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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Sep 13. 2024

아름답고 강인한 여자가 되고 싶어서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어 군인이 되었다.

 '천상여자'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조금 많이 들어봤다. 동일 선상에서 '여성스럽다.'라는 말도 종종 듣는다. 그와 관련한 나의 의견은 다소 이중적이다. 과분하고 오글거리고, 어떤 전형적인 역할을 요구받는 단어 같아 거부감을 느낄 때가 있다. 또 어떤 단어로 정의되면, 그 단어가 나를 제한할까 봐 꺼리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내키는 대로 행동하려다가 '맞아. 난 이래 보인댔는데' 하면서 기대에 부응하려고 할까 봐. 그러기 싫은데 그렇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미지를 그쪽으로 더 굳히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다. 반면에, 이따금 그 표현이 '아름다움'과 근접한 단어로 느껴질 때. 그럴 때는 거부하고 싶지 않다. '아름다움'을 안 좋아하기는 어려우니깐.

 아무튼 천상여자의 뜻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보이는 모습과 나의 실상은 많이 다르리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내가 나에게 부여한 정체성이 아니니 굳이 정정하지 않을 뿐. 물론 손사래는 친다.  

 사실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것뿐이다. '얌전'이나 '조신'등의 단어를 같다 붙여도 언뜻(진짜 언뜻이다.) 괜찮을 인상, 크지 않은 체구, 낯가리는 성격, 심지어 여대를 다니기까지 해서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 어찌 됐던 특정 이미지로 규정되는 타인의 언어로 내가 설명될 필요는 없다. 특히, 단어 자체는 죄가 없지만 얌전 혹은 조신 등의 단어는 사양하고 싶다.

 근데 궁금하다. 타인의 언어가 아닌 나의 언어로 설명되는 내가.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곧 마음에 드는 답이 나온다. '가슴에 불을 품은 사람'. 나는 가슴에 불을 품은 사람이다. 기회가 없어 드러내지 못했거나 필요에 의해 감추고 있을 뿐, 나는 마음속에 타오를 준비가 된 불을 가지고 있다. '가슴에 불을 품었다.'라고 추상적으로 표현한 면면을 구체적으로 보면 뜨거움, 즉흥성과 무모함, 약간의 정의감, 고집, 고분고분하지 않음, 방랑벽, 예민함, 까탈스러움, 할 말은 기어이 하고야 마는 당돌함까지. 여간해서 내비치지 않으려 노력할 뿐, 나는 독특한 뜨거움이 있고 그런 내가 가끔 힘겹지만 그런 나의 독특함을 사랑하고 있다.

 독특함. 누구나 자신만의 독특함이 있겠지만 나도 그렇다. 어쩌면 이 또한 독특함의 한 방편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창피하지는 않다. 숨길 일도 아니다. 그런데 누가 졸업 후의 진로에 관해 물으면 취업을 준비한다, 회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등 무난하게 넘어갈 답변을 한다. 굳이 숨길 생각은 없지만 혹시 상대가 진심으로 궁금해는 것 같지 않아 그랬던 건가? 진지한 대화가 오가는 자리에서는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했던 걸 보면. 

  그렇게 진로의 방향성은 정했는데 문제는 구체성이다. 대학 졸업까지 반년 남은 요즘의 최대 고민이다. 근데 길은 의외의 곳에서 나타나는 게 맞나 보다. 엄마는 신문에서 스크랩한 여군 장교모집 광고를 나에게 내민다. "이거 해보면 어때?" 크게 기대하는 말투는 아니다. 근데 뭐지? 좀 솔깃하다.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방향성과 맞고, 사소할 것 같지만 사소하지 않은 이유는 이미지! 이미지 때문에 솔깃하다.

 여자 군인? 멋지고 강인한 여자가 떠오른다. 심지어, 가끔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녀들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 이미지를 나에게 덧입히면 어떨까? 별로 마음에 안 드는 천상여자 말고. 오해받고 있는 이미지의 반전을 꾀할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외모와 직업의 불일치에서 빚어지는 의외성을 떠올려 본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 군인. 그 반전이야말로 나답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좀 자아를 펼칠 필요가 있다. 얌전한 사람으로 자주 오해받는데, 얌전 혹은 조신 등의 단어와 나를 분리하고 싶다. 단어는 죄가 없지만 뭐랄까. 그 단어와 묶이면 재미와는 거리가 멀고 따분과 가까울 것 같은 느낌이라 해야 할까. 

 단지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 내 안에 다양한 내가 있을텐데 나부터 그 다양한 나를 알아보고 싶다. 그렇다면 좀 다양한 기회를 접해봐야 하는데 군인은 필히 역동적인 직업일 테니, 내 속의 다양한 자아들을 끄집어내 확인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하니 멋지고 강인한 여자로 단박에 거듭나는 일에 군인이 되는 것보다 더 극적인 변신은 없어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고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아름답고 강인한 여자가 되기를 꿈꾸며 일단 원서를 넣는다. 되면 되고, 안되면 말고 딱 그 정도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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