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준은 영화를 한 편 보면 그 영화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다. 영화를 음미하느라 하루를 다 써버리기도 했다. 목적 없이 한 대상에 이토록 긴 시간을 내어준 적이 전에는 없었다고 생각하면서 민준은 지금 자기가 굉장히 사치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시간을 펑펑 쓰는 사치. 시간을 펑펑 쓰며 민준은 조금씩 자기 자신만의 기호, 취향을 알아갔다. 민준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어떤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결국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을. -휴남동 서점, 황보름
일본으로 오며 대부분의 물건들을 정리했다. 큰 물건들은 빨리 처분할 수 있었지만 자잘한 물건들은 정리하고 정리해도 끝이 없었다. 간신히 모든 정리를 마쳤다. 그리고 일본으로 왔다. 새롭게 삶을 펼치며 되도록 물건을 늘이고 싶지 않았다. 일단 내 물건이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나았고, 순간 사고 싶은 마음만 넘긴다면 사실 그다지 필요한 것들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로서는 딱 선호하는 것 두 가지가 추려졌다. 티 코스터와 책갈피. 그리고 사실은 에스프레소 잔.(작고 예뻐서 좋아한다.) 현실적인 이유로 에스프레소 잔은 포기해서 그냥 하나만 가지고 있다.
선호하는 물건들은 다행히 보관이 용이했다. 일부러 사들이지는 않아도 크게 자제할 필요는 없는 물건들. 의미도 있고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니 굳이 포기할 필요가 없는 물건들. 티 코스터는 직접 만든 것을 선물 받은 것도 있고, 기억에 남는 여행지에서 사거나 마음에 드는 것을 사두면 거의 매일 쓰기 때문에 사용할 때마다 의미가 깊다. 책갈피는 이름이 새겨져 있거나, 받는 이의 기호를 반영한 세심함이 담긴 선물들이라 가지고 있는 자체로 좋았다. 종이책을 볼 일은 줄었지만.
많은 것을 선택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 되니 오히려 좋아하는 것들이 보인다. 어느 날 휴남동 서점을 읽다가 한 구절이 꽂혔다. '어떤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결국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을.'
계기야 어떻든 간에 한 번쯤 삶이 간소화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괜찮은 것 같다. 삶이 심플해지니 만족하는 부분도 심플해진다. 커피 한잔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잠깐의 고요. 때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