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언젠가는 마침내는 궁금했던 것
궁금했다. 사랑이 올까. 가끔 생각했다. 나에게 사랑이 올까.
사랑은 서로 간의 화학작용에서 빚어지는 것 아닐까. 존재 그 너머의 것. 누군가 단순 존재함을 넘어 나에게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는지를 통해 사랑은 '발견'되는 것 아닐까. 저마다 사랑의 형태가 다르다면 나의 사랑은 그런 형태인지 모른다.
그 친구가 비로소 나의 세계에 존재한 것은 4년 만의 일이었다. 임관 후 초군반 병과 교육 간 알게 된 그 친구와 인연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다. 생일. 그 친구와 나는 생일이 같다. 1년에 생일날 한 번 축하 인사를 주고받는 친분. 만나지 않고 핸드폰 상에만 존재하던 딱 그만큼의 친분.
그 친구에게 가진 감정은 호감을 띤 인식이 전부였다. 이유도 단순하다. '잘생겼네.'라고 느꼈던 개인의 기준. 그게 다였다. 이성(異性)적 시각을 담을 마음도 없었고, 담아 보았어도 내 취향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성적이고 무채색에 가까운 분위기였던 당시 그 친구를 분류하자면, '남자'보다 차라리 '소년'에 가까웠다.
인연은 언젠가는 구체성을 띠는 것인가. 생일 문자 속에 존재하던 그 친구는 군 홍보 포스터를 통해 깜짝 등장하더니 마침내 실물로 나타났다. 몰랐을 뿐, 우리는 가까이에 근무하고 있었다. (심지어 같은 지휘관을 거쳤다.)
인연은 가까이에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때가 되면이라는 말도 믿지 않는다. 대체로 통용되는 것들에 자주 예외였던 나는, 보편적인 일들은 모두 나의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따라서, 때가 되면 가까운 곳에서 인연이 나타남은 나라는 군인은 물론 나라는 개인의 이야기도 될 수 없을 것이리라. 고 생각 했다.
그럼에도 (알고 보니) 가까이에 있던 그 친구가 비로소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존재만 인지했을 뿐, 모르는 사람이던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게 구체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 만남의 끝을 모른다. 나는 전역을 앞두고 있고, 그 친구는 몇 년의 군 생활이 남아있다. 곧 부대도 옮길 예정이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확신하며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만남의 영역 또한 그렇지 않을까.
이 만남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마음을 따라서 갈 수 있을 만큼 최대한 가보는 수밖에. 그러다 보면 마음이 알려주지 않을까.
이 마음을 기대라 부를 수 있다면. 기대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