그곳의 상황과 안부를 전해줬고, 나도 그 답으로 나의 근황을 전했다. 공모전에서 수상 발표 메일이 안 온다는 것과 얼마 전 호주 세금을 꽤 뱉어냈다는 것, 그래서 금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것을 최대한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연락하던 당시 오빠는 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런지 답장이 느리게 왔다. 혹시라도 나는 오빠에게 방해가 될까 봐 "바쁜 거 같으니 나중에 편할 때 연락 다시 하자."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오빠는 바로 "알겠어"라고 답했다. 나는 거기서 오빠의 메시지가 끝난 줄 알았지만 연이어서 몇 개의 메시지가 더 도착했다.


그런데 그다음으로 온 첫 번째 말풍선 안에 담긴 12개의 글자를 읽고 나는 뜬금없이 눈물이 터져버렸다. 한 번도 나는 이렇게 짧은 메시지를 읽고, 그것도 대낮에, 그것도 맨 정신에 울어본 적은 없다. 아니 나는 정말 울고 싶어도 잘 울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냥 눈물이 나왔다. 갑자기 터진 눈물에 나는 두 손으로 두 눈을 꾹 눌러 막고 소리 조차 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억눌러왔던 이름 모를 감정들은 눈 밖으로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분명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울었는데 목 끝이 아렸다. 그리고 심장도, 명치도 아팠다. 물 한 방울도 남지 않게 빨래를 짜내듯 그것들을 마구 비틀어 대는 것 같았다.


오빠가 보낸 그 짧은 메시지의 한 줄은 이러했다.

"그리고 너무 우울해하지 말아."



조금 진정이 되고 나서 오빠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봤다. 저 짧은 문장이 나를 울렸던 그 이유를 여러 번 속으로 읽고, 소리 내서 읽고 난 후에야 알 것 같았다.


"너무 우울해하지 말아."라는 그 말은 내 마음이 기다렸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몰랐다. 우울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우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며 내가 지금 이런 기분을 느껴서는 안 된다고, 이겨내야 한다고만 말해왔다. 그리고 '나는 우울하지 않다. 나는 괜찮다.'라고 생각하며 나의 감정을 부정했다.


맞다. 이유가 어찌 됐건 나는 요즘 우울했다.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와 기침을 하게 만들고, 고열을 내고, 심하면 생명을 빼앗아가듯 요즘 내 마음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세균이 들어왔었나 보다. 한숨은 늘어갔고, 그 한숨마저 쉬기 버거웠고, 심장은 자꾸만 빨리 뛰었다. 무언가를 기다렸지만 원하는 답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내 마음이 원하는 그 답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 답을 보고 듣기 전까지는.




내 마음이 바다와 노을이 보고싶다고 말한다. <2018. 06. 호주 퍼스>



내 마음은 그저 누군가는 자신을 알아주기를, 공감해주기를, 위로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타인이 늘 알아서 나의 마음을 달래줄 수는 없다. 그리고 그걸 기대하고 기다린다면 높은 확률로 아픈 증세는 더 악화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타인보다도 내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일이다. 어떤 특정한 이유가 있든 없든 내 마음이 그렇게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공감해주고, 인정해줘야 한다.


가끔 우리는 가장 잘 알 것 같은 내 마음에 대해 잘 모를 때도 있고, 애써 외면할 때도 있다. 하지만 평생 내 마음을 데리고 살 사람은 나다. 죽을 때까지 내 마음은 항상 나의 말 한마디, 나의 관심을 기다릴 것이다. 내가 내 마음을 몰라준다면 내 마음은 대체 누구한테 위로를 받는단 말인가.





오빠의 메시지를 보고 눈물을 흘렸던 날, 나는 내 마음에게 이렇게 말했다.

"많이 기다렸을 텐데 미안해. 내가 널 알아주지 못해서, 너를 안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제는 네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왜 그것밖에 못하냐고, 왜 이렇게 약하냐고' 탓하지 않을게.

여린 네가 감당해야 할 이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잘 알아. 사실 나는 그런 네가 안쓰럽고, 가여워.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렇게 잘 견뎌내 줘서, 살아줘서 고마워.

앞으로는 많이 기다리게 하지 않을게. 너를 바라보고 느낄게.

그리고 너무 우울해하지 말아."













오늘도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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