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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누리는 온기

by 수진

일터와 인연을 맺은 건 조금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후쿠오카(福岡)의 일상이 자리를 잡으며 일을 시작하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산책하던 중 아름다운 장소에 마음이 끌려 계획보다 빠르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건물에 붙은 ‘직원 모집’ 공고를 확인한 후 바로 전화해 본 덕분에 다음날 면접이 이루어졌고, 그렇게 일터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삶의 가치관들이 형성되던 대학생 시절 잠시 머물렀던 일본은, 언제나 내게 조금은 익숙한 세계였다. 덕분에 일터에 처음 발을 들이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이미 알던 곳임을. 그곳을 흐르는 독특하고도 친숙한 분위기와 목조건물과 다다미가 발하는 정겨운 냄새는 옛 기억을 불러왔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일본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그곳에 스며들었다.

주 3일 함께 하는 그곳에 나는 빠르게 익숙해졌고, 감사하게도 그런 나를 기다리던 것은 동료들의 호의와 온기였다. 다양한 연령과 다양한 성별의 그들은 일터의 유일한 한국인인 내게 그리고 ‘한국’ 에 호의적이었다. 현재 내가 머무는 ‘규슈(九州)’의 이 도시는 평소 한국인이 거의 없는 지역임에도, 한류(韓流)의 영향으로 곳곳에서 한국 식품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수요와 인기가 많다. 덕분에 한국인과 처음 일하는 일터의 동료들은 원래 성품이 좋기도 하지만, 나에게 한국을 향한 관심을 많이 표현하고 일본 문화 및 교육기관에서 배우지 못한 현실 일본에 관하여도 기쁘게 알려주고 있다.

아마도 이들을 통해 전달받고 있는 온기의 결을 분류하자면, 포장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순수한 형태의 온기일 것이다. 이를테면 작은 간식에 담긴 소박하지만 따뜻한 류의 온기들. 혹은 내가 미숙한 언어와 문화 차이로 인해 헤맬 때 넌지시 필요한 것을 쥐여주는 배려에 담긴 온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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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일을 시작한 후 직접적으로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일터의 온기가 현실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종종 일상이 머무는 공간에서 일터의 동료들을 마주하곤 한다. 그 순간 반겨주는 누군가를 통해 일터의 온기가 현실에 닿아있음을 실감한다. 덕분에 일을 계기로 후쿠오카(福岡)의 작은 마을에 살던 나는 다정함을 두르고 일본의 삶에 한층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구체적 온기를 배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진심이고 온기인 그것을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형태로 기꺼이 상대에게 내어준다는 것을.

나 역시 그들에게 온기를 전하기 위해 감사함을 담은 작은 간식을 준비했다. 고민 끝 선택은 한국에서도 익숙하게 접했던 맛의 간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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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에 서로 적(籍)을 둔 우리는 다르고도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기에 같은 추억이 담긴 맛을 공유하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작은 성의에도 감동하고 잊지 않고 감사함을 표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다음을 계획한다. 다가오는 명절에는 이들이 궁금해하던 한국의 ‘떡국’을 만들어 보리라고. 부족한 요리 실력이지만 나에게 일본 사회에 한걸음 더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이들에게, 나 역시 이들이 궁금해하는 한국 새해의 맛을 소개하리라고.


안녕하세요. 이 글의 원문은 '소믈리에 타임즈' 칼럼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373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즐거운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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