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일기

[6] 화유, 그리고 오늘

by 시나몬

결론부터 말하면 화유(화학적 유산)였다. 옛날 같으면 그냥 생리를 늦게 하는가 보다 하고 넘어갔을 텐데, 요즘은 임테기로 사람들이 너무 일찍, 자주 확인을 하다 보니까 이런 경우가 생긴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임신 진행 중에 40% 정도는 이렇게 유전적 요인이든 알 수 없는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서 우리 몸에서 자연적으로 결함이 있는 임신 상태를 더 이상 진행되지 않게 막는 거라고 하셨다.


'아 그렇구나.. 어쩐지 지난주까지는 임신 초기 증상들이 있었는데 이번 주부터는 없더니.. 임테기로 두 줄을 본 후에 거의 10일 뒤에 갔지만 피검사 수치가 낮더니.. 꽤 나중에 병원에 간 건데도 아기집을 못 보더니.. 이게 다 임신이 더 진행이 안 돼서 그런 거였구나.. 그랬구나..'


그제서야 마음속에서 애써 무시했던 안 좋았던 징조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기집도 못 보고 끝나버린 임신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수술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 다행이었고, 두 줄만 보면 끝인 줄 알았던 임신은 그 뒤에 여러 고비들이 남아 있었다.


나는 인생에서 쉬이 된 일이 거의 없었는데 오래 원해왔던 시험 합격은 정말이지 오래도 안 돼서, 임신을 처음 준비하자마자 되었을 때 내 인생에 임신은 그나마 빨리되는 이야기인가 싶었다. 역시나 아니었다.

'역시 내 인생에 쉽게 되는 건 없는 거구나.'


임신을 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기가 오래 생기지 않아 힘들어하는 부부들이 많다는 것을 들었고, 느끼고 있어서 임신 준비를 시작하게 된 것인데, 나는 아직 난임부부들의 경험의 세발의 피가 아닌 삼천발의 피도 느끼지 않았겠지만, 임신이라는 건 두 줄을 보기 위해 준비하고, 두 줄을 보고, 그다음 실제로 출산에 이르기까지 많은 산들이 있는 것이었다.

잠깐의 임신과 화유를 겪으며 나는 '기대가 주는 잔인함에 춤추지 말고 현재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자'라고 다짐했다. 기대가 주는 달콤한 미래에 현혹되지 말고 최소한의 미래만 생각한 채 현재를 최대한 살아가자고 말이다. 설사 그 현재가 고통스러움을 견뎌내야 하는 순간들일지라도,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면서 그렇게 차분하고, 들뜨지 않게 오늘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오늘을 살아가면서 앞으로 몇 번의 시련과 어려움이 나에게 반복되고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 계속 임신 준비를 할 것이고, 그때마다 지금처럼 당시의 경험과 감정들을 글로 남겨둘 것이다.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내 길에 지도를 그려가며 다른 사람들도 내 지도를 참고로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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