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진 Jan 05. 2024

찾아오는 '소망'에 관하여

흘려보낸 소망들을 기억하며

♦︎ 소망(所望): 어떤 일을 바람. 또는 그 바라는 것. 

♦︎ 열정(熱情):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


 오랜만에 조카를 만났다. 사촌오빠의 첫째인 그 아이는 만남의 공백마다 훌쩍 자라 있었고, 어느덧 성인의 시기를 코앞에 둔 모습이 되었다. 순간 조금 어색했고, 나를 잘 모를 것 같아 찰나의 순간 망설이다 인사를 건넸다. 그 아이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커버린 겉모습과 달리 내면에는 나를 알던 아이가 남아있었고, 미리 우려했던 어색함이 무색하게 조곤조곤 말하는 모습이 많이 사랑스러웠다. 그 아이가 일본에 관심이 많고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후의 일이었다. 오지랖일까 싶어 망설이다 일본으로 돌아오기 전 새언니(조카의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랜만에 E(그 아이)를 만나 많이 기뻤다고. E가 혼자 여행 다닐 시기가 되면 후쿠오카 고모(나) 집에 꼭 놀러 오면 좋겠다고. 마음에 원하는 일은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며, 그 소망을 떠올리자 그게 귀해서 나는 조금 벅찼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일'의 귀함을 안다. 나의 공허했던 시간들을 떠올려 보면 불행한 시간을 보낼 때 불행의 큰 원인이나 결과는 '마음에 원하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심심함 혹은 무료함의 차원이 아닌 내게는 '삶' 자체가 흔들리는 위협이었다. 불행함 속에서 생각했다. 나에게 불행한 삶은 꿈이 없는 삶이라고. '삶의 의미'를 찾는 거창함 까지는 아니어도, '마음이 원하는 일'을 찾는 것이 내겐 간절했다. 원하는 일이 있으면 이 지독한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살아있어서 살아지는 게 아닌, '살아 있구나, 살고 있구나'라고 감각하며 살고 싶었다. 

 '소망'을 품고 사는 삶에서 볼 수 있는 '열정'을 사랑한다. 이 순간 누군가의 마음에 깃든 생각 중 가장 보고 싶은 것을 꼽으라면 그가 품고 있는 소망과 열정이다. 불같이 타오르는 열정을 동경하는 나는, 내 마음속에 열정의 불씨를 지키기 위해 기를 쓰는 나는, 어쩌면 다른 이의 열정에서 나오는 힘이 내게도 옮겨 붙기를, 그 열정이 내게도 깃들기를 바라며 그것을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채 타오르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나의 소망들을 생각해 본다. 잡지 못했던, 잡지 않았던, 귀 기울이지 않았던 그 빛나던 소망들에 관해. 

 나는 용기가 없어서, 의욕이 없어서, 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 그 소망들을 잡지 못했고, 잡지 않았다. 그렇게 흘려보냈을 그 소망들은 어떻게 생겨났다가 어떤 모습으로 소멸되었을지, 시간의 한계를 절실히 알아버린 뒤 떠올려 본다. 소멸된 것은 소멸된 대로, 아직 약간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으면 남아 있는 대로 나는 그것을 뒤늦게 살피고 뒤늦게 추억한다. 

 시간의 한계를 댓가로 얻은 아주 약간의 현명함으로 이제는 다가올 소망들을 기다린다. 어떤 모습으로 그것이 내게 나타나든 그것을 이유 없이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이제는 소망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깊이 살피고, 필요하면 그것을 키우고, 마음을 쏟아 보살피며, 설령 인연이 닿지 않아 떠나보내더라도 그 끝을 감각하며 의지를 갖고 떠나보내리라 생각한다. 

 행여나 보이거나 알아지는 다른 이의 소망에도 무관심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손 내밀어 줄 수 있으면 내밀고, 아무 도움을 줄 수 없더라도 무형(無形 )의 응원이라도 건네리라고, 최소한 그것을 결코 꺾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한때 내게 깃들었던 소망을 추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일 것을 믿으며, 오늘도 마음의 소망을 따라 글을 쓴다. 

오늘도 이곳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년도에도 기쁜 일들이 가득하시길 응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의도치 않은 순간이 노출되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