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이 필요한 곳은 내 방이 아닌 내 맘이었다.

마음속에 지난 '기억', '감정'으로 가득 찬 맥시멀 리스트의 다짐

by 기록하는 슬기


코로나 19로 인해 근 두 달 동안 집에만 있게 되면서 나는 '집'에서 해야 할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지난주, 예전부터 미뤄오던 내 방 '대청소'를 하기로 했다. 20살 이후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줄곧 타지 생활을 해온 나에게 본가에 있는 내 방이란 그저 잠시 머무르다 가는 공간일 뿐이었다. 그래도 작년에 해외 생활을 마치고 본가로 돌아와 살게 되었지만 집에 빈 방(오빠 방)을 전용 서재로 쓰고 있기에 내 방은 여전히 잠만 자는 곳이었다.


긴 시간 동안 방치해뒀던 내 방을 대대적으로 갈아엎기로 굳게 마음먹고 청소 장갑과 마스크까지 꼈다. 곧이어 옷장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는 '(자칭) 미니멀 리스트'이라는 것이다. 또래에 비해 물건에 대한 욕심은 어렸을 때부터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게다가 워낙 꼼꼼한 성격에 선택 장애까지 합쳐져서 충동적인 소비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의류품 외에도 전자기기 등 웬만한 물건들은 오래 쓰는 편이라서 애초에 버려야 할 물건들은 많지 않았다.


대청소는 옷장과 행거, 발코니 공간, 책장까지 차례대로 막힘없이 진행되었다. 그다음으로는 방청소 중 가장 난도가 높은 책상과 책상 서랍만이 남아있었다. 책상 위에는 내 게으름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차곡차곡 쌓아둔 공적인 서류들과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책들, 스케줄러와 일기장, 먼지가 눌어붙은 몇 권의 전공 서적들, 그리고 언제 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잡동사니 문구류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일단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한쪽에는 앞으로도 필요한 것들을, 다른 한쪽에는 앞으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검은 봉지에 담기로 했다. 정리하던 도중 그 경계선에서 고민하게 만드는 물건들도 많았지만 몇 년 동안 내가 찾지 않았다는 것은 앞으로도 찾지 않을 것 같아 대부분 과감하게 검은 봉지 안으로 넣었다.



DSC08156.JPG 사진은 호주 살 때 쓰던 내 방의 현실적인 모습. (이번에 방청소 전후 사진을 찍지 못했다.)



나름 미니멀 리스트로 살아온 습관 덕분에 책상도 생각보다 빠르게 정리가 되었다. 이제는 이 대청소의 피날레를 장식할 책상 서랍만이 남았다. 책상 서랍에는 이전부터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보관해온 곳이라 오늘처럼 큰 맘먹지 않고서는 정리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다. 얕은 심호흡을 쉬어주고, 첫 번째 책상 서랍을 살짝 열어봤다. 서랍 입구에는 세계 여행 중 친해진 친구들로부터 받은 손편지들이 먼저 나를 반겨줬다. 곧이어 서랍을 끝까지 다 열자 그 속에는 많은 양의 편지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누군가로부터 받은 아기자기한 선물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편지와 선물이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더욱 막막했지만 일단은 이전처럼 두 가지로 나누기로 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잠시 책상 위로, 필요하지 않은 것은 검은 봉지에 넣기로 했다.


서랍 정리를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창문을 통해 들어오던 주황색 태양빛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오늘 안에 충분히 방 대청소를 말끔하게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나는 첫 번째 서랍 안에 있는 물건들을 분류조차 마치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준 편지 인지, 누가 준 선물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당장 필요 없다고 버리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편지를 하나하나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편지들을 써준 사람들 중 몇몇은 지금은 연락조차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 몇몇은 20년, 10년 넘게 내 옆자리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랍 속 편지들의 출처가 다양하듯 편지를 쓴 이유도, 그리고 편지지도 다 제각각이었다. 내 생일이나 어떤 특별한 날에 맞춰 예쁜 편지지에 써준 것들도 있었지만 줄무늬 공책을 쭉 찢어서 쓴 날 것 그대로의 편지들도 많았다.


분명 시작은 서랍을 비워내기 위해 편지를 읽은 것인데, 금세 나는 본래의 목적을 잊고 편지를 받았던 그때 그 기억 속에서 푹 빠져있었다. 나는 누가, 어떤 이유로, 어떤 편지지에 썼든 이 서랍 속 편지 중 어느 하나라도 쉽사리 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 그 많은 편지들은 다시 내 서랍 속으로 몸을 숨겼고, 어두워진 하늘을 핑계 삼아 방청소를 이쯤에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찝찝한 마음으로 여전히 무거운 첫 번째 서랍을 끝까지 밀어 넣고, 문득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니멀 리스트가 아니었구나.

물질적인 부분을 몰라도 '기억', '감정'과 같은 내면적인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 '맥시멀 리스트'였구나.







돌이켜보면 나는 나의 기억, 상대방의 기억에 항상 집착했다. 미래에 나의 기억에 저장될 현재의 그 순간을 미리 그렸고, 그 기억에 흠이라도 날까 봐 늘 노심초사했다. 그리고 훗날 상대방의 기억 속에 내가 어떻게 기억될지에 대해서 늘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렇게 공들여서 만들어진 '기억'이라는 작품에 나는 남다른 애착을 보였고, 소중하고 특별한 기억일수록 그것들이 조금이라도 새어나갈까 있는 힘껏 꽉 안은 채로 살아왔다. 시간이 흘러 그 기억을 함께 만든 타인들이 모두 그 기억들을 놓아주고 흘려보내 줬을 때도 나는 그 기억 속에 홀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나는 인간관계에 속에서 자연스레 생성되는 감정이 늘 풍부했다. 좋은 감정이든 좋지 않은 감정이든 그 감정을 항상 최대치로 느껴왔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쉽게 고마워했으며, 쉽게 행복해했고, 쉽게 미안했고, 쉽게 상처 받았고, 쉽게 우울했고, 쉽게 외로워졌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기분이나 감정을 먼저 생각하는 그 마음 또한 컸기 때문에 흘러넘치는 나의 감정들을 먼저 숨겨야만 했다.


물론 나도 인간이기에 당연히 '망각'을 하며 산다. 하지만 나는 정말 잊어야 할, 잊게 내버려 둬야 할 기억과 감정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다. 소중한 기억과 감정은 더욱 크게, 동시에 아픈 기억과 감정 또한 더욱 선명하게 간직해왔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인연과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데 있어서 늘 두려웠고, 어떤 관계일지라도 그 속에서 항상 고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P20200411_232040313_EF3C1C1A-9443-4B71-8A88-EC4858DE4916.JPG 빈틈없이 빼곡하게 쌓인 편지들이 꼭 내 마음속 같다. (사진은 그래도 가지런히 편지들을 재배치해놓은 모습.)



그날 밤, 나는 깨끗하게 정돈된 내 방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마지막으로는 아직도 세월 지난 편지들과 선물들로 가득 차있는 첫 번째 서랍을 열어 한참 동안 그 안을 쳐다보았다. 나는 그중에서 아까 읽어본 하늘색 편지 한 장과 빛바랜 엽서 한 장을 꺼내어 곧바로 검정 봉지 안으로 넣었다. 그 편지와 엽서는 오래전 나에게 상처를 남겼던 한 친구로부터 받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지금 비워내고 정리해야 할 곳은 내 방이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정말 비워내고 정리해야 할 곳은 이 서랍 속처럼 캐캐 묵은 기억들과 감정들이 어지럽게 엉켜있는 내 머릿속과 내 마음 속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모든 기억과 감정이 갖는 의미는 저마다 존재하겠지만 잊힐 때는 잊히도록, 나에게서 떠나갈 때는 떠나가도록 이제는 힘을 빼고 그저 바라보려고 한다. 아직은 자연스럽게 기억과 감정을 흘려보내 주는 것은 어렵지만 굳이 내가 안고 가지 않아도 될 기억과 감정부터 먼저 놓아주고 버리는 연습을 천천히 해보기로 했다. 오늘 내 서랍이 어제보다는 아주 미세하게나마 가벼워진 것처럼 이렇게 조금씩 비워내 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훗날 서랍 속에 생긴 빈 공간처럼 내 머릿속과 내 마음속에도 작지 않은 여백이 생겨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안고.









오늘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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