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지옥의 밤
토요일 아침. 평소 준비하던 시험을 보러 편도로 1시간 반 정도 되는 곳으로 시험을 보고 왔다.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아서 3, 4시간 밖에 자지 못했지만 여러 번 해왔던 일이라 몸이 피곤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무리하지는 말아야지 라는 생각에 시험이 끝난 후 곧장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평소랑 비슷하게 한 생활이었는데 이 날 오후부터 갑자기 배가 살짝 아프고, 화장실에 갔을 때 휴지에 약하게 피 비침 있고 분홍혈이 보이기 시작했다. 갈색혈은 본 적이 있었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 급하게 카페 글을 찾아봤다.
임신 초기에는 약간 그런 증상이 있을 수 있다, 피가 생리처럼 나오는 게 아닌 이상은 괜찮다라고 쓰여 있는 글들을 보고 ‘그래. 이 정도는 피가 많이 나오는 게 아니고 살짝 분홍색으로 묻어나는 거니까 괜찮겠지.' 생각했다.
일찍 자고 쉬면 괜찮아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저녁 9시쯤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복통이 심한 생리통을 겪을 때처럼 심해졌고, 피도 라이너에 조금 묻던 수준에서 이제는 생리대를 차야 할 정도가 되기 시작했다. 아직 피가 흐르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양이 점차 많아지니 불안감이 폭증했고, 그때부터 카페 글을 미친 듯이 찾아보기 시작했다.
'뭐가 잘못된 거 아닐까? 설마 자궁 외 임신인가? 자궁 외 임신은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이라고 하던데.. 아니면 혹시 계류 유산이라 소파수술을 해야 하는 걸까?' 안 좋은 생각들이 먹구름처럼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아니야.. 여기 생리대가 두 바닥이나 젖을 만큼 피를 흘렸는데도 아기집이 괜찮았다는 사람들도 있었어.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야... 괜찮을 거야... 엄마....'
복통이 심해지고 무서운 생각들이 스치니까 제일 먼저 엄마가 떠올랐다. 아프고, 불안하고, 무서우니까 허공 속에서 엄마를 몇 번이고 불렀다.
남편과 응급실을 가야 할까 생각했지만 막상 응급실에 가도 해주는 건 없다는 카페 글이 떠올랐다. '그냥 오늘 밤만 참고 내일 아침 일찍 병원에 가자. 남편이 내일 문 여는 병원 확인했고 같이 가자고 했으니까 오늘 밤만 참아보자.'
뾰족한 발이 4개 달린 갈퀴가 무자비하게 자궁 안쪽을 긁어내는 것 같았고 엄청난 고통에 새벽 2시가 넘어가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따뜻한 걸 배 위에 올려놓으면 복통이 좀 사그라들것 같은데, 임신했을 때는 뜨거운 물주머니를 배 위에 올려두는 것도 안 좋다고 해서 임시방편으로 거실 소파에 있던 솜인형 두 개를 가져와 배 위에 올려 두었다. 배 위에 인형들을 허리띠처럼 두르고 그 위로 이불을 덮었더니 막달의 임산부처럼 배 부분이 풍성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부푼 배를 끌어안고 생각했다.
'그래. 내일 병원에 가서 어떤 진단이 나오든 그냥 다 받아들이는 거야. 화학적 유산이든, 자궁 외 임신이든, 계류 유산이든. 이 아이가 살 수 있는 아이면 살 수 있을 거야. 나는 다 받아들일 거야.'
나는 다 받아들이겠다.
이 말을 속으로 기도문처럼 되뇌며 겨우겨우 잠이 들었다. 극심한 복통과 아기가 어떤 상태일지 모르는 불안감에 마음이 지옥 같은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극심했던 복통은 사라져 있었다. 이제 괜찮은 걸까 싶었지만 생리대는 확인해보고 싶지 않았다. 피가 많이 흘렀을까 봐 무서웠다. 화장실에 앉아 잠시 고민을 하다 조심스럽게 상태를 확인했다. 생리대 대형 한 면이 빨갛게 다 젖어 있었다. 샤워를 하려고 서니까 검붉은 피가 주르르륵 흘러내렸다. 그렇게 피를 보는 와중에도 '덩어리 진 혈이 없으면 괜찮다는데 아직 안 보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피를 많이 흘렸는데도 아기집이 잘 있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혹시나’에 기대를 걸었다.
그렇게 한 줌의 희망을 가지고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