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행복이 나에겐 슬픔으로 다가올 때

부러움과 질투로부터 늘 도망치기 바빴던 내 마음을 돌아보며.

by 기록하는 슬기


"00이 이번에 그 들어가기 힘든 대기업 최종 합격했대."

"저번 달에 XX는 승진해서 연봉도 많이 올랐대."

"내년 초에 **이 결혼한대. 들어보니까 예비 신랑도, 시댁도 엄청 좋은 것 같더라."

"00이네 다음 달에 새로 짓는 고급 아파트로 이사한대."

등등..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주제만 바뀌었을 뿐, 이와 같은 소식들은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상관없이 내 귀에 들어온다. 사실 나는 '진심으로'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누구보다 원하는 사람이다. (내 주변이 불행하면 나 또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예전부터 주변 사람들의 합격, 취직, 승진, 결혼, 출산 등 아직 내가 해보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잘 된 일에는 정말로 축하해주고 박수를 쳐주곤 했다. 물론 그런 소식을 들을 때면 나도 가끔은 조급해지기도 했지만 크게 동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나도 어떤 한 소식을 들을 때면 말 못 할 찝찝한 감정들이 가슴속에서 제법 뜨겁게 부글부글 끓어오르곤 한다. 나에게 그러한 감정을 가져다주는 이야기는 바로 누군가의 '책 출간 소식'이다.



며칠 전이었다. 이름만 알고 있던 몇몇 유튜버들의 출간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접했다. 요즘은 '책을 내고 싶다면 먼저 유튜브로 성공을 해라.'라는 말이 있듯이 출판에 있어서 인터넷 상에서의 인지도는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 유튜버들만 해도 이미 10만, 20만 명의 구독자들을 보유하고 있기에 그들의 출판 소식은 그리 놀랍지 않았다. 왜냐면 몇 년 전부터 sns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서 유명한 인플루언서들이 책을 출판하는 과정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출간 소식을 전한 그 유튜버들의 sns는 이미 시끌벅적했다. 그들의 많은 팬들은 책을 구매했다며 인증샷을 올렸다. 그리고 그 유튜버들은 그런 팬들에게 너무 고맙다며, 기대보다 책 구매량이 높아서 자신도 놀랐다는 짧은 글과 여러 사람에게 축하받고 있는 사진 몇 장을 함께 업로드했다. 그 사진 속 그 유튜버의 표정은 너무 행복해 보였다.


그 행복한 표정이 담긴 사진 몇 장을 본 후, 내 기분은 말 그대로 오묘했다. 무턱대고 '우와. 좋겠다.'도 아니었고, 그 반대로 '왜 오버야? 아 꼴 보기 싫어.'도 아니었다.



솔직히 나는'부러웠다.' 그리고 조금 '슬퍼졌다.'




P20190706_201730799_B72CB4AC-324C-485A-B44D-748030A78435.JPG 곧 초록불로 바뀐다는 걸 알면서도 이 빨간불이 왜 이렇게 길게만 느껴지는지. <사진은 2019. 07>




돌아보면 나는 스스로에게 '난 별로 질투 같은 거 없는 사람이야.', '난 주변 사람들 별로 신경 안 써.'라고 프레임을 씌웠던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질투 같은 거 없는 사람으로 보여야 해.'라는 생각으로 내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질투', '시기'와 같은 감정이 찾아오면 스스로 자꾸 외면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감정을 내게 느끼게 해주는 대상과 그 감정을 느끼고 있는 나의 모습 그 자체를. 왜냐하면 '질투'는 타인의 행복을 인정해주지 못하는 마음이 작은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오랫동안 정말 원했던 어떤 것을 누군가가 먼저 (겉보기에는) 손쉽게 얻은 것 같을 때, 그래서 행복해하는 그 타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어김없이 '질투'라는 감정은 나를 찾아왔었다. 작가를 꿈꾸며 매일 글 쓰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의 '출간 소식'은 내게 질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번 의심해보았다. 지난 기간 동안 내가 '진심으로' 지인들에게 축하해줬던 내 마음에도 '질투'라는 감정이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음. 그들의 행복을 바라보며 '부러움'은 느끼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 자신이 작아 보인다거나 슬프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마 그 이유는 그들의 행복을 찾는 과정과 나의 행복을 찾는 과정 속에 딱히 교집합이 되는 부분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타인의 행복, 그 자체에 질투를 느꼈다기보다 타인이 이뤄낸 과정, 그중에서도 나와 겹치는 그 과정을 부러워했던 것이다.




P20180514_043442283_5ECD44EC-194F-4500-B01F-3DE24CCF72FE.JPG 부러우면 지는 게 아니라 부러워하지 못하는 그 마음이 진거야. <사진은 2018. 05. 호주 브리즈번>



나의 얼굴도, 이름도, 나의 존재 조차 모를 누군가에게 질투를 인정하고, 질투를 마음껏 하고 나니 이제야 뿌연 안갯속으로 숨으려고 했던 나의 또 다른 내면이 보였다. 난 누구보다 나의 내면을 의심하게 만드는, 나의 내면을 흔드는,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먼저 차단하려고 했다. 그 감정을 견뎌야 하는 것이 얼마큼 힘든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애써 감추고 온갖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을 해왔던 것이다. '남의 행복과 나는 별개야.', '나는 그렇게 마음이 작은 사람은 아니야.', '나는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면서. 그렇지만 내가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난 누구보다 책, 음악, 영화를 보면서 공감을 잘하는 1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양한 감정을 잘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시도 때도 없이 온갖 잔 감정들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누구보다 평범한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을.




세상에는 무조건 좋은 감정만 있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나쁜 감정만 있는 것도 아니다. 감정이란 딱 마주했을 때 '얼굴'과 떠난 후 그 감정들이 남기고 간 '기억과 메시지'는 꽤 다르다.

이번에 찾아온 '질투'라는 감정은 처음에는 열등감, 초라함과 같은 슬픈 감정을 무턱대고 내 턱밑으로 밀어 넣었지만 그가 지나간 자리를 보니 요즘 조금 루즈해 있던 내게 '건강한 경각심'을 선물해준 듯하다.

한창 졸려울 이 시간에 두 눈을 또렷하게 뜨고, 경쾌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질투'라는 감정에 대해 이렇게 글 쓰고 있는 나를 보니.






우리는 상황마다 따라오는 감정의 파도 속에서 내가 원하는 감정들만 골라서 서핑을 즐길 수는 없다. 일단 우리가 할 일은 예상치도 못한 그 어떤 파도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기 위해 좋든 싫든 내게 찾아오는 감정들과 친해지는 일이 아닐까.

왜냐면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떠 오늘 일어날 일을 모르고, 동시에 오늘 내게 찾아올 감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내 존재를 아예 모르지만 나 혼자 질투를 느꼈던 그 누군가에게 한 마디 해본다.

"솔직히 엄청 부러워요. 순도 100% 진심을 담아 축하는 못해주겠지만, 그래도 당신이 불행한 것보단 행복한 게 좋아요. 왜냐면 당신의 행복은 내 질투의 원인이자 내 용기의 근원이기도 해요. 그리고 덕분에 나의 '질투'와 조금은 친해진 것 같아요. 나와 비슷한 듯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당신, 축하해요."








오늘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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