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도 외롭고 쓸쓸한 나와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편지를 쓰고 싶다.
두 달 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친한 친구들도 가끔 DM으로 연락을 하기에 아무 생각 없이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그런데 DM의 출처를 확인하자마자 나는 오랜만에 보는 이름에 반가움, 곧바로 물음표를 가득 채운 의아함에 잠시 멍해졌다. 그 메시지는 3년 전 떠났던 세계여행 중 만났던, 그렇지만 근 2년 간 연락이 끊겼던 한 친구로부터 온 것이었다.
게다가 그 친구가 보낸 메시지는 짧은 한 줄이었는데, 보통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사람들의 '정말 오랜만에 연락하네.. 요즘 어떻게 지내?'와 같이 예측 가능한 메시지의 내용과 달랐다. 그 친구가 2년 만에 보낸 메시지는 이러했다.
"네가 괜찮다면 편지를 좀 보내주고 싶어서 연락했어."
그러고 보니 이 친구는 장기 여행 중인 그 당시에도 한국에 있는 사람들, 지난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자주 손편지를 쓰던 사람이었다. 2년 만에 대뜸 연락을 하고는 갑자기 손편지를 보내주겠다는 메시지 한 통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 친구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지 어림잡아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장난스럽게 답장을 보냈다.
"응? 이렇게 오랜만에 연락해서 갑자기 웬 편지? 너 막 편지에 욕 쓴 거 아냐? ㅋㅋㅋㅋㅋ "
"아니, 사실은 작년에 너한테 써놓았던 편지가 있는데 보내주고 싶어서. 괜찮으면 편지 받아볼래?"
기회가 된다면 차라리 얼굴도 볼 겸 편지를 직접 받고 싶었지만 이런 코로나 시국에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데다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연락이 끊겼던 사이인지라 말로는 "나중에 만나서 직접 줘!"라고 하면서도 다음 만남이 언제 일지, 아니 있기나 할지 까마득했다. 그래도 이번에 편지를 꼭 전해주고 싶다는 그 친구의 말에 못 이기는 척 주소와 전화번호를 남겼다.
그리고 며칠 후 내 이름 세 글자가 적힌 흰 봉투가 우리 집으로 도착했다. 3년 전에 본 그대로 자로 잰 듯 반듯하고 작은 그 친구만의 독특한 글씨체는 여전했다. 편지 봉투 속에는 작은 검은색 손글씨가 꾹꾹 눌려 가득 적힌 편지지가 여러 장 들어있었고, 편지 한 장마다 읽는 순서를 가리키는 듯한 '1', '2', '3', '4' 숫자가 쓰여있었다. 나는 1번의 편지부터 차례대로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친구가 DM으로 말했던 것처럼 1번 편지를 쓴 날짜는 정말 2019년 12월이었다. 그리고 편지지의 숫자가 높아질수록 최근에 가까워졌다. 편지를 읽자 가끔 궁금했던 그 친구의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어서 그 친구는 나와 연락이 끊겼을 때도 가끔 내 sns를 통해 내 근황을 보았다고 했고, 너무 고맙게도 지난 블로그 글도 모두 읽었다는 말까지 전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편지의 내용 더 고마웠고, 더 감동적이었다.
"블로그에 있는 여행기를 읽다가 어쩌다 보니 네가 브런치에 올린 글 까지 다 읽게 되었어. 너 글 완전 잘 쓰더라. 물론 네가 글을 완성시키고 포스팅 하기까지 수없이 고민하고 지우기까지의 과정이 있었겠지만, 네가 꾸준히 글을 쓰고, 올리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
우리도 그렇듯이 글들도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데. 다른 사람에게 읽히고, 읽혀야 성장한다고 하더라고.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고, 글을 쓰고, 고치고, 올리는 그 과정에서 너도 모르게 너와 너의 글은 성장하고 있는 거야.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직업이 작가라고 들었어. 고독하고 외로운 길임을 알면서도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정말 멋지더라."
처음에 이 편지를 읽었을 당시에도 이 부분을 읽고 다시 읽었었다. 2개월이 지난 지금도 난 자주 책상 서랍 속에서 하얀 편지 봉투를 꺼내 이 편지를 자주 다시 읽곤 한다. 특히나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서 아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쓰고 싶은 메시지는 명확하지만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할 때, 썼던 글을 고치고 또 고치는데도 끝내 발행 버튼을 누를 수 없을 때, 이럴 때 깊은 한숨을 쉬고는 친구가 써준 편지를 습관처럼 읽었다.
이제 내게 글 쓰는 일은 '당연히' 하는 일이 되었고, 아무리 글 쓰는 그 시간 속에서 힘든 감정을 느끼더라도 '슬럼프'나 '포기'와 같은 단어는 갖다 붙이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글' 앞에서 나는 너무 많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고 공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는다는 게 무섭기도 했었다. 아직 횟수로 많이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몇몇의 악플들을 경험했었고, 베베꼬인 시선으로 내 글을 읽고 무턱대고 내가 틀렸다며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의 댓글을 읽고나서부터는 글을 쓰고, 발행하는 그 과정 속에 과한 '검열'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렇다. 친구가 써준 편지 속 문장들은 근래 셀 수 없는 글자들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가 지우고 망설이는 과정 속에서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던 것이다. 내가 그동안 꾸준히 걸어온 그 흔적과 그 길 위의 고단함을 알아주면서 앞으로 더 세상을 향해 한 발자국씩 걸어 나가야 할 이유를 말해줬다. 그래서 자연스레 나는 그 친구의 편지를 자주 찾았고, 읽을 때마다 친구의 진심을 느끼며 스스로를 다독였던 것이다.
어떤 글이든, 영상이든, 사진이든, 그림이든 그 어떤 훌륭한 작품이 있다 하더라도 당장 내가 공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그저 유명한 작품으로만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유명하지 않더라도, 전문가들에게 선택받지 못하더라도 어떠한 작품에서 말하는 것이 내가 느끼고 있던 것, 혹은 내가 요즘 말하려고 했던 것과 같음을 느낀다면 그 작품은 보고, 또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몇 번을 다시 본다 해도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힘은 닳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만약 내게 요즘 읽은 최고의 글을 꼽으라면 최근에 고전 문학과 베스트셀러를 부지런히 읽고 있음에도 두 달 전에 받았던 내 친구가 쓴 편지라고 말할 것이다.
맞다.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은 바로 친구의 편지 같은 글이었다. 내가 꾹꾹 눌러쓴 진심으로 멀리 있는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일, 아무도 몰라줘서 때로는 외롭고, 서러운 그 마음을 온도와 힘을 가진 글자들이 알아주는 일, 그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따뜻하면서도 강인한 '용기'와 '응원'을 전달하는 일. 그 일이 하고 싶어 글을 쓰기로 했던 나였다. 근래 글 앞에서 복잡했던 내 머릿속과 마음이 이제 명확해진 것이다.
이 글은 사실 앞으로 자꾸 글이라는 것이 두려워질 때마다 그래서 자꾸 지치려고 할 때마다 꺼내서 보기 위한 일종에 나에게 쓰는 편지이다. 그리고 동시에 인생이라는 지독히도 외롭고도 쓸쓸한 이 길을 홀로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친구가 연락은 하지 못하면서도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응원했듯이 분명한 건 예상치 못한 누군가가 당신의 지난 흔적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당신의 행복을 응원하면서 남몰래 편지를 쓰고 있을 거라는 것이다.
그러니 가끔은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라고, 당신이 세상을 향해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을 누군가는 간절히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중에는 항상 내가 있다는 것은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의 공감은 글 쓰는 저에게 가장 큰 원동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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