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니기리를 싸들고 소풍(遠足)을 다녀왔습니다.

친밀감의 거리에 관하여

by 수진

아이가 유치원 가을 소풍을 다녀왔다.

준비하기에 앞서 소풍 관련 유인물을 보았다. 복장은 체육복. 준비물은 긴팔가운, 장화, 목장갑, 손수건, 티슈, 돗자리, 과자 1개(!), 도시락, 물통. 인근 농장으로 고구마를 캐러 현장학습을 다녀온다고 한다.


도시락.. 지난봄소풍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지난 4월 유치원 봄 소풍이 있었다. 학부모들도 함께 근처 공원으로 소풍을 다녀왔는데, 당시 나는 나에게 익숙한 소풍의 공식을 따라 도시락으로 김밥을 준비했다. 점심을 먹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일본 소풍에서는 모두, 우리에게는 '삼각김밥'으로 익숙한 '오니기리(おにぎり)'를 먹고 있었다. 간단한 형태였다. 밥을 뭉쳐서 랩으로 감싼 주먹크기의 동그란 그것. 밥은 후리카케로 버무려 있고, 안에는 우메보시(매실절임) 나 참치, 가쯔오 등의 소가 들었으리라 예상되는 그것이 모두의 손에 들려 있었다. 김밥을 준비해서 소외감이 들지는 않았지만, 이번 소풍은 일본 소풍 공식을 따라 오니기리를 만들 계획이었다.

눈대중으로 스캔한 모양을 기억하며 오니기리 제작에 돌입했다. 갓 지은 밥에 아이의 취향을 반영한 계란 후리카케를 뿌려서 잘 섞어주고 삼각형으로 모양을 잡은 뒤, 랩으로 감싸 오니기리 포장용 파우치 안에 넣었다. 생각보다 간단해 금세 만들었다. 맛은 안 봤지만 포장의 힘으로 모양은 예뻤다. 일단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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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오니기리파우치와 고정 스티커+후리카게. 주먹밥을 쥐는 솜씨가 없어도 오니기리를 만들 수 있다.

'오니기리' 하나로는 아무래도 영양소와 양이 부족할 것 같아, 사이드 메뉴로 당근 듬뿍 꼬마김밥을 곁들이기로 했다. 소풍에는 김밥이 있으면 더 좋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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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지기 일보직전;

이제 도시락통에 예쁘게 담는다. 계절과일(단감)과 비주얼을 위해 옥수수 통조림, 소시지, 캐릭터 어묵을 동원하고, 캐릭터 픽도 꽂아주고 준비된 김밥을 담아 조합한 뒤 깜짝 놀랐다. 이럴 수가! (내 눈에) 나의 도시락은 파는 비주얼과 흡사했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역시 장비빨은 무시할 수가 없다. 부디 도시락이 가방 안에서 흔들림 없이 지금 상태 그대로 소풍 장소로 이동하길 바라며 짐을 꾸렸다.

KakaoTalk_Photo_2023-10-26-10-06-34.jpeg 예쁘다. 예뻐!

마지막으로 준비물을 재차 확인한다. 목장갑, 돗자리, 티슈, 손수건, 과자 한 개(정말 한 개 '一つ'라고 적혀있다.), 도시락, 물통.. 장화랑 가운은 미리 보냈고... 아무래도 돗자리 크기가 마음에 걸린다. 개별 준비니 1인용을 구매했는데, 작게 느껴져 사진을 찍어 일본인 친구에게 확인했다. "돗자리 샀는데 크기 봐봐. 소풍 가는데 이렇게 작은 돗자리 괜찮을까? 너무 작지 않니?"친구는 말한다. "딱 좋아! 유치원도, 초등학교도 소풍을 가는데 모두 그 크기의 1인용 돗자리를 준비해." 그렇구나.. 그렇게 아이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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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활동의 복장은 대체로 늘 체육복이다. 도시락과 1인용 돗자리를 챙겨보냈다.

오후가 되어 아이가 돌아왔다. 고구마 캐는 것은 힘들었지만 재밌었고, 깨끗이 비워진 도시락은 맛있었음을 증명했다. 소풍을 잘 마쳤구나 생각하며, 저녁이 되어 유치원 SNS에 업데이트된 소풍사진을 보았다. 고구마 캐는 사진과, 단체 사진과 소풍의 즐거운 시간들을 사진으로 보던 나는 점심 먹는 사진을 보며 순간 멈칫했다. '위화감'... 그 감정을 '위화감'이라 표현해야 할까. 한국의 정서에 익숙한 내게, 일인용 돗자리에 한 명씩 앉아서 자신의 도시락만을 먹는 일본 소풍의 모습은 조금 낯설었다. 순간 깨달았다.

오니기리를 만들어 소풍에 참석해도 닿을 수 없는 어떤 본질적인 부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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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의 모습들. 사진 출처는 유치원 홈페이지.

내가 느꼈던 감정은 쓸쓸함이었을까. 분명 따뜻한 온도의 감정은 아니었겠지. 내가 자란 문화처럼 커다란 돗자리에 모여 앉아 도시락을 펼쳐 놓고 함께 서로의 도시락을 집어 먹는 모습이 분명 소풍의 정답은 아닐 테니... 그 감정은 보편적이 아닌 나 개인의 것일 것이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하루의 루틴을 따라 아침 달리기를 하며 문득 생각했다. '친밀감의 거리'에 관하여.

서로 간의 일정 간격은 유지하지만, 그럼에도 곁을 지키는 일. 때로는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그것을 뛰어넘어 우정을 만드는 일. 돗자리만큼의 거리는 정해져 있지만, 나머지는 아이의 몫이 아닐까. 의무가 아닌, 선물같이 주어진 개인의 몫. 정해진 간격의 예의는 지키지만, 필요하면 그것을 가뿐하게 뛰어넘어 깊은 우정을 만들어 가기를. 빛나는 우정이 주는 선물을 누리기를. 나의 역할은 아이에게 그 따뜻한 친밀감의 온도를 알려주는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에 '반짝'하며 희망이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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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다음날 아이가 받아온 아이처럼 앙증맞은 고구마

덧. 학부모들이 함께 참석했던 지난 4월의 봄소풍은 체조, 기념촬영, 반별 레크리에이션, 산책, 점심식사, 자유시간 및 해산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그때는 돗자리를 챙겨가지 않아 같은 반 친구네와 돗자리를 함께 썼지만 역시 도시락은 각자의 것만 먹었다. 일본 현지 문화에 참여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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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소풍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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