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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Feb 13. 2024

어른이 되는 시간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갈 수 있겠지.

어른: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며칠 동안, 좀처럼 잡히지 않는 몸살 기운에 아이와 번갈아 붙잡혔다. 밤새 여러 차례 게워낸 아이에게 흰 죽과 두부만 넣은 된장국을 먹이고, 남편은 우리를 위해 찹쌀을 넣고 닭죽을 끓였다. 기본적으로 건강한 아이는 하루 만에 털고 일어났지만, 나는 한동안 컨디션 저하를 벗어나지 못했다. 남편은 다음으로는 우동을 권했다. 일본 사람들은 아프면 우동을 먹는다는 이야기에 근거한, 본인 나름의 처방과 함께. 우동을 먹은 뒤, 몸은 더 악화되지 않았지만 더 좋아지지도 않았다(예상했지만;). 그렇게 이어진 몸 상태는 아이의 일본 초등학교 입학 설명회를 앞둔 날 밤 최악이었고, 그날밤 겨우 잠들었던 나는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새벽에 깼다. 

 그 새벽 엄마 생각이 났다. 나보다 오랜 날을 사시고, 오랜 날의 지혜가 쌓인 엄마. 그 엄마가 나에게 너 지금 아픈 거 별거 아니라고, 곧 낫는다고 말하면 아프지만 곧 나을 수 있다는 생각에 왠지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새벽시간이라 차마 엄마에게 전화할 수 없어 남편의 아직 조금 얕은 위로에 기대어 다시 잠을 청했고, 다음날 있을 입학 설명회는 큰 부담이 되어 마음을 짓눌렀다.

 다음날, 입학 설명회 시간에 맞춰 평소보다 아이를 일찍 하원시켜 함께 입학 예정 학교로 향했다. 같은 학교 학부모가 되는 일본인 친구도 동행했다. 그의 존재는 무척 감사했지만, 컨디션이 여전히 좋지 못했던 나는 모국어와 달리 주의를 기울여야 정확히 들을 수 있는 다정한 그의 일본어조차 조금 버거웠다. 그때였다. 불현듯 그 시간 그곳에 내가 있어야 할 당위성에 잠시 의문이 생기며 찰나의 순간, 나를 둘러싼 그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내 그 생각을 떨치고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입학설명회에 참석했고, 친구는 나를 배려해 미리 출구 위치와 화장실의 위치를 파악해서 알려주고, 몸이 안 좋으면 자신이 알려줄 테니 먼저 돌아가서 쉬라고 말하며 마음을 써주었다. 마음이 조금 편해졌고, 입학설명회도 별 탈 없이 마치며 한동안 마음에 얹혀있던 부담을 하나 덜어냈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몸살은 무엇을 한다고 극적으로 좋아지지는 않는다. 더 악화되는 것을 막아주는 정도일까. 개별적인 몸 상태에 따른, '앓음'에 소요되는 시간을 반드시 채워야 비로소 호전되는 것 같다.) 

학부모들이 설명회에 참석하는 동안, 입학 예정 신입생은 5학년 재학생들이 학교도 안내해주고 직접만든 메달과 꽃씨(나팔꽃)를 선물로 주었다.

 불현듯 '엄마'가 생각나는 날이 있다. 내가 본능적으로 엄마를 떠올리는 시간은 즐거운 시간보다는 힘든 시간, 특히 '몸'이 아픈 시간 본능적으로 엄마를 떠올린다. 어쩌면 나에게 '어른이 되는 일'이란, 힘든 시간 더 이상 엄마를 떠올리지 않게 되는 일은 아닐까. 생각하기 싫지만 엄마가 노쇠하고 약해져도, 내게는 살아가는 시간 시간 '엄마'라는 존재를 떠올리는 일은 왠지 계속될 것 같다. 

 아이에게 나 역시 그런 존재일까? 아이 역시 무섭거나 몸이 아플 때처럼 무척이나 강하게 '나'를 찾는 시간이 있다. 내가 늘 무수히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살고, 전혀 강인하지 못할지라도 아이의 눈에는 강하게 자리 잡은 걸까. 그렇다면 나의 엄마 역시 사실은 그런 것 아니었을까. 

아픈날 곁에 둔 음식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어른'이 되는 일의 정의를 좀 더 정의를 유연하게 바꿔야겠다. 무수히 많은 시간 동안 마음이 약해지고 방황하고 넘어질지라도, 누군가는 지속적으로 내게 의지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은 내어줄 수 있는 일. 쓰고 보니 이 또한 유연하지 않고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노력이라도 기울이는 일. 일단은 이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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