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의 명절

직업군인에게 명절이란

by 수진

처음 입대하고 자대 배치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명절을 휴일이나 휴가처럼 생각했다. 당직근무에 편성되어 있지 않으면 출근을 안 해도 되니 가까운 곳에 여행을 가거나, 며칠 푹 쉬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철없는 환상은 오래지 않아 깨졌다. 위수지역(부대가 질서와 안전을 유지하려고 장기간 머무르면서 경비하는 지역)이 있기에 휴가가 아니면 부대 근처를 떠날 수가 없고, 초임장교이고 더더욱 소대원이 있는 소대장의 입장에서 명절에 휴가를 낸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설이나 추석은 주말과 연계되면 최소 3일에서 5일까지 이어지는 연휴이기에 대부분 당직근무가 편성되어 있었고, 설령 근무가 없어도 연휴기간 내내 중대의 프로그램이 계획되어 있기에 담당자를 편성해서 하루 이틀 정도를 제외하고 늘 출근을 해야 했다.

군대에서의 명절은 업무의 연장선상에 있는 하나의 행사였다. 일단 명절 전 중대별 명절 계획을 수립하여 부대장님의 승인을 받은 뒤, 행정반과 중대 복도에 게시해 놓고 그 계획에 의거한 명절을 보냈다.

보통 명절 당일은 전 부대원이 모여 합동 차례를 지내고, 나머지 시간은 중대별로 보냈는데 절기의 특성상 민속놀이(팔씨름, 씨름 등) 위주로 편성되어 있고, 가끔은 송편 빚기 대회 같은 포상휴가가 주어지는 행사도 있었다. 또 장기자랑처럼 중대원 전원이 모여 어울릴 수 있는 행사가 많았고, 가끔 빔 프로젝트로 생활관에서 영화 상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프로그램별로 각 중대 담당 간부를 정한 뒤, 해당 간부들은 출근해서 행사를 주관하였으며 소대장이나 중대장은 대부분 거의 모든 날 참석해서 중대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편이었다. 주변 동기들을 봐도 명절에 부대를 떠날 수 없었던 부분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따금 통제된 생활을 견디기 힘들다 느낄 때 나는 살짝 어디론가 떠나곤 했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그럴 때면 늘 머릿속으로 시물레이션을 그려놓아야 했다. 혹시 모를 갑작스러운 호출에 어떻게 응할 것인지 신속한 복귀 루트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했다. 어느 순간 군 생활에 대한 마음을 비웠기에 그런 내 모습에 딱히 거리낌은 없었지만, 공연히 나의 동료들까지 궁지에 몰아넣어서는 안 될 일이었고, 그럼에도 그렇게라도 조금 숨통을 틔워놔야 다음의 나날을 견디기 쉬웠다.

대위 진급 후 옮긴 부대는 사단 예하의 정비대대였다. 나의 두 번째 보직은 '운영 장교'로 지휘통제실에서 간부들, 과원들과 함께 행정업무를 하기에 직속 병력은 없는 직책이었다. 그리고 전역을 앞둔 시기였기에 명절 때 근무가 편성되어 있지 않으면 비교적 자유롭게 휴가를 쓸 수 있었다. 부대 위치도 본가에서 한 시간 정도면 오갈 수 있던 거리였기에 휴가를 오가는 일에도 큰 부담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군에서 보내는 명절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겪어보지 않았기에 언급하기에 조심스럽지만, 곁에서 지켜본 바로만 판단해보건대 나보다 훨씬 오래 군 생활을 하고 계시는 선배님들이 대단하다고 여겨졌다. 계급이 올라갈수록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은 훨씬 많아지고 부대를 떠날 수도 없는 그 오랜 시간들은 그분들은 과연 어떻게 일상처럼 그렇게 지내실 수 있었던 것일까. 만일 내가 군에 오래도록 남아 연차가 늘고, 영관급 장교가 된다면 군 생활이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날이 과연 내게도 찾아올까. 나는 결코 그렇지 않을것이라는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이 내게는 구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에게 주어진 기한이 다해 부대를 떠났다. 삶에서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기에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함은 여전히 궁금함 만으로 남겨두어도 좋은 것이 있는 듯하다.


아름다운 아침 하늘을 보며 글을 쓰는 감사한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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