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승들과 친구들
군인 집단의 구체성에 관해 알게 된 것은 군인이 된 이후이다. 정확하게는 '군인 사람'이라 표현해야겠다. 입대 전 무지했던 나는 군인은 군인일 뿐이라는 생각에 군인 자체를 모조리 묶어 하나의 집단과 존재로 여겼으니깐. 심히 무지했다. 입대해 군인 사람들을 알고 보니 '군인'은 특정 대명사일 뿐, 그들은 한 명 한 명 지극히 구체적인 사람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대다수의 성별을 이루는 남자 군인의 군상(群像, 떼를 지어 모여 있는 많은 사람)은 무한하고 무한했다. 많은 군상을 겪으며 스스로 인상 깊었거나 호감을 느낀 유형의 군상은 있었다. 이것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마음을 움직이는 '언어의 조각'을 건네주는 사람들을 선호한다. 그 마음은 구체적으로 용기, 격려, 동기부여 등의 마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류하자면 그들은 '가르침'의 영역에 존재하는 군상이리라.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은 언제나 매력적이기에. 상급자들이 많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다. 일부 상급자 외에도 너그러운 성품이 언어에서 묻어 나오는 분 혹은 동료 혹은 나보다 나이나 계급이 아래여도 배울 점이 많은 이들이 있다. 하루에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어도 유독 마음에 박히는 언어의 조각들이 있다. 나에게 그 언어들은 어떠한 것들의 본질을 말하는 언어일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종종 나를 불러서 군 생활에 관한 조언과 격려를 주시는 창장님의 언어. '부대장'이라는 위치도 한몫하겠지만, 그분의 언어들은 예리함과 치열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나온 언어로 적재적소에 날아오기에 내게 힘이 있다. 당신이 군인이시기에 내게 군인의 비전을 심어주시는 그의 언어는 최소한 한 귀로 흘리지 않고 진지하게 생각해 볼 만큼의 힘은 가지고 있고, 나는 이 길에서 나의 미래를 고민할 때 그의 언어를 떠올린다. 그런가 하면 사령관님의 언어도 기억에 남는다. 반복되는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졌던 때 방문하셨던 사령관님의 훈시를 듣는데 어느 순간 한 말씀이 마음에 박혔다. 맡겨진 사람(나에게는 소대원)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우르라는 말이 왜 박혔을까. 아마 나의 첫 마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첫 마음은 진작에 바랬지만 그 말씀을 들으며 생각했다. (얼마나 그분 스스로에게 진실성을 가진 이야기 일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내게 그 가치가 없었다면 나는 이곳에서 좀 더 빨리 떨어져 나갔겠다고. 이 조직의 누군가는 분명 그 가치를 알고 품고 있는 분도 있겠다는 생각에 왠지 다행이었다. 동료 중에는 배울 점이 많았던 경비중대 선배 소대장의 행동과 언어들도 오래도록 나에게 남았다. 소대장의 본분에 충실했던 그의 언어들과 내게 해 준 조언을 떠올리며 나는 참 군인 같은 그의 앞날을 기대한다. 또한, 행동이 언어가 되는 이도 있다. 나의 후임 소대장. 겸손한 그 아이는 결코 나에게 조언을 않고, 부족한 나의 조언을 듣지만 사실 나는 그 아이의 행동을 보며 배운다. 조직에서 지니면 좋을 그의 성품과 태도를.
그렇게 어떤 이들이 건네는 말에는 힘이 있다. 내게 기억에 남았던 언어의 조각들을 돌아보면 비전과 미래 배움 성품 같은 추상적이지만 본질을 품은 분야의 언어였고, 그 언어들에 기대 나는 한 시절을 넘긴다. 언어의 조각들을 떠올리며 나는 생각한다. 언젠가는 나도 아름답고 빛나는 나만의 언어의 조각들을 빚어낼 수 있기를.
또한 나는 '여자 군인'이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최소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군인들을 좋아한다. 어쩌면 이것은 이 집단에서 나만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일지 모른다. 나는 이곳에서 만나는 군인들을 한편으로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그는 여성 친화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그것은 나의 지휘관들이나 동료, 하급자 간부 모두에게 해당된다. 그들은 여자 군인이라는 존재를 얼마나 이해하고 동료로 여기는가. (소대원들은 예외로 친다.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언제나 이들이 나를 '소대장'자체로 대한다는 느낌을 받으므로. 환복 시간 빼고.) 여기서 '여성 친화'라는 표현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단순 '여자'를 좋아한다면 그 사람은 차라리 경계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여성 친화'를 말하자면 그는 이곳의 소수 성별인 '여자 사람'을 인지하는가. 이해하는가. 그들과의 물리적인 차이를 이해하고 상대를 존중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상대와의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사람이 결국 성별을 떠나 '사람'에 대한 존중을 품고 있다고. 그것이 '인간미' 아닐까. 내가 이곳에서 소수 성별인 여자이기에 나는 이러한 성향을 가진 이들을 쉽게 알아챌 수 있고,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지닌 '젠틀함'에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그러한 유형의 군인들을 좋아한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인간적인 호감을 느꼈거나, 친구가 된 유형의 군인이 지닌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따뜻함'이다. 앞서 언급한 두 부류가 머리로 따르는 부분이었다면, 마지막 부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부류일 것이다. 가르침이나 상대와의 차이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부분이 학습의 결과일 수 있다면, 이 부류는 선천적으로 따뜻한 성품을 타고난 부류 같아서. 따뜻한 사람이 매력적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이 부류들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보인다. 몇 마디의 이야기만 나눠보고 행동을 보면 금세 보인다. 이 사람은 따뜻한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 집단에 있다 보니 그 따뜻함에도 결이 있음을 발견했다. 내가 선호하는 따뜻함은 사심이 없을 것. 말하자면 따뜻하지만, 질척임의 기운이 감지되는 따뜻함은 사양한다. 나는 산뜻한(기분이나 느낌이 깨끗하고 시원하다) 착함을 선호함을 깨닫는다.
이상 선호하는 유형의 남자 군인들을 떠올려 보았다. 남자 군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써본다. 그렇다면 선호하는 유형의 성품들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남자'로써 나의 이상형일까 생각해봤다. 결론을 안다. 그렇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뭐랄까 이성(異性) 적인 호감, 끌림은 '선호' 와는 또 다른 영역이라 여겨진다. 이성(理性)보다는 느낌의 영역. 그것은 한편으로는 어필의 영역 아닐까. 예를 들면 심쿵 하는 포인트를 상대에게 감지하는 류의. 실제로 생각해 봐도 이성적 호감이 느껴진 이들은 위의 성품들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아닌 경우도 있었던 듯하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나만 그런가? 이야기가 샜다. 아무튼 그렇다.
결론은 이곳에서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조금이나마 괜찮은 사람이 된 부분이 있다면, 일부는 분명 이들이 주었던 배움과 우정에 빚진 부분도 있을 거라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또 하나 느낀 게 있다.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끌렸던 선호하는 유형의 군인들이 지녔던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경우를 만날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유머였다. 나는 군대에 와서 진심으로 이해했다. 왜 웃긴 사람, 재밌는 사람이 인기가 많은지 나는 이제 온전히 이해한다. 남을 웃길 수 있는 사람은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물론 민간 세상은 이곳보다는 웃을 일이 좀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웃을 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웃긴 사람 가까이에 있고 싶다. 정말이지 한때는 너무 웃어서 곤란해서 일부러 다른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웬만해서는 잘 웃지 않는다. 대체로 뭐든 웃기지가 않다. 그렇다면 결론은 결국 유머의 압승인 것인가. 하지만 인간성은 결코 포기할 수 없기에 유머의 압승 앞에는 '종종'을 덧붙여야겠다.
덧. 여자 군인 관련 글을 쓰며 가끔 기사를 검색하는데, 모든 게 나의 일은 아니고 부대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있던 기사를 첨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